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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72년 종무원 일본 연수기

편집부   
입력 : 2018-07-23  | 수정 :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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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노지 사천왕사

진기72년 부처님 오신 날을 무사히 끝낸 후 총무부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금년에 종무원 팀워크 해외연수 대상자이니 참석 여부를 물어보는 전화였던 것이다. 작년 두 차례의 팀워크 연수 기간 중 다녀온 도반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굳이 해외로까지 나가야 하는 의문들이 들기도 하였던 것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여행은 어떤 사람과 함께 가는 지도 중요하기에 누가 가는지 물어 보았다. 대부분 고참 종무원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번 여행은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겠구나 생각하였다. 시일이 지나 팀워크 연수 기간을 일주일 앞두고 팀워크 연수 가기로 한 일본 오사카 지방에 지진이 일어나게 되어 많은 생각이 났다. 여기를 가야하나 하는 문의를 하며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여러 가지의 말들이 있었지만 기존의 행사를 진행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팀워크 연수는 진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혹시 연수를 안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비를 하지 못한 나는 토요일 저녁부터 부랴부랴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나의 좌충우돌 일본 간사이 지방 답사기가 시작되었다.

6월25일 –  흥분! 불안! 기대!
통리원에서 출발한 우리는 김포 공항에 11시에 집결하여 2시에 일본 오사카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흥미로운 기대감 또는 미지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가고 있었다.
 우리 6명 중 일본이라는 곳을 가본사람과 안가본 사람이 반반이었다. 서로 숙소에 같이 머물 사람을 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정을 물어보게 되었는데 서로서로 가는 곳이 뚜렷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어느 듯 비행기는 간사이 공항에 내렸다. “킁킁 음.. 스멜 이곳이 오사카 냄새인가?” 역시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공기도 습진 것 같았다.  우리는 간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신사이바시역에 있는 숙소로 향하면서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할 것 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 도반이 가방을 들고 먹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말에 숙소에 먼저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난바역에 내려 지도를 보면서 가는데 길이 이상하였던 것이다. 다른 도반이 구글 지도 맵을 켜드니 길이 틀렸다면서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 면서 숙소를 향하여 가는 것이다. 그 도반을 따라 가다보니 어느 듯 숙소 앞에 있는 나를 보았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는 것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신사이바시와 도톤보리 주변을 구경하며 일본에 온 첫날 식사를 라멘으로 시작하였다. 식사 후 숙소에 머물며 내일은 먼저 일본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오사카 주변 탐방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점검하였다.

6월 26일 오사카 좋아? 글쎄!
 아침 나와 같은 숙소를 쓰는 도반과 함께 이른 아침을 먹고 나가호리바시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텐노지 역에 내려 텐노지 동물원을 갔다. 그러나 10시도 안된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서 들어가지를 못한 우리는 먼저 사천왕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 사천왕사는 스이코천황 원년인 593년 성덕태자에 의해 세워진 일본 최초의 사찰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종파를 초월하는 일본불교의 총본산으로 처음에 사천왕이 모셔져서 사천왕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출입하게 된 서대문 쪽으로 가다 보니 “대일본불법최초사천왕사” 라고 적힌 기둥과 보물로 지정된 석조 도리이가 서있으며, “대일본불법최초” 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일본 최초의 사찰이라는 의미로 역사가 1,400년이 넘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수많은 복원과 보존을 통한 역사의 한 단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서대문쪽을 지나 좌편을 보면 신란성인을 모신 불당과 삿갓을 쓴 동상이 있다. 이 신란성인은 시대적으로 귀족중심의 불교였던 일본불교를 사회적 낮은 위치의 농어민이나 하층계급들이라도 “나무아미타불”만 잘 외우면 구제 될 수 있다는 설법을 전파한 사람이다. 이는 일본 불교의 귀족중심의 불교를 변화시켜 서민들도 불교를 믿을 수 있게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는 마치 우리 진각종의 회당 대종사가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을 외우면서 산 중 스님 중심의 불교를 현대의 도심으로 가져와서 일반인들이 불교를 가깝게 접하고 행 할 수 있게 “불교의 생활화”를 실행 한 것과 보면 묘한 데칼코마니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본당으로 들어서면 석가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는 사천왕사의 오중탑이 위용을 자랑하듯 서 있고, 그 옆으로 금당이 또 그 옆으로는 강당이 자리하여 있다. 금당 안으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촬영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불상 모양이 아닌 벽화 중심의 불교에 관한 내용들이 있었다. 