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59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2-28  | 수정 : 200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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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고저형 조두장엄) 1. 건축물의 용도와 상징물 밀교의 가르침은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들이 많다. 상징은 직접적으로 어떤 사실을 전하는 것 보다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 적용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그 상징은 우회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본지에 접근해 들어가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서 어떤 사실들을 이해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어떤 상징물을 접할지라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데 그 상징은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실에 대해서 직접적인 표현법을 썼을 경우, 그것은 사실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만약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그것을 고치려해도 상대에게 인각된 그 내용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이에 반해서 상징은 어떤 사실의 간접적 표현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 포괄성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실에 대한 관찰자의 오류가 있을지라도 그 자체는 오류를 가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밀교에서는 직접적인 표현과 간접적인 표현을 적절히 활용하여 심오한 불보살의 가르침을 세간에 전하는 독특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무의미하게 지나쳐버리는 밀교적 장엄이 건축물의 지붕에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밀교는 불보살의 가르침을 표현할 때나 그 가르침에 접근해 갈 때, 상징물을 가지고 나타내는 경우가 매우 많다. 어떤 경우에는 탑을 가지고 나타내며, 어떤 경우에는 당번, 보병, 보주 등을 가지고 나타낸다. 그리고 형상으로 된 불보살이 자리에 앉을 때에는 상징적 동물을 법좌로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밀교적 표현방식은 어떤 사실에 대해서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인 상징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여기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각 지역에서 활용되고 있는 장엄 가운데 지붕에 나타난 밀교적 장엄의 몇 가지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건축물은 활용도에 따라서 그 모습에 차이가 있으며, 용도에 따라서 위치가 결정된다. 그런데 외형적인 모습만 가지고 그것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안에 무엇이 봉안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없다. 여기서 아시아 각 지역의 사찰건축에서는 이런 면을 직시하고, 건축물의 지붕에 상징적 조형을 통해서 건축물의 용도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시대의 건축물들 가운데 독특한 형상을 한 상징적 장엄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기와에 새겨 넣은 진언장엄이나 대웅전의 용마루 가운데에 있는 청색기와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밀교의 법구를 통해서 나타낸 경우도 발견된다. 2. 지붕 상징물의 의미 우리나라 조선시대 건축물들의 경우는 비슷한 시대 아시아의 다른 지역의 건축물들에 비해서 지붕장엄이 다양하지 못하다. 현존하고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의 지붕장엄 가운데 밀교적 장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용마루의 보주장엄, 진언장엄 등에 불과할 정도이다. 그런데 최근 개심사의 한 건축물에서 삼고저형의 기와장엄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장엄은 필자의 기억으로는 우리나라의 사찰장엄에서 발견된 예가 없다. 이웃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티베트나 몽골 등지에서도 이런 경우는 발견되지 않았다. 같은 시대 아시아 각 지역 건축물들의 지붕장엄을 보면 중국의 경우 청나라의 것들이 남아 있으며, 몽골지역의 상황을 보아도 청나라 때 건축물 장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티베트의 경우는 송첸감포왕 이후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된 이래 최근까지 티베트 독자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중국의 경우는 청나라 때 건립된 사찰의 건축물들에서 보병장엄, 보주장엄, 마니로장엄, 탑장엄등 을 발견할 수 있고, 티베트의 경우는 대부분 녹야원 초전법륜상, 보당장엄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경우는 청나라나 티베트와 달리 사찰건축에서 용마루에 12지상을 나타낸 상징을 제외하고, 그렇다할 장엄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보병장엄은 물을 사용하는 관정과 관련이 있는 건축물의 장엄에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보주장엄은 보주를 상징물로 하는 존격과 관련이 있으며, 탑장엄은 불의 사리나 주존과 관련이 있는 건축물에 주로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청나라 때 건축된 소림사 대웅보전의 경우는 용마루에 탑장엄이 있다. 이것은 탑으로 상징되는 부처님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특히 밀교적 입장에서 보면 탑으로 상징되는 것은 불격에만 해당하는 표현방식이다. 다음으로 티베트의 경우, 대부분 녹야원의 초전법륜상이나 보당을 지붕의 상징으로 쓴다. 여기서 초전법륜상은 불보살과 더불어 티베트 불교에서 보살격으로 존숭되고 있는 파드마삼바바를 봉안한 전당에 상징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보당은 많은 사찰의 지붕장엄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특히 포타라궁전의 지붕은 거의 대분이 보당으로 장엄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원래 당번이나 당기는 어떤 무리에서 최고의 상좌가 위치하고 있음을 알리는 데 활용되었다. 따라서 티베트 최고의 실존 법왕이 거처하고, 과거의 법왕이 모셔져있는 포타라궁전에 수많은 당번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주나 진언을 가지고 지붕을 장엄하는 경우가 있으나 최근에 발견된 것과 같은 삼고저형의 장엄은 희귀한 예라고 생각된다. 원래 삼고저는 탐진치의 삼독을 제거하는데 활용된 법구로 세 개의 뿔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세 개의 뿔이 붙어 있을 때에는 식재나 증익을 의미하며, 뿔이 밖으로 떨어져 있을 때에는 항복을 상징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개심사 지붕의 새의 머리모습을 한 삼고저형 기와장엄은 탐진치를 제거하고, 계정혜를 밝히는 공간으로 활용된 건축물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