한국밀교전개사 58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2-25  | 수정 : 200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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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범종과 종각의 삼밀장엄) 1. 갑사 범종의 장엄 우리들은 갑사의 범종에서 조선시대의 밀교적 장엄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범종에 새겨진 진언과 존상부조, 범종각의 보주장엄인데, 이 세 가지 장엄은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없는 신구의의 밀교적 표현방식이다. 여기서 존상부조는 신, 진언은 구, 보주장엄은 의를 상징화시킨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귀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갑사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이다. 계룡산은 우리나라의 서남부를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차령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잔구로 해발 853미터에 이른다. 이 곳은 조선시대 도읍을 천도하려 했다는 신도안이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행정수도 이전의 후보지에 떠오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계룡산에는 대전방향에 동학사, 공주방향에 갑사, 논산방향에 신원사가 위치하고 있으며, 이들 사찰은 그 규모에 비해서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많다. 갑사는 백제의 구이신왕 원년인 4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백제와 통일신라를 거치는 동안에 화엄종의 10대 사찰로 부각될 정도로 사세가 융성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1597년 정묘재란 때 전소되었고, 1604년에 대웅전과 진해당이 중건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번에 걸쳐서 중수되어 현재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해서 전방에는 강당, 좌우에 진해당, 숙묵당의 요사, 대웅전의 좌우에는 응향각, 삼성각이 세워져있다. 필자는 2004년 신년 초에 이 곳을 답사할 기회를 가졌다. 연초라서 그런지 천왕문을 거처서 오르는 사찰의 입구에는 참배객들로 가득했다. 언덕길을 따라서 계속 오르다 보면 정면에 계룡갑사라는 현판이 걸린 강당이 보이고, 그 오른쪽에 범종각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1584년에 주조된 범종이 보물 제 4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들은 갑사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어 세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 범종각에서 무엇인가 색다른 상징을 발견하게 된다. 즉 범종의 범자장엄과 지장보살 부조, 그리고 범종각의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보주장엄이 그것이다. 대부분 사찰의 건물은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갑사 범종각과 같이 범종장엄과 건축물이 상호연관성을 가진 것들도 있다. 2. 진언장엄과 지장보살 갑사의 범종은 높이가 132센티이고 구경이 92센티 정도의 조그마한 범종이다. 이 종의 전체적인 모습은 동종의 어깨 위에 여의두입화형문이 있고, 그 밑의 상대에는 연꽃무늬, 하대에는 범자로 된 진언이 쓰여 있다. 그리고 네 곳에 위치한 유곽의 테두리에는 당초문을 장식하고, 그 안에 아홉 개의 연화유두를 장식했다. 나아가서 당초와 당초사이에는 석장을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구름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다. 그 중에서 우리들의 관심사는 진언부조와 지장보살 부조상이다. 여기에 새겨진 진언장엄은 지장보살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옴아하라차이다. 이 진언은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여섯 번 새겨져 있다. 여기서 여섯이라는 의미는 지장보살의 권속존인 육지장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육지장이라고 하면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해서 지지보살, 보수보살, 보광보살, 보인수보살, 견고심심보살, 불공견보살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육지장 각각에 대한 신앙은 전무한 상태이고, 다만 명부전에 지장보살을 모시고, 사자들의 추복을 기원하는 정도의 신앙이 유포되어 있다. 그런데 밀교의 입장에서 보면 지장장보살은 태장만다라 지장원의 주존이자 금강계만다라의 금강당보살과 동체로 간주되고 있다. 태장만다라에서 이 존은 관세음보살의 지비원력을 가지고 육도중생구제의 실천력으로 활동하는 존격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이 보살은 대지의 견고함과 같이 보리심이 견고하여 중생을 대신하여 모든 고통을 받을지라도 파괴되지 않는 존격으로 신앙되었다. 그리고 금강계만다라에서는 남방 보생불의 원력으로 금강의 당을 들고 중생들을 불도로 이끌어 들이는 금강당보살의 모습으로 나타나있다. 이렇게 보면 범종에 여섯 번 새겨진 지장보살의 진언은 그 보살의 본서인 육도중생 구제의 원력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태장만다라의 지장보살이 금강계만다라의 금강당보살과 동체라는 관점에서 지장보살의 지물인 석장은 금강당보살의 금강당과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법구가 이닌가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석장이나 금강당은 모두 치켜세워 들고 다니는 법구이며, 원래의 목적을 살리려면 둘 다 치켜세워야만 상대에게 알릴 수 있는 법구이기 때문이다. 3. 지장보살과 보주장엄 지장보살의 삼매야형은 여의보주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의 상징은 흔히 여의보주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대변된다. 여의보주는 말 뜻 그대로 의지에 따라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태장만다라에서는 지장보살의 제 권속들이 보주를 가지고 있으며, 삼매야형도 보주이다. 태장만다라에서 지장보살의 위치는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한 태장만다라의 구조 속에서 서방의 천고뇌음불로부터 솟아 나오는 중생구제의 원력을 받들어 관세음보살이 자비심을 일으키고, 그것을 지장보살이 받들어서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 천의 육도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장보살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여의보주를 삼매야형으로 삼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사찰들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상은 거의 대부분이 지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간혹 지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입상의 경우 석장을 가지고 있는 정도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 일 수 있으며, 한편으로 밀교적 상징성에 대한 관심이 적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갑사 범종각의 지붕 장엄에서 지장보살의 원력을 나타내는 보주형의 상징물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장엄은 팔엽연화형으로 만든 기와 위에 보주형태의 조형물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이와 같이 건물내의 법구와 건축물의 장엄이 서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예는 우리나라의 건물장엄에서 쉽게 발견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