이렇게 사천왕사를 둘러보고 우리는 텐노지 동물원 쪽으로 다시 가기로 했다. 텐노지 동물원으로 가는 길에 챠우스야마 고분을 지나면서 고분 주변에 나이 드신 어르신들과 놀러 나온 유치원생들을 보면서    하였다. 한국에서도 가지 않던 동물원인데, 왠지 일본의 동물원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에 일정에 넣었던 것이라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갔다. 텐노지 동물원은 일본에서 3번째로 오래된 곳으로 1913년에 개장 되어 벌써 100년이 넘은 동물원 중 하나이다. 재미있는 것은 동물원이 도심 속에 있으면서도 11만 제곱미터(33,275평)의 크기를 자랑한다. 텐조지 동물원은 세계 각국의 동물들과 일본에 존재하는 동물들이 같이 있었다. 동물원을 둘러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철창에 갇힌 새들, 우리에 있는 코뿔소, 하마 등등 여러 동물들이 있지만 과연 우리가 만약 저런 동물들과 위치가 바뀌어 있다면 우리들은 즐거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내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른 시점으로 본다면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본다면 과연 우리는 저런 것을 보고도 행복해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등등이다. 이것은 비단 사람의 기준으로 동물을 아끼는 것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 등을 하면서 다음 목적지인 오사카 성으로 향하였다.
 오사카성은 일본 전국시대 후반기의 대표적인 무장인 3대 무장 중 한사람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동서남북 1km를 넓은 해자와 견고한 성벽으로 축조하였고 이는 전국통일을 하여 권력의 정점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일화로 일본 전국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3대무장에게는 “울지않는 새”에 관한 일화가 있다. 먼저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베어버린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든다.”,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라는 일화가 있다. 이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겠다는 단호함과 일을 하면서 꾸준히 또는 어떻게라도 할 수 있는 추진력, 비록 어떤 고난이 오드라도 버틸 수 있는 인내력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마치 이중에 한 가지라도 있으면 우리들이 불공을 함에 있어 큰 힘 될 수 있는 요건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니마치욘초메 역에서 내려 오사카 성 간 우리는 마치 성 주변 넓은 공원처럼 되어 있어 산책하기 괜찮은 곳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오사카 성에 도착하여 중심부에 위치한 천수각은
 8층 규모로 되어 있으며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오사카 성에 관한 자료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천수각은 전쟁과 벼락으로 소실된 상태를 1930년대에 들어와 다시 현대의 기술과 과거의 자료를 토대로 다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천수각을 지나 해자 주변으로 크루즈를 탈 수 있게 되어 있지만 2시간 간격으로 운영되어 우리들은 탈 수 없었다. 그래서 들어온 곳의 반대편을 통해서 다음 목적지인 오사카 주택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덴마바시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우리는 주택박물관이 휴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정을 급하게 짜면서 휴관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택박물관 주변의 온천에서 온천을 하면서 문화적인 충격을 받게 되는데, 바로바로 노천탕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라 숙스러움이 앞선 것이다.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행의 큰 장점이 아닐까 한다. 온천을 마치고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숙소로 이동하기는 아까워서 오사카코 역으로 이동하여 오사카 주변 바다를 유람하는 산타마리아 크루즈를 타기 위해 이동하였다. 오사카코 역에 내리자 마침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하여 이동할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가까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이동하기로 하였다. 저녁을 가볍게 먹고 배가 있는 선착장으로 갔지만 당일 일정이 끝났다는 말과 함께 우리들은 소위요즘말로 멘붕(멘탈의 붕괴)이 왔던 것이다. 주변에 무엇이 더 없을까 둘러보든 중 덴포잔 대관람차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이 대관람차는 오사카 항만 주변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는 주저 없이 관람차로 갔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관람차는 20분 정도 운행하는데, 10분 후 나는 주변을 보면서 외쳤다. “이기 모꼬 오른쪽은 영도대교고, 왼쪽은 부산항이네” 그렇다. 나는 내가 경험한 것을 여기에 비추어 보며 마치 내가 부산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고, 20분 후 내려와서는 다시 오사카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상호간에 이해가 되지 않고 충돌할 수 있는 것 일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이 닥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모든 것을 해결해 가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비록 자신이 경험하거나 못한 것이었더라도 서로 이해 해주고 바르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덴포차 대관람차를 마치고 우리는 신사이바시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여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6월27일 어디까지 걸어봤니?
