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65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6-14  | 수정 : 200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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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의 불두(佛頭)- 역사·교리·수행적 변화상 반영 한국은 불의 존격 여래형이 주류 일본의 보관을 쓴 보살형과 차이 한국 중국 일본 3국 차별성 뚜렷 1. 불두의 전개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전개된 비로자나 불두의 유형에는 세 가지가 있다. 본래 불두는 불(부처)과 보살과 명왕의 모습을 구분할 수 있도록 조성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불을 의미할 때는 나발에 육계를 나타낸 여래형(如來形)의 모습이다. 그러나 보관을 쓰고 있는 형태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보관형 비로자나에도 두 가지 양상이 있다. 하나는 단순히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오지를 의미하는 오지(五智)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같이 똑 같은 비로자나의 모습이면서도 불두의 형태를 달리하고 있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불교의 역사 속에서 비로자나불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대승불교시대이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역사는 서력 1세기를 전후한 시기로부터 13세기 초까지 전개된다. 그 가운데에서 비로자나 불두의 다양한 전개는 불교사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교리와 실천철학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불은 숭고하고 근엄한 존격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전개와 더불어 밀교가 등장하면서 본래의 비로자나불 신앙에 대승의 보살사상이 가미되고, 즉신성불의 이론체계가 완성되었다. 여기서 새로운 색채를 띤 불격이 등장하고 불이면서도 보살이고, 보살이면서도 불인 듯한 존격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도 중기밀교의 경전에 입각한 보관의 비로자나와 그 후기밀교에 해당하는 오지보관의 비로자나인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혁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여튼 그와 같은 변천과정 속에서 새로운 양상의 비로자나가 등장했다. 이것을 초·중·후기로 구분하면 초기 대승불교 비로자나불의 불두는 석존의 모습과 같은 형태의 나발형이고, 중기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등장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비로자나불의 불두는 보살과 같이 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후기 비밀집회경과 같은 밀교경전이 등장하게 되면 그 모습은 오지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나발형과 보관형은 분명히 불과 보살을 구분하는 특징적 요소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발형은 즉위한 국왕의 모습이며, 보관형은 책봉된 태자의 모습인 것이다. 그것은 금강정경에도 나와 있듯이 의성취보살 즉 싯달다태자가 오상성신관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 불이 되었듯이 보관은 태자의 모습이며 나발은 불의 모습인 것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전통은 불교의 유전과정 속에서 동북아시아의 각 지역에도 전개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의 경우 태자형, 즉 보살형의 비로자나 불두는 존재하지 않는다. 2. 한중일 삼국의 불두 우리나라의 경우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비로자나의 불두는 나발에 육계를 갖춘 형태의 존격이다. 그것은 일본이나 티베트 등지에서 발견되는 비로자나의 모습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우리나라 비로자나불의 형상은 전통적인 방식의 존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긴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에도 대승에서 밀교에 이르는 다양한 경전들이 전래되었다. 그러나 그에 따른 영향을 심하게 받지 않고, 불과 보살이 구분되는 존형 표현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보관형이나 오지보관형의 비로자나의 모습은 발견되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비로자나불의 불두는 중국의 경우 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과 보관을 쓰고 있지 않은 모습으로 대별된다. 그것은 인도에서 중국에 전래된 경전 중에서 대일경계의 경전에 의거하여 도화된 존형은 보관을 쓰지 않고, 나발에 육계를 한 불의 모습이다. 여기에 대해서 금강정경계 비로자나불의 모습은 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보관을 쓴 불은 전통적인 불상의 범주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형상이다. 이와 같이 나발형과 보관형의 비로자나 불상이 등장하게 된 것은 밀교경전의 전개과정과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초기 대승의 영향이 강한 대일경의 경우 일반적인 형상의 비로자나불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유가부 밀교의 세력이 융성해지면서 성립된 금강정경의 경우 기존의 석존을 분명하게 대신할 수 있는 존격의 모습인 보관의 비로자나불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상은 선무외삼장이 도화한 것으로 되어 있는 태장도상과 불공삼장이 도화한 것으로 되어 있는 태장구도양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쨌든 중국에서는 대승불교의 영향 하에 형성된 대일경계의 비로자나의 모습과 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형 비로자나불의 형상이 공존하고 있다. 세 번째로 일본의 경우는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에 보살과 같은 보관을 쓰고 있는 형태의 비로자나불이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나라와 계통을 달리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본의 비로자나불은 밀교경전의 영향 하에서 보살형의 비로자나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네 번째로 티베트의 경우는 인도 후기밀교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보살형의 보관에서 더 나아가서 오지보관을 쓰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3. 불두의 실천철학 이와 같이 비로자나불의 모습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히 역사적으로나 교리, 수행적으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형상에서 변화가 발생한 것은 초기대승의 가르침이 밀교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불의 존엄한 모습이 보살과 같이 이타행을 하는 불로 전변된 것이다. 이것은 행동과 실천을 중시하는 대승불교 이념이 반영된 밀교적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서 오지보관의 비로자나는 단순히 보살의 활동이 아니라 그것은 오지력(五智力)에 의거한 강력한 지혜의 활동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면 삼국시대 이래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 전개되고 있는 비로자불에 대한 신앙은 역시 지극히 근엄한 불의 존격을 이상형으로 하는 것이며, 불과 보살은 분명히 구분되어져야 한다는 사상을 기반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