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62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4-13  | 수정 : 200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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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계 보생불의 대복전도량) 1. 원통전의 비밀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조계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선암사는 자연과 산사가 잘 어우러진 전통사찰이다. 이 사찰은 백제 성왕 때인 6세기 초에 사찰의 기틀이 마련되고,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에 의해서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15세기 말 정유재란 때 화재로 전소됐으나 현존하고 있는 건물들은 1800년대에 건립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재에는 교통여건이 편리해져서 찾아가기 쉬워졌지만 지금으로부터 27년 전만 해도 오지중의 오지였다. 필자는 대학시절 별다른 목적 없이 여행의 경유지로 선암사를 찾은 적이 있다. 그 때 선암사 입구는 밀림에라도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모든 것이 자연상태 그대로였다. 오후 늦게 당도한 선암사는 숲으로 울창했을 뿐만이 아니라 주위에는 아무런 인적이 없을 정도로 적막했다. 너무나 무서워서 사찰 안에 들어 갈 엄두도 못 내고 숲을 벗어나서 하늘이 보이는 곳까지 내려와 야영을 한 기억이 있다. 그런 추억을 가슴에 안고 언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선암사에 갈 일은 없었다. 그러던 차 작년 진각대 수학여행 때 선암사가 답사일정에 들어 있었다. 구석구석 여유 있게 경내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예전과는 다른 연구자의 입장에서 꼼꼼히 이것저것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예전과 전혀 달랐다. 들어가는 길목도 정비되고, 밀림처럼 느껴졌던 그 때의 정취는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사찰 안에도 새로운 건물이 신축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필자는 경내의 원통전에서 조선시대 말에 이루어졌을 기도도량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여느 사찰들에서나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전무후무한 것일는지도 모르는 진언신앙의 흔적이었다. 필자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풀리지 않은 비밀을 밝히기 위해서 원통전의 내부를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선암사의 안내책자들에 의하면 원통전은 1660년 경잠, 경준, 문정 등 세 명의 대사들이 창건하여 1698년 호암대사가 중건하였고, 그 후 1824년 해붕, 눌암, 익종 등 세 명의 대사가 재중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원통전이라는 명칭은 호암대사가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받아 선암사를 중창하면서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을 봉안하고 있으며, 많은 영험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조대왕이 후사가 없어 고민하던 중 원통전의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여 아들 순조를 얻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순조가 즉위한 1801년에 순조 자신이 친히 대복전(大福田)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고 하며, 그것은 원통전의 내부에 모셔져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기도의 영험에 솔깃하여 그 내용에 대한 것을 등한시하기 쉽다. 그런데 대복전이라는 명칭에서 나타나듯이 그 기도에는 분명히 독특한 방법이 쓰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금강계 보생불과의 관계이다. 예전에 필자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금강계 종자만다라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그것은 조선시대 세조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활용된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말 정조 때 후사를 잇기 위해서 금강계 오불 가운데 보생불의 진언이 기도에 활용되었던 것이다. 밀교의 전통이 일천한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금강계 오불 일존의 진언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보생불의 대복전 누구든 선암사 원통전이 관세음보살뿐만 아니라 보생불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그것은 그 어느 기록에도, 그 누구도 보생불과 원통전이 서로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한 적도 없었으며, 그 비밀을 밝히려고 한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의 해독이 불가능해서 그러했는지, 밀교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러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일제시대 일인 학자들은 왜 이런 사실들을 감추고 있었는지, 아니면 발견을 하지 못해서 그랬는지 의문시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조선시대 말까지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살아 숨쉬고 있던 밀교의 족적 중 일부가 선암사 원통전에서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의 존상과 금강계 보생불의 진언이 어루러져서 나타난 관음보생불 기도도량이다. 다시 말해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밀불회통의 기도도량인 것이다. 여기서 관세음보살은 관음신앙의 주체이고, 보생불은 금강계만다라 남방에 머무시는 부처님이다. 범어로 라트나삼바바로 불리는 이 부처님은 태장만다라의 보당불과 동체인 부처님이다. 청정관세음보현다라니경에서는 보상불이라는 명칭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아마도 선암사 원통전의 관세음보살과 보생불과의 관계가 정립된 것은 이 경전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을 봉안하고, 보생불의 진언인 "옴라트나삼바바트라하"를 전각의 내부에 새겨 넣었다. 시아귀의궤에서는 보생불에 대해서 평등성지용복덕신(平等性智用福德身)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것은 비로자나불의 평등성지를 나타내는 보생불이 복덕을 가져다 주는 몸을 갖추신 분이라는 뜻으로 풀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생불에 대한 밀교 내에서의 해석은 보리심을 가지고 수행을 시작하여 고귀한 복덕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보생이라고 하며, 금강계 오불 중에 보부의 주재자로 보는 것이다. 또한 보생불의 상징인 보주를 가지고 중생들이 바라는 바를 만족시키고, 법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관정을 수여하기 때문에 일체삼계주여래라고도 한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경전의 내용이나 순조의 탄생일화를 통해서 대복전도량 원통전의 명칭과 관세음보살, 보생불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을 통해서 우리나라 밀교의 일부가 대복전 기도신앙의 일부로 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