오랜만에 많이 걸어서 그런지 어제 보다 조금 늦은 식사에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교토 탐방을 위해 신사이바시 역에서 오사카의 요도야바시 역을 거쳐 교토의 데마치야나기 역에 내려 은각사를 향해 출발했다.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탈까 하다 방향을 잘못 알아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 차라리 걸어서 가기로 했다. 걸어서 은각사를 가다보면 주변에 군데군데 일본의 작은 신사들과 교토대학을 지나가게 된다. 일본의 대학은 어떨까 라는 궁금증이 있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다음에 여행을 혼자 오게 된다면 둘러보기로 했다. 교토대학에서 10분 남짓 더 걸어가다 보면 은각사 밑의 상점들이 하나둘씩 보이며 오사카에서는 볼수 없었던 일본 전통 양식의 기모노를 입은 외국인(나도 외국인인데..)들과 마치 우리나라의 중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온 것과 같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은각사의 원래 명칭은 히가시야마지쇼지 였다고 하는데, 1482년 금각사를 참고해서 아시카카 요시마사가 별장을 지은 것이 시초였다. 금각사는 금박을 입힌데 반해 은각사는 어디에도 은박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지만 은각사의 특징은 모래로 정비된 ‘긴샤단’이라는 모래정원이 있는데 모래는 물을, 돌은 산과 폭포를 상징 하며, 모래산은 후지산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정원을 지나 길을 따라 뒤편으로 가다보면 은각사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교토시내는 낮인데도 불구하고 감탄사라 절로 나온다. 이렇게 은각사를 둘러보고 다음목적지인 헤이안 신궁으로 출발하였다. 은각사에서 헤이안신궁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그 사이에 일명 “철학의 길”이라는 조그만 산책로가 나온다. 이 길은 교토의 철학자였던 니시다 키타로가 이 길을 오가면서 사색을 하면서 불리게 되는데, 본래의 명칭은 “사색의 작은 길”이었던 것이 1972년부터 “철학의 길”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길의 이름처럼 길 한편에는 냇물이 흐르며 어느 조용한 마을에 나무들로 둘러 싸여져있는 작은 오솔길 같았다. 은각사에서의 시끌벅적함과 달리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우리네 현대인들은 하루 일상이 너무 빠르게 또는 바쁘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특별하게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거나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에 우리들의 불공 중 개명정진을 꼭 앉아서만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강권을 쥐며 새벽에 일어나 가까운 공원이나 동네의 산책로 등을 걸으면서 해도 되지 않을까 만약  스승님들이 두 시간 수행 중 한 시간은 앉아서 하고 한 시간은 매일 동네의 같은 장소를 돌면서 마치 심인당의 도량밟기를 하듯이 하면 저 “철학의 길”처럼 “진각의 길” 또는 “심인의 길”이라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불리우게 되는 상상을 해본다. 철학의 길을 지나 걸어 걸어 20여분 가다보면 헤이안 신궁이 나온다. 빨간색으로 되어진 헤이안 신궁은 헤이안 천도 1100년을 기념하여 지은 것으로 안으로 들어가 보면 넓은 공터와 큰 건물들이 있다. 헤이안 신궁 자체는 그렇게 크게 볼 것이 없었지만, 신궁 안에 있는 신엔의 정원은 신들의 동산으로 불리 우는 일본식 정원으로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시대에 걸쳐 조경가로 이름을 떨쳤던 7대 오가와 지베에가20년 이상에 걸쳐 만든 것으로 현재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정원으로 가는 입장료를 내고 정원으로 들어선 우리는 잘 꾸며진 길을 따라 연못에 피어 있는 붓꽃을 보며 참 예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정원의 마직막에 가면 큰 다리가 나온다. 일본전통 혼례식을 하는 사람들이 보통 여기를 지나가는 곳이라고 해서 주변 경관과 어울리게 사진을 한 장 찍고, 나도 올해는 결혼을 하겠지 하는 상상을 해본다.
