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60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3-12  | 수정 : 200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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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연화의 지혜와 방편) 1. 문수사의 연화장엄 문수사(文殊寺)는 충남 서산시 운산면 상왕산(象王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조그마한 사찰이다. 이 사찰은 같은 상왕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개심사(開心寺)와는 달리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간 보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그런데 2004년에 들어서 서산시의 지원을 받아 극락보전을 보수하고, 축대를 다시 쌓아 올리는 등 대대적인 보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사찰의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기록이 없고, 단지 가람의 배치로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극락보전의 금동여래좌상 복장에서 발견된 1346년에 쓰여진 발원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 후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사찰의 관리가 부실한 상태에서 화재까지 발생하여 대부분의 전각들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에는 조선시대 말기에 건축된 극락보전과 요사채, 그리고 근간에 세워진 산신각이 있다. 이와 같이 문수사는 불확실한 역사 속에서도 극락보전만은 유형문화재 제 13호로 지정되어 있고, 앞마당에는 본당의 좌측과 우측에 쌍사자가 받들고 서있는 양식의 석등 두 기와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불완전한 상태의 탑이 서 있으며, 그 좌측에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맷돌이 방치되어 있다. 극락보전의 내부에는 조선시대 말에 그려진 단청이 빛 바랜 상태로 고색을 띤 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단청의 형식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흔히 보이는 연화문중 육자진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연화문양과 용문양 등을 나타낸 단청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따라서 문수사는 사찰의 규모는 조그마하지만 전각의 내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데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천장의 단청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다섯 색깔로 표현된 연화문양으로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와 더불어 수미단에도 백련과 홍련을 비롯한 네 종류의 연꽃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이 사찰의 단청장엄을 밀교적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2. 오종오색의 연화 문수사의 연화(연꽃)장엄은 대략 천장의 단청, 수미단의 단청, 불의 연화좌대 등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 불의 좌대 부분은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수미단과 천장의 연화단청은 매우 희귀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화는 불교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흔히 자비를 나타낸다. 그래서 사찰의 장엄 중에서 연화는 보편적인 상징물이 되고 있으며, 불보살의 좌대나 지물로도 등장한다. 그리고 연화는 불교의 시대적 흐름과 용도에 따라서 그 상징적 의미를 달리하면서 활용되었다. 흔히 인도에서 전해지고 있는 연화에는 다섯 종류가 있다. 첫 번째로 파드마(Padma)인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연화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발견된다. 색깔은 적색, 홍색, 황색이 있다. 두 번째로 푼다리카(Pundarika)인데 꽃잎이 중첩되어 있고, 바깥쪽은 백색, 안쪽은 황색을 띤다. 이 연화는 꽃 봉우리 상태를 쿠마라(Kumara), 개화한 상태를 카마라(Kamala)로 부른다. 세 번째로 우트파라(Utpala)는 수련(睡蓮)으로 홍색과 청색이 있다. 네 번째로 쿠무다(kumuda)는 수련의 일종으로 적색, 청색, 황색, 백색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다섯 번째로 니로트파라(Nilotpala)는 청연화로 우분(牛糞)에서 발아하여 생장하는 향이 좋은 연꽃이다. 이 연화는 문수보살의 지물로 쓰인다. 밀교에서는 개화의 정도에 따라서 개부연화(활짝핀 연꽃)와 미개부연화(꽃봉우리 상태의 연꽃)로 구분하고, 이것을 팔엽연화의 인과 허공합장의 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연화는 문수사 극락보전의 장엄에서 여러 가지 색채와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먼저 이 전각의 천장 단청 중에는 다섯 가지 색채를 띤 다섯 종류의 연화로 도화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청색과 황색과 백색과 흑색과 청황적백흑색을 혼용한 색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법화경에 나오는 백색과 황색을 혼용한 연화와도 다른 양상이다. 즉 일반 불교경전의 표현기법을 초월한 밀교적 표현방식의 수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밀교에서는 오불의 신색(身色)을 표현하거나 오종수법을 나타낼 때 다섯 가지 색깔로 표현한다. 즉 백청황적흑(녹)색은 대일, 아축, 보생, 아미타, 불공성취불의 신색을 나타낼 때 쓰이고 식재, 항복, 증익, 경애, 구소 등의 호마법에서는 각각 다섯 색깔을 활용하여 백단만다라를 도화한다. 나아가서 수미단의 것은 백련의 평면과 홍련의 측면, 그리고 적색과 백색을 혼용하여 나타낸 연화의 측면과 평면으로 도화되어 있다. 여기서 적색과 백색을 혼용한 색채의 연화는 쿠마라와 카마라로 표현하고 있다. 3. 홍련과 백련의 지혜 방편 문수사의 수미단은 전체가 연꽃으로 장엄되어 있는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와 같이 수미단의 장엄에서 연화를 주된 상징으로 활용한 것은 불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연화장세계, 밀교적 입장에서 보면 대비태장만다라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채색은 일반적으로 연화의 표현에서 널리 쓰이는 백색과 적색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표현방식과 크기는 각각 다르다. 전체가 삼층구조로 되어 있는 수미단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첫 번째 단에는 백색 연화의 평면이 그려져 있고, 중단에는 백색과 적색을 혼용한 개부연화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미개부연화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최상단의 좌측과 우측에는 홍련의 측면이 그려져 있고, 그 사이에는 백색과 적색을 혼용하여 그린 미개부연화와 개부연화가 그 크기와 형태를 달리한 상태로 측면과 평면이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연화의 표현방식은 분명히 법화경에 나오는 연화의 모습을 근간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밀교적 입장에서 보면 백색은 방편, 적색은 지혜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백색과 적색을 혼합한 것은 방편과 지혜가 둘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백색과 적색으로 대변되는 방편과 대비의 상징은 밀교경전의 계보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쓰이며, 신행의 표상이기도 하다. 이것은 밀교의 입장에서 보면 연화 자체를 보리심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피어오르는 백련과 홍련은 방편과 지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