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63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4-30  | 수정 : 200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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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의 비밀장엄) 1. 황악산의 비밀진언 황악산 직지사는 일찍이 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창건된 이래 고려시대를 거쳐서 조선시대에 이르러 왕손의 태를 봉안하는 사찰로 지정되면서 가람의 규모가 매우 방대해졌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전화 속에서 대부분의 전각은 불타고 천불전과 사천왕문, 자하문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조선 선조 때인 1602년에 전각의 중건이 시작되어 영조 때인 1735년 마지막으로 대웅전이 완성되었다. 그 대웅전의 내부에서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밀교적 표현의 후불탱화와 천장의 진언장엄이 존재한다. 여기서 후불탱화가 대웅전에 봉안된 것은 1744년으로 되어 있으며, 천장의 단청에 대해서는 정확한 내력이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대웅전의 완성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 속에서 1700년대는 밀교적 진언장엄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찰장엄에서 실담문자를 사용한 장엄이 이루어졌고, 그것은 사찰의 신행양상과 어우러져서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내용을 풍부히 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필자는 전국에 있는 우리나라의 수 많은 사찰가운데 실담문자를 가지고 나타낸 장엄과 교리적 표현의 많은 용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안목을 가지고 진언의 밀교적 표현방식과 신행상의 활용의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필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언장엄의 실체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데에는 많은 세월을 요하는 것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산재하는 많은 진언장엄들이 그러하듯이 정형화된 필체로써 표현된 곳이 드물고, 그 내용도 다양하기 때문에 무슨 내용의 진언을 어떤 목적으로 표현하였는지 밝혀내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직지사 대웅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내용 면에서 조선시대 후기의 진언류들을 활용하였으리라는 심증은 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필체의 특징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수년간의 세월에 걸쳐서 보고 또 보고하면서 그 내용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내용의 신비가 밝혀졌다. 그것은 후불탱화의 언저리를 장식한 진언과 천장의 진언장엄에 밀교적 교리를 반영한 이중결계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2) 삼밀진언과 이중결계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이루어진 사찰의 실담장엄은 주로 한반도의 남서부지방에 존재한다. 그런데 황악산 직지사와 같이 중남부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18세기 우리나라 남서부지방에서 유행하던 진언들이 사찰의 장엄에 활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예다. 특히 천장의 장엄과 탱화의 장엄이 일치하는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라 생각된다. 여기서 직지사 대웅전의 후불탱화에는 다양한 종류의 진언 가운데 밀교 진언수행의 하나인 삼밀종자관에 쓰이는 종자가 결계진언으로 등장한다. 이 삼밀종자는 사찰에 따라서 개심사에서와 같이 불단의 장엄에 쓰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대원사에서와 같이 탑신의 장엄에 쓰이기도 하고, 직지사에서와 같이 결계진언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이 삼밀종자의 활용 예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삼밀종자 진언의 수행을 위한 관법의 한 종류로 정착하게 되었다. 삼밀종자인 옴과 아, 훔은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공양관과 예배관, 발원관으로 구분되는 진언수행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삼단체계의 수행은 밀교의식 중에 이루어지는 공양과 예배, 발원을 관법에 채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수행법에 의하면 먼저 '옴아훔'을 신구의 삼밀에 배당하여 옴자는 견고한 신체인 신금강을 가지고 공양관을 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종자를 관함으로써 시방삼세 불국토의 불보살에게 향화등촉 등을 공양하는 것과 같다고 간주하였다. 그리고 아자는 진언을 독송하는 입의 견고함을 나타내는 어금강으로 진언독송을 통한 예배의 개념이 이 아자 안에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다. 나아가서 훔자는 사고기능의 견고함을 나타내는 의금강으로 발원의 공덕을 통해서 죄과를 영원히 멸하고, 보리심을 발하도록 하는 발원관의 진언종자로 간주되었다. 이상에서와 같이 공양과 예배, 발원의 체계로 이루어진 '옴아훔'의 삼밀종자는 다시 존상으로 표현되어 형상으로 나타낼 수도 있었다. 즉 옴자는 석가여래와 문수보살로 신금강에 해당하고, 아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로 어금강, 훔자는 아축불과 금강수보살로 의금강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조선후대에 완성된 복장단 의식에 나타나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불과 보살과 진언의 관계에 대해서 규정한 것이다. 다음으로 조선후기 밀교에서 나타난 독특한 표현방식 중의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진언결계법이다. 이 결계법은 진언종자를 가지고 불단이나 불화의 테두리, 천장을 장엄하여 결계하는 방식으로 우리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언결계법은 조선시대 후기에 성행했던 진언다라니 신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가운데 직지사 대웅전의 결계양식은 후불탱화에 표현된 존상의 결계진언과 천장의 결계진언이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불화의 바깥 테두리에 진언종자를 써넣음으로써 불의 세계를 수호하려고 했는가 하면 본당의 천장에 탱화에서와 같은 종류의 진언을 빼곡이 장엄함으로써 불이 봉안된 전각을 수호하려는 이중적 결계의 성격을 부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밀교의 행법에서 단상결계와 국토결계의 성격을 탱화와 본당의 장엄에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