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곳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었습니다.
“
20미터 밖에서 아내를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면 아내가 조금 늙은 거고, 10미터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을 못 하면 많이 늙은 거다. 5미터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을 못 하면 심각한 상태다.”
자신의 아내가 어느 정도 늙었을까 궁금해진 한 남편이 테스트해보기로 했어요. 퇴근한 뒤 집에 도착하기 20미터쯤 전 지점에서 아내를 불러봤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 마누라가 늙긴 늙었나 보다…….’
10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아내를 다시 불렀어요.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역시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 마누라가 벌써 이렇게 늙었단 말인가…….’
다시 5미터 거리에서 아내를 불렀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그런데 대답이 또 없는 거예요.
‘아!!! 마누라가 (속된 말로) 완전히 맛이 갔구나…….’
탄식을 하며 집에 들어섰는데 주방에서 음식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측은한 마음이 든 남자가 뒤에서 아내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으며 나직이 물었어요.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그러자 아내 왈,
“야! 이 영감탱구야, 내가 수제비라고 몇 번을 말했냐?!”
알고 보니 아내가 늙은 게 아니라, 남편 귀가 어두웠던 겁니다.
상대의 허물이 보이는 것은 나에게도 그와 같은 허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상대의 허물을 보지 말고 내 허물을 고쳐 나가야만 반드시 복이 됩니다. ‘복’이란 게 과연 뭘까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넓게 보는(示) 것’이 바로 ‘복(福)’이랍니다. 그럼 반대로 ‘화(禍)’는 뭘까요? ‘상대의 허물(過)을 보는(示) 것’이 바로 ‘화’라고 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 그대로 ‘상대 허물 보지 말고 내 허물을 고치는 것’이야말로 화를 부르지 않고 복을 가져오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어요.
‘허물없는 사이’라는 얘기를 종종 하잖아요?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허물이 보이지 않는 사이라는 뜻이겠지요. 세상과 이웃의 허물을 들여다보는 대신 멀찍이 밀어놓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상대의 허물은 모래 위에 새기고 자신의 허물은 바위에 새겨야만 복이 장원해지겠지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은 숭고한 용기입니다.
행복하려면 내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해요. 그리고 상대를 원망하고 탓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잘하려고 노력하는 업을 자꾸 지어놔야 합니다. 서로가 듣기 싫은 소리도 즐겁게 들을 수 있도록 마음 그릇을 키워 원망을 줄이고 은혜와 감사를 실천하는 진언행자가 되기를 서원합니다.
“심인공부는 자기의 허물을 자기가 보는 것이다. 겉으로 말로만 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참회하고 실천할 때 자기의 허물을 낮과 같이 밝게 볼 수 있다.”(실행론 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