 헤이안 신궁을 지나 계획대로 야사카 신사로 걸어가던 중 길 한편에 큰 목조 문이 보였다. “이기 모꼬? 와 저래 크노!” 궁금증이 밀려와 올라가 봤다. 알고 보니 일본 정토종 총본산 지은원이었다. 걸어가다 계획에 없던 좋은 구경을 하게 된 것이었다. 큰 목조 문은 산몬(삼문)이라 불리우며 1621년 도쿠카와 2대 쇼군 히데타다에 의해 건립된 24m의 국보이다. 여기서 산몬(삼문)이란 공(空), 무상(無想), 무원(無願) 말하며 실제로 보면 그 크기에 압도당한다. 이렇게 산몬을 지나 오토코자카(남자언덕)이라고 불리 우는 계단을 올라가면 지은원의 본당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갔을 때는 주변에 공사하는 곳이 많아 그렇게 많은 곳을 둘러보지는 못했다. 본당에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한 스님께서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외우고 있는 것이다. 이 정토종을 개창한 호넨스님은 “나무아미타불”만 잘 외어도 어떤 중생이라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설법하여 불교를 대중화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오사카의 사천왕사에서 본 신란스님이 호넨스님의 제자였다고 한다. 아무튼 사찰 안에 울려 퍼지는 독경소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원래 목적지인 야사카 신사로 향했다. 야사카 신사는 656년 고구려 도래인이 세운 것으로 우리와도 조금의 연이 닿아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신사는 교토에서 액과 화를 면해주고 상업을 번성하게 해주는 것으로 교토 시민들이 가장 좋아 하는 신사라고 한다. 우리는 정문이 아닌 마루야마 공원쪽으로 해서 야사카 신사를 들어왔다. 신사 안을 둘러보면 그렇게 크지 않은 조그만 신사들이 여러개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볍게 신사를 둘러보고 난 우리는 청수사 방면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청수사로 가는 길은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로 불리우는 두 갈래의 길이 있는데, 우리는 어느 길로 올라 갔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청수사로 가다 보면서 커다란 5층 목탑을 볼 수 있다. 나의 문화답사기 –일본편에서 발췌한 부분인데, 우선 이 탑은 고구려인이 도래인들을 일컫는 “야사카 탑”이라고도 불리운다. 법관사는 589년 쇼토쿠 태자가 발원한 절이다. 화재로 불타 1440년에 재건되어 현재는 탑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야사카 신사와 청수사 산넨자카, 법관사 일대가 고구려인의 도래인의 고향이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법관사 5층 목탑을 뒤로 하고, 청수사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아기자기한 옛날 일본 전통목조 건물이 있고 좌편의 한 곳에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불당도 보였다. 일본에서 비로자나부처님 상을 보니 여기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결국 청수사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청수사는 헤이안 시대 초기에 지어졌으며 원래 법상종으로, 헤이안시대 중기부터는 진언종을 겸종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법상종으로 복귀하였다고 한다. 청수사의 인왕문을 지나 본당에 도착하면 천수관음보살을 있다. 마침 한국관광객들이 와서 가이드가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 천수관음보살은 33년에 한번 씩 볼 수 있다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본당을 지나 뒤편의 언덕에서 보는 교토 시내는 밤에 본다면 정말 예쁘게 보일 것 같았다. 언덕을 지나 밑으로 내려오면 청수사에서 유명한 오토와 폭포가 있고 세 개의 물줄기가 연못으로 떨어진다. 방문객들은 이 물을 마실 수 있고, 치료의 힘이 있다고 여겨진다. 세 개의 물줄기는 각각 지혜, 연애, 장수를 상징하며 오직 두 가지만을 선택해야하며 만약에 욕심 때문에 세 개를 모두 마시면 불운이 따른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 오토와 폭포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와 마지막으로 가려고 한 후시미이나리 신사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래서 가까운 교토 국립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옴겼다.  청수사에서 걸어 15분여를 걸으면 교토 국립 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 앞 매표소에 들려 표를 사려니 시간이 마감이 다섯시라는 것이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어 다 둘러 볼 수 있냐고 물으니 힘들 것 이라 했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박물관을 4군데를 갔지만 다 휴관일이거나 시간이 맞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시치조 역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맞기고 삼일째의 일정을 마감하였다. 

