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느림에 대한 단상

밀교신문   
입력 : 2019-09-10 
+ -

20190708160535_94f4f64c3d7f8860ce80aaba86323fd3_e0lp.jpg

 

현대인의 삶은 빠름을 추구한다. 무한경쟁 시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빨리 결정하고 빨리 움직이고 빨리 완성하는 것에 긍정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빠름은 부지런함이나 능력으로 인정되고 반대로 느림은 게으름이나 무능력으로 치부되고 있다.

자는 임상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시절, 간호사는 바쁘게 움직여야 되고 앉아있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일하였다. 식사 시간은 십 분을 넘기면 동료간호사 에게 민폐가 되고 뛰고 있으면 윗사람에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환자의 말을 들어주고 같이 앉아 있다가 일은 하지 않고 게으름 피운다는 오해를 받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환자를 돌보면서 자연히 빠름은 간호사의 능력과 동일시되었다.

 오늘날 빠름이 능력과 동일시되는 직종이 어디 한 두 직종이겠는가? 삶의 여유를 가지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서 조차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초스피드 식사를 하고 유적지를 스캔하듯 사진만 찍으면서 다니고 있는 것도 우리의 문화가 되어 가고 있다. 바쁜 생활이 일상이 되어 버린 현대사회의 생활 패턴은 단시간 내에 많은 생산을 해야 하는 물질문명 시대의 우리의 사고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지혜가 있다. 그것은 갑자기 달려드는 시간에게 허를 찔리지 않고 허둥지둥 시간에게 쫓겨 다니지도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알 수 있는 지혜이다. 우리는 그 능력을 느림 이라고 불렀다.”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에세이를 통하여 느림이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말하며 삶에 대한 고요하고 진지한 성찰의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진정한 욕구보다는 구조화된 사회적 패턴에 의해 기계적인 흐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열망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잊은 채 빨리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는 속도의 전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지난 날 생각의 속도보다 빨리 움직여야 하는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쉬는 날에는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풍경을 바라보고 바닷가에 앉아 노을이 질 때까지 꿈을 꾸며 시간을 잊은 채 스탠드 아래에서 음악을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시간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의 휴식과 마음 속 깊은 곳의 여유와 따뜻함이 자라날 수 있었던가? 그 느림의 시간들이 내가 하는 간호의 손길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무조건 일을 빨리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응급실에서 조차 한 템포의 느긋함이 상황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여 부드럽고 치유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었다.

 

느림이란 진정으로 그 무엇에 대한 관심이고 열정이며 세상과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되어줄 것이다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인간을 돌보게 될 나이팅게일의 후예들에게 결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키워주고자 한다.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로 바로 바로 정해진 답을 풀어내는 폐쇄적 사고보다는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대안을 찾는 개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싶다. 이 위대한 사고의 힘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느낌을 가지고 느낌을 표현하며 자연에 감사하면서 영혼의 쉼표를 그릴 수 있는 느림의 시간들 속에서 그 싹을 키울 것이다.

 

박현주 교수/위덕대 간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