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64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5-13  | 수정 : 200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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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와 '옴'의 대일여래) 1. '옴'자 비로자나불 조선시대의 중기로부터 후기에 이르면 전통사찰의 장엄에서 '옴'자의 활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붕의 암막새 기와 장엄에서부터 수미단, 범종 등 다양한 방면에 활용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조선시대 불교에서 '옴'자의 활용이 활발해진 이유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불교경전에서 '옴'자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옴'자의 음을 구성하는 '아'자와 '우'자, '마'자의 세 음에 각각 법신과 보신, 화신의 의미를 부여하여 삼신불을 표현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진언이 '옴'자를 초음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옴'자에 귀명과 공양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장엄된 사찰에서 활용되고 있는 '옴'자에는 그 이상의 신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조선시대 중기와 후기에 걸쳐서 진언다라니신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육자진언의 유포로부터 기인한다. 이 때에는 이미 고려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육자진언 관련 경전의 유통뿐만 아니라 티베트로부터 원나라를 거쳐서 전래된 육자진언교전, 그리고 청나라 때 밀교적 양상의 다양한 진언문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의 중기와 후기에는 진언을 중심으로 한 밀교문화가 불교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육자진언이 보편적 진언신앙으로 자리매김 함으로써 이와 관련된 찬술집의 집성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찬술집의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이 마니칸붐이다. 이것은 육자진언에 관련된 경전과 찬술집을 총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이 진언과 관련된 문헌으로 이것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중, 후기에는 이것을 근간으로 해서 아주 짤막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여러 종류의 찬술집이 편찬되고, 염송법도 완성되었다. 거기에는 '옴마니반메훔' 여섯 글자에 담긴 각각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지송법을 정리한 것도 있다. 여기서 육자진언 가운데 우리들의 관심거리인 '옴'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옴'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지만 그 중 티베트에서는 옴은 불, 마는 법, 니는 승가, 반은 사승, 메는 본존, 훔은 천신을 가리키며, 또한 옴은 법신, 마는 수용신, 니는 변화신, 반은 자성신, 메는 보리신, 훔은 금강신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리고 마니칸붐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나라에서 찬술된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과 육자대명왕신주경에서는 옴자는 중방의 비로자나불, 마자는 동방의 아축불, 니자는 남방의 보생불, 반자는 서방의 무량수불, 메자는 북방의 불공성취불, 훔자는 집금강보살에 배당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육자진언의 여섯 글자가운데 '옴'자는 이 진언의 중심이 되는 문자로 불과 법신과 비로자나불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옴자불과 아자불 불교의 역사 속에서 문자를 불보살로 간주하게 된 것은 밀교의 성립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일반적으로 삼보는 불법승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석존과 경전과 승가를 지칭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하나의 문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감히 초기불교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으며, 진언다라니의 발달이 이루어지고 나서 상당기간이 흐른 후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진언은 하나의 종자문자로 정착하고, 그 하나의 문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보살의 개념을 함장시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육자진언이라고 하는 여섯 개의 문자에 불보살의 모든 공능을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티베트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진언신앙의 전파경로를 따라서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찬술집의 성립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옴'자를 비로자나불로 보는 견해가 정착된 것은 티베트불교와 육자진언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전에 금강정경계통의 경궤들에서 비로자나불을 '옴'자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다. 이에 반해서 대일경계통의 경전들에서는 '아'자를 비로자나불로 간주하는 아본불생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미루어보아 우리나라에서 '옴'자를 비로자나불로 간주하는 견해가 정착된 것은 바로 육자진언과 금강정경계통의 경궤에 의한 영향이라는 것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일경의 아자관과 같이 독립된 옴자관의 문화가 전승되고 있지 않으며, 다양한 진언다라니의 문자들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여 불보살과 같은 존격으로 보려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 다만 사찰의 장엄에서 여러 방면에 '옴'자가 활용되고 있는 것은 성스러운 음성이자, 진언의 초두자로 널리 쓰이는 '옴'자를 문화적 측면에서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해남 대흥사 대웅전의 수미단 장엄에 '옴'자 장엄이 발견되며, 범어사 청룡암의 벽화에 '옴'자와 금강저, 금강보살이 벽화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옴'자 위에 금강저, 그리고 그 위에 금강보살을 표현한 벽화의 표현방식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옴'을 비로자나불로 간주했을 때, 그것을 근간으로 발아하는 금강의 오지는 수많은 금강보살을 유출시킨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벽화를 도화한 의도는 금강정경계의 사상을 기반으로 비로자나 본체로부터 시현되는 금강의 지혜를 '옴'이라고 하는 문자와 오고금강저라고 하는 삼매야형, 그리고 형상으로 된 불보살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근래에 전남 보성의 대원사 박물관에는 '아'자로 나타낸 문자 비로자나의 석조 부조물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아'자는 수병에서 피어오른 연대 위에 봉안되어 있는 모습이며, 그 주위를 팔길상의 문양으로 장엄하고 있다. 이것은 표현양식으로 볼 때 지극히 티베트적이며, 내용적으로는 수병의 관정과 연화의 자비, 아자본존, 팔길상의 공덕을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외형적 표현을 통해서 나타낸 '옴'자와 '아'자로 된 비로자나불의 표현방식은 실재로 관법에 활용되었다. 일본밀교의 경우는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아자관 뿐만이 아니라 아자관을 실행하기 앞서 이루어지는 기식법이나 월륜관과 삼평등관 등으로까지 전개되었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통불교적 양상 속에서 육자진언의 염송법 속에 '옴'자를 비로자나불로 관하는 종자관법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