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61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3-31  | 수정 : 200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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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어문양과 만다라 십이궁) 1. 만다라 최외원의 쌍어문 만다라는 밀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최상의 진리체를 성취하려고 하는 구도자들을 위해서 나타낸 인류 지혜의 총합체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지성과 감성을 총동원하여 지혜의 집합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표현한 상징체이다. 거기에는 모습과 색상이 있고, 문자와 소리가 있으며, 상징과 특징이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지성과 감성의 접촉에 의해서 진리의 바다로 이끄는 강이나 수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나아가서 그것은 역으로 진리의 바다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물이 솟아 나오는 수원을 찾아 주는 길 안내자의 역할도 한다. 이와 같이 만다라는 우리들에게 진리의 근원과 그것이 펼쳐진 세계를 동시에 접하게 해주는 매개체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다라에는 불교와 직접 관련이 있는 표현방식 뿐만이 아니라 불교와 간접적으로 연관성을 가지는 다양한 외래의 문화까지도 수용되어 있다. 그 중에는 천체의 운행과 관련이 있는 고대인도의 천문학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천체의 운행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으며, 그것과 결부된 사상들이 탄생하였다. 고대인들은 천체의 운행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뿐만이 아니라 별의 위치에 따라서 전개되는 세계의 움직임을 읽어 낼 수 있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것은 천문학과 역학의 발전을 가져왔고, 한편으로는 점성술을 싹트게 하였다. 인도의 경우는 서양의 헬레니즘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점성술이 발달했으며, 훗날 이것들은 불교에 수용되었다. 거기서 점성술의 대상이 되는 천체는 세 부류로 나뉘어졌다. 그 중 하나는 태양과 달에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다섯 혹성을 더한 칠요이고, 거기에 일식과 월식을 천체로 본 라후성과 혜성을 나타내는 계도성을 더한 것을 구요(九曜)라고 하였다. 또한 일년간 태양의 통로인 황도(黃道)상에 위치하고 있는 성좌를 십이궁(十二宮)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의 서양점성술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서 지구를 도는 달의 통로 상에 있는 성좌들을 이십팔숙(二十八宿)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부류의 별과 별자리는 인격화된 신앙대상으로 숭배되었으며, 만다라상에서 십이궁의 존격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태장만다라의 최외원(最外院) 서방에 위치하고 있는 십이궁 자리이다. 이들의 명칭은 각각 백양궁, 금우궁, 쌍자궁, 거해궁, 사자궁, 처녀궁, 천칭궁, 천갈궁, 인마궁, 마갈궁, 보병궁, 쌍어궁이다. 여기서 쌍어궁의 쌍어문에 대한 활용은 티베트와 몽골, 그리고 중국의 일부지역 및 한반도에서 나타나고 있다. 2. 쌍어문의 형성과 전개양상 티베트에서 쌍어문은 팔길상문 중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었다. 팔길상은 여덟 종류의 문양을 조합해서 나타낸 행복의 심볼이다. 여기서 여덟 가지 심볼은 보배로 된 일산, 금색으로 된 두 마리의 물고기, 보배로 된 병, 오묘하게 생긴 연꽃, 흰색의 법라, 행복을 가져다 주는 매듭, 최상의 깃대, 금색으로 된 법륜이다. 그 중에서 금색으로 된 두 마리 물고기나 흰색의 법라는 흔히 금색의 법륜과 조화를 이루어 길상문양으로 표시되는 경우가 있고, 이 여덟 가지를 모두 조합하여 하나의 문양으로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여덟 가지 문양을 조합하여 활용할 때, 그것을 팔길상문양(八吉祥紋樣)이라고 통칭한다. 또한 티베트에서는 갈마금강저의 중심부에 문양을 넣을 때, 태극문양 형태의 쌍어문을 새겨 넣는 경우가 있다. 티베트에서 이와 같이 태극문양 형태의 쌍어문을 쓰는 습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부 티베트의 샹슝지방에서 전승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아가서 티베트 문화의 영향을 받은 몽골에서는 국가를 상징하는 문양 속에 쌍어문를 새겨 넣고 있다. 몽골의 국장인 소욤보(Soyombo)는 이미 몽골제국의 초기부터 쓰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 소욤보의 모습은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공간을 의미하는 사각과 원과 삼각과 반원과 보주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중에서 쌍어문의 형상은 물을 나타내는 원을 상징화할 때, 두 마리의 물고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맴도는 형태로 나타내고 있다. 아마도 몽골인들이 생각했던 물고기는 물의 상징적 모습인 원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찰 중에서 쌍어문이 발견되는 사찰에는 김해의 은하사, 계원암, 합천의 영암사 등이 있으며, 물고기 어(魚)자가 들어가는 사찰로는 범어사, 오어사 등이 있다. 실제로 물고기문양과 사찰 명칭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물고기 문양을 나타낸 사찰이 있는가 하면 사찰명에 물고기를 의미하는 물고기 어자가 들어 간 사찰이 있다. 그리고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현존하고 있는 고려시대 도자기에 쌍어문이 새겨진 것이 있고, 조선시대에도 그와 같은 양식이 전승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쌍어문은 사찰의 장엄이나 사찰의 명칭, 그리고 도예작품의 장식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쌍어문과 관련이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가야의 허황후가 전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김수로왕릉 관련 유물과 유적의 쌍어문이다. 그것은 허황후가 인도 갠지즈강 중류에 있는 아요디야 출신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성립한다. 오늘날에도 그 곳 아요디야에는 쌍어문을 그린 상징문양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상징문양으로만 본다면 쌍어문은 분명히 인도와 우리나라의 문화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적 역할을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고 있는 김수로왕릉의 정문이나 숭선전, 안향각 등에 나타낸 쌍어문양은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에 건축물을 재건하거나 보수하면서 그려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김수로왕릉과 연관성이 있는 건축물들의 쌍어문 장엄은 조선시대의 장엄양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그 전래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건축물 장엄에 만다라 십이궁중의 하나인 쌍어문이 수용되었다는 것은 밀교적 입장에서 길상을 가져다 주는 수호존적 성격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문화적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쌍어문은 인도는 물론 티베트나 몽골 등과 문화적으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단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