6월28일 나라 국립박물관 그리고 감동!
일정에서 마지막으로 둘러 볼 수 있는 하루. 이틀연속 무리하게 걸어서 그런지 자고 일어난 같이 온 도반은 발이 아프다고 해서 그럼 일단 숙소에서 쉬고 각자 움직이기로 했다. 나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혼자 나라 방면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탄 이후 1시간 남짓의 시간이 지나 긴테쓰 나라에서 내려 목적지인 동대사(도다이지)로 걸음을 옴겼다. 길을 걸어가다보니 나라 사슴공원이 나오는데, 이 사슴공원은 불교의 성지 중 녹야원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사슴을 가까이 가서 보면 둥글둥글한 눈에 정말 순해 보인다. 그러나 주변에 가면 사슴 똥이랄까 특유의 냄새가 심하게 난다. 특히 여기 사슴들은 상인들이 파는 센베이를 무척 좋아해서 센베이를 들고 다니면 따라 다니고, 안주면 조금 난폭해(?)진다. 마치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는 배에서 새우깡을 들고 있으면 갈매기가 날아드는 것처럼 말이다. 과연 사슴들은 저런 과자만 먹고도 괜찬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물론 괜찮으니 주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사슴과 사진 한 컷 찍고 다시 총총 걸음으로 가다 보면 나라 국립박물관이 나온다. 금요일이고 아침이라 그런지 여기 박물관은 개관을 한 상태여서 기대감을 가지고 박물관으로 들어가 보았다. 마침인지 원래인지 모르겠지만 들어갔을 때는 “나라 불상관”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상에 관한 전시전이 열렸다. 그냥 다시 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앞섰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처음 겪는 박물관이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박물관의 관람은 일본 가마쿠라 시대부터 전해져온 불상부터 해서 다양하게 전시되어졌다. 특히 천수관음보살상은 여태까지 불상을 보아왔지만 불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성스러워 보이기는 처음이라 천수관음보살상만 한 10여분정도 계속 보았던 것 같다. 여기 박물관을 보면 초기의 불상이 조금 더 인간적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수려하고 인간적인 표현으로 감정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화려하고 예쁘게(?) 표현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점점 기존의 불상에 식상함을 느겼던 것 일수도 있고 또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표현을 조금 더 화려하게 가져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이를 보면 우리도 초기에는 사람냄새 나는 종교였지만 점점 화려하게 포장되어 겉만 화려해지고 초심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라 박물관을 나서서 동대사를 향했다. 동대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일본 화엄종의 대본산이며, 세계최고의 대불전과 청동불상 등이 있다. 동대사 입구에는 거대한 정문인 남대문(난다이몬)이 나를 반겼다. 남대문을 지나 대불전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한국인 가족관광객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대불전을 뒤로하여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조용하게 혼자 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대불전에 들어서면 먼저 중앙으로 청동 대불상(비로자나불상?)이 있고, 좌측으로는 허공장보살과 우측에는 여의륜관음상이 있는데 그 크기에 압도당한다. 우측의 여의륜관음상 옆으로 가면 기둥이 하나 있는데, 기둥을 보면 아랫면에 구멍이 어른 한명이 겨우 지나 갈 구멍이 하나 있다. 이 구멍을 빠져 나오면 불운을 막을 수 있다 하여 주변에 줄을 서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거나, 지인이 구멍에 빠져 나오지 못하면 잡아 당겨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불전을 뒤로 하고 옆으로 올라가다 보면 이월당과 삼월당으로 가는 작은 오솔길이 나온다. 걸어 올라가다 보면 계단을 중심으로 좌측은 이월당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삼월당이 보인다. 