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禍)를 부르지 않고 복(福)을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밀교신문   
입력 : 201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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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었습니다.

20미터 밖에서 아내를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면 아내가 조금 늙은 거고, 10미터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을 못 하면 많이 늙은 거다. 5미터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을 못 하면 심각한 상태다.”

자신의 아내가 어느 정도 늙었을까 궁금해진 한 남편이 테스트해보기로 했어요. 퇴근한 뒤 집에 도착하기 20미터쯤 전 지점에서 아내를 불러봤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대답이 없었습니다.

 

! 마누라가 늙긴 늙었나 보다…….’

 

10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아내를 다시 불렀어요.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역시 대답이 없었습니다.

 

! 마누라가 벌써 이렇게 늙었단 말인가…….’

 

다시 5미터 거리에서 아내를 불렀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그런데 대답이 또 없는 거예요.

 

!!! 마누라가 (속된 말로) 완전히 맛이 갔구나…….’

탄식을 하며 집에 들어섰는데 주방에서 음식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측은한 마음이 든 남자가 뒤에서 아내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으며 나직이 물었어요.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그러자 아내 왈,

! 이 영감탱구야, 내가 수제비라고 몇 번을 말했냐?!”

 

알고 보니 아내가 늙은 게 아니라, 남편 귀가 어두웠던 겁니다.

 

상대의 허물이 보이는 것은 나에게도 그와 같은 허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상대의 허물을 보지 말고 내 허물을 고쳐 나가야만 반드시 복이 됩니다. ‘이란 게 과연 뭘까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넓게 보는() 이 바로 ()’이랍니다. 그럼 반대로 ()’는 뭘까요? ‘상대의 허물()을 보는() 이 바로 라고 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 그대로 상대 허물 보지 말고 내 허물을 고치는 것이야말로 화를 부르지 않고 복을 가져오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어요.

 

허물없는 사이라는 얘기를 종종 하잖아요?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허물이 보이지 않는 사이라는 뜻이겠지요. 세상과 이웃의 허물을 들여다보는 대신 멀찍이 밀어놓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상대의 허물은 모래 위에 새기고 자신의 허물은 바위에 새겨야만 복이 장원해지겠지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은 숭고한 용기입니다.

 

행복하려면 내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해요. 그리고 상대를 원망하고 탓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잘하려고 노력하는 업을 자꾸 지어놔야 합니다. 서로가 듣기 싫은 소리도 즐겁게 들을 수 있도록 마음 그릇을 키워 원망을 줄이고 은혜와 감사를 실천하는 진언행자가 되기를 서원합니다.

 

심인공부는 자기의 허물을 자기가 보는 것이다. 겉으로 말로만 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참회하고 실천할 때 자기의 허물을 낮과 같이 밝게 볼 수 있다.”(실행론 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