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고통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밀교신문   
입력 :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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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부가 주유소에 들렀어요. 종업원이 기름을 넣는 동안 차 앞 유리를 닦아주었는데, 기름이 다 찰 때까지 닦았는데도 여전히 더러웠습니다. 각자님이 “먼지가 그대로 묻어 있는데, 한 번 더 닦아주세요.”하고 역정을 냈더니, 종업원은 시큰둥한 얼굴로 “깨끗한데 뭘 더 닦으라는 거냐”며 불쾌해했어요. 고성이 오갈 찰나에 옆에 앉아 있던 보살님이 갑자기 각자님의 안경을 낚아챘습니다. 알고 보니 차 앞 유리가 더러웠던 게 아니라, 각자님의 안경이 더러웠던 거였지요.

 

누구나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해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다 보니 내 견해를 지키려는 고집, 즉 아집(我執)이 생겨나는 거잖아요? 내 고집대로 되면 좋겠지만, 내 고집에 반대하는 사람과 싸우게 되니 괴롭지요. ‘옳다’, ‘그르다’라는 분별을 잠시 내려놓으면 되는 건데, 그게 잘 안 되니 마음이 평온할 수 없는 거예요.

 

옛날에 어느 젊은 부부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아내를 시켜 술 항아리 속의 포도주를 퍼오도록 했어요. 아내가 술을 퍼내려고 항아리 속을 들여다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면 그 술 항아리 속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지요. 아내는 화가 잔뜩 나서 남편에게 돌아가 따져 물었어요.

 

“여보, 당신이 어떻게 나 몰래 다른 여자를 데려다가 독 안에 숨겨 둘 수가 있어요?!”

 

억울한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술독으로 달려갔어요. 그런데 술독 안을 들여다보니 여자가 아닌 남자가 들어있는 겁니다. 남편은 노발대발하며 아내를 꾸짖었어요.

 

“이 나쁜 여자야, 웬 놈팽이를 독 속에 숨겨놓고는 되려 나한테 여자를 숨겼다고 하느냐?”

 

부부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고, 마침내 독을 깨뜨려 그 안에 누가 있는지를 가려내기로 했습니다. 술독이 깨어지고 술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속에서는 여자도, 남자도 나오지 않았어요. 술독 속에 비친 남자와 여자는 바로 그들 자신의 그림자였기 때문이지요.

 

이 얘기는 공한 현실을 실재의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범부들의 삶을 비유한 것입니다. 어린 시절, 어두운 시골길을 걷다가 뱀을 보고 기겁한 적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도 미동조차 안 하길래 가까이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뱀이 아니라 굵은 나뭇가지더라고요. 이처럼 내 몸의 감각기관도 믿을 것이 못 될 때가 허다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행복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전도몽상(顚倒夢想) 때문이에요. 전도몽상은 ‘뒤바뀐 생각’ 곧 ‘주객이 전도된 생각’을 말하는데, 이는 석존께서 설하신 팔정도(八正道)로 보자면 바르지 못한 견해를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변하는 것을 변하는 것으로 보지 못한 채 허깨비를 실제로 보고, 꿈을 현실로 착각하는 삶이 바로 범부의 삶입니다. 이를 바로 깨닫고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원리전도몽상이요, 반야바라밀이지요. 모든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수행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 뒤바뀐 꿈결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 마침내 궁극의 열반에 들게 된다고 설하는 것이 바로 ‘반야심경’ 내용의 핵심입니다.

 

불교의 이상은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이 없는 행복, 걸림이 없는 자유를 누리는 데 있습니다. 이는 곧 열반과 해탈의 증득을 말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지와 미혹을 깨치고 지혜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 세상의 모습을 존재하는 그대로 여실히 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현실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고통은 주관적 사실이다. 고(苦)는 전도망상(顚倒妄想)에서 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죽음의 공포도 그러하다.”(‘실행론’ 4-10-14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