먼저 삼월당으로 갔는데, 이 삼월당은 “법화당”으로도 불리우며, 안치된 불상들은 나라시대에 만들어진 걸작들로 많다고 한다. 유료이고 가진 돈이 별로 없어 들어가 보지는 않고, 무료인 이월당으로 바로 이동 했다. 이월당은 매년 음력 2월마다 “오미즈토리”라는 슈니에(음력2월에 동대사에서 열리는 법회) 열린다고 해서 이월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월당의 정상에 올라가면 이월당차소라는 휴게실이 있으면 여기서는 무료로 차를 마실 수 있다. 다다미에 앉아 차를 한잔마시고 등랑(회랑?)을 통해 내려 동대사 뒤편으로 내려 왔다. 내려와 시간을 보니 아직 2시가 안되어 빠르게 가까운 곳에서 밥을 먹고 어제 못 가본 후시미이나리 신사로 가기위해 나라역으로 이동했다. 나라역에서 이나리 역까지 완행열차를 타고 고즈늑한 일본의 시골 마을을 구경하면서 가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이나리 역에 내려 드디어 도착한 후시미이나리 신사 이나리 역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바로 볼 수 있었다. 일명 여우신사라고도 불리 우고 “게이샤 추억”이라는 영화에도 나와 많은 볼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후시미이나리 신사는 특히 여우신사라 불리 우며 주변으로 여우모양을 한 물품들을 많이 팔고 있고, 붉은 도리이가 늘어서 길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신사의 중앙에서 참배를 하고 위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가면 끝없이 이어진 붉은 도리이가 펼쳐진다.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도리이에 기부한 사람의 이름과 날짜등이 기재되어 있다. 어떤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사찰을 지을 때 하는 기왓장 불사 같다고 할까. 단지 우리는 작은 기왓장을 올려 혼자만의 소원을 비는 것이라면, 후시미이나리 신사는 큰 모양의 도리이를 계속 연결하여 길을 만들어서 산 정상까지 관광객이 함께 즐기고 소원을 빌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차이점일거 같다. 도리이를 따라 계속 올라가다보면 작은 신사들이 하나씩 있다. 나는 산 중턱쯤에서 포기를 하였다. 3일 동안 발에 물집이 잡혀 도저히 올라가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다음을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내려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무척 고되었다. 그동안 어떻게 걸어 다녔는지 신기할 정도로 하지만 원래 목표로 했던 곳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기에 만족감이 앞섰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만족이라는 것이다. 우리 진각종은 만족을 하는데 있어, 내적만족과 외적만족을 다 같이 수행하는 것 같았다. 내적만족(만족)은 염송을 통해 내면의 자신을 성장시켜 물질에 관한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 같고, 외적만족(가치)은 나의 희사를 통해 기대하는 물질의 기대치를 낮추어 물질에 대한 상대적 만족감을 주는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6월 29일 일본 안녕!
 피곤한 몸을 깨워 우리들은 아침 일찍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빠진 짐은 없는지 어떻게 갈 것인지 부터 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12시40분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숙소에서 10시 나와 난바역에서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공항으로 가면서 이번 팀워크 여행을 갈 수 있게 해주신 종단분들에게 먼저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일어났다. 여행은 살아가면서 한 번씩 필요한 것 같다.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들을 비우거나, 정리 할 수 있게 되고 또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채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함께 하는 즐거움과 혼자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기에 더 큰 감사의 마음이 생겼다. 언제 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안녕! 

정공/대전교구청 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