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살님이 주말에 아들네 가서 우연히 냉장고를 봤는데 생수병, 음료수, 맥주밖에 없고 쌀통도 텅텅 비어있는데, 라면 봉지는 쓰레기통에 잔뜩 쌓여있더랍니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을 냉장고를 봐 버렸으니 속으로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거예요. ‘주중엔 바빠서 그렇다 쳐도 주말에는 밥 한 끼 정도 해먹을 수 있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부터 해서……. 때마침 아들 혼자 놔두고 친구들 만나러 외출한 며느리에게 서운하고 아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맞벌이기도 하고, 꼭 여자가 밥하란 법 없고 남자도 알아서 챙겨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들 내외 사는 모습을 보니까 한숨이 나오더라는 거지요. 섭섭한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저녁 늦게 돌아온 며느리에게 “반찬 좀 해다 줄까?” 하니 며느리가 하는 말이, “저희 일주일에 집에서 밥 한번 먹을까 말까예요.” 그러는데, 이쯤 되니 슬슬 부예가 나서 진심 나기 전에 서둘러 집을 떠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며느리도 평소에 시어머니에 대한 섭섭한 마음과 원망심이 없는 게 아니었어요. 결혼 후 처음 크리스마스를 맞았을 때 일이랍니다. 맞벌이 부부라서 서로 일 마치고 미리 예매했던 영화를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하필 시아버님이 갑자기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혼자 계신 시어머니가 외로우실까 봐 영화 보는 걸 취소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를 오시라고 해서 모시고 집 근처 식당에서 같이 저녁 식사를 했대요. 신혼인데도 남편과 둘이 데이트도 못 하고 영화도 취소한 게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시어머니께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에 차츰 마음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되려 짜증스러웠던 마음을 참회하게 되더라는 거지요. 그런데 남편이 술을 조금 마시는 바람에 운전을 못 하니 택시를 잡아서 시어머님을 태워드리며 용돈 오만 원을 쥐어드렸대요. 거리로 따지면 5~6천 원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연말이기도 하고 해서 조금 더 드렸다는 거예요.
식당에서 집까지 걸어서 10분도 채 안 되었는데, 남편과 이 보살님은 집에 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간식거리를 조금 사서 집에 오자마자 영화를 다운받아 보자며 “뭐가 재밌지?” 하면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잘 도착했는지 걱정도 안 되더냐?”며 역정을 내시면서 막 우시더라는 거예요. 이 보살님 입장에서는 시댁 다녀오면 매번 전화를 드렸었고 그날 역시 전화를 드릴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조금 늦어져서 타이밍을 놓쳤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우실 일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본인도 잘해드리고 핀잔을 받으니 섭섭한 마음이 더 크게 들더라는 겁니다. 그 바람에 기분이 안 좋아져서 남편과도 보기로 한 영화를 안 보고 그냥 잠이나 자자며 그렇게 결혼 첫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대요. 그런데 문제는, 크리스마스가 지나서도 아직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으셨는지, 시어머님이 며느리 전화 수신 거부를 해 놓으시고는 보살님 전화는 안 받고 남편 전화만 받으시더라는 겁니다. 이럴 때 시어머님을 다시 안 볼 수도 없고, 며느리 입장에서 보통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거예요. 잘못을 했으면 찾아뵙고 용서를 구하면 되는데, 크게 잘못 한 게 없는 것 같은데도 질책을 받으면 그 섭섭함을 어떻게 해소할 길이 없거든요.
진리로 보고, 당체로 보면 모든 것은 인과법입니다. 시어머니의 얄궂은 행동은 결국 며느리가 살펴볼 참회거리가 되고, 며느리가 보인 허물은 시어머니가 돌아봐야 할 참회거리가 되는 거예요. 이럴 땐 우선은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참회해야 합니다. 누구나 다 원하는 게 있어요.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이건 좀 이랬으면, 저건 좀 저랬으면, 사소한 일이지만 늘 바라는 게 많습니다. 상대를 탓하고 바라는 마음이 일어날 때 어떻게 서원하고 정진하면 좋을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가정이 평안하지 않은 원인이 나에게 있는 줄 모르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미루고 며느리는 시부모에게 있다고 한다. 수족(手足)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하자면 몸 전체를 바르게 해야 한다.” (실행론 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