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내가 닮고 싶은 직장에서의 어른 모습

밀교신문   
입력 : 2019-10-04 
+ -

 

20190726153824_ea1c2d489cef26945969ceccfddc6d1f_nleq.jpg

 

요즘 어떻게 지내?”, “회사는 어때?”, “팀원은 괜찮아?” 스타트업이었던 첫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질문하는 사람은 매번 바뀌지만, 나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지금 보스를 만나기 위해 이 회사에 입사한 것 같아!” 하지만, 신나게 대답하던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여느 스타트업과 다르지 않게 큰 포부를 안고 입사한 직원들은 짧은 기간 동안 고강도 업무를 처리하다가 건강 문제 또는 심리적 위기를 겪고 난 뒤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훌쩍 떠나버리고 말았다. 나의 세 번째 사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팀을 이끌던 보스가 사라지자 가벼이 주고받던 안부도 갑자기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와 맞닿는 느낌을 받았다. 무술 만화책이나 액션 영화에서처럼 나약한 주인공을 수련시키는 스승과 같은 나의 보스는 그렇게 사라졌다. 돌아가던 나침반이 뚝, 멈춘 기분이다. 열정만 남은 난 어느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 것인가

 

스타트업에서 1년 넘는 기간 동안 총 3개의 서비스를 열었다가 닫았고, 세 명의 사수와 함께했다. 그 세 명의 사수의 공통점은 모두 S대 경영학과 출신이었고, 공교롭게도 휴직한 상태에서 모두 퇴사하였다. 물론,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거나 꿈을 실행하기 위해 떠났기에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냈다. 어떤 선택이든 존중하며, 응원하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더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감명받았던 보스의 모습을 정리하면서 이젠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는 희망을 키워본다.

 보스는, 내가 좋아하는 이성적인 어른 중 가장 감성적인 사람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처럼 일 처리가 정확하고 빠르다. 업무뿐만 아니라 주변도 깔끔하게 정리하며 수없이 야근을 해도 머리부터 구두까지 늘 말끔한 차림이었다. 편안한 복장을 추구하는 문화였으나, 컨설팅 출신답게 잘 다려진 셔츠를 즐겨 입었고, 메신저에서 가벼운 농담을 할 때나 급한 상황 속에서도 한치의 오타나 띄어쓰기 실수도 없을 정도로 매사에 빈틈이 없었다.

 

철두철미하고 냉철한 인상을 풍기지만, 첫 서비스 런칭을 축하하기 위해 내가 직접 만든 케이크를 받곤 기대 이상으로 크게 감동하며 시간이 흘러도 작은 성의에 감사함을 표현할 정도로 인간미 넘치는 분이다. 말투가 그 사람의 인성을 비추는 거울이라 하는데 늘 정중하고 부드러운 어투로 아무리 까탈스러운 상대에게도 부드럽게 녹여 버려 언어의 마술사로 통했다. , 요구사항이 벼락처럼 순식간에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피뢰침처럼 흡수해 팀의 업무를 분배하면서 단 한 번도 감정적으로 흥분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비흡연자였기 때문에 늘 쾌적한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플러스였다.

 

많은 것을 배워야 할 인턴 시기였기에 어떤 사수든 잘 따르던 나였지만, 마지막 보스가 유난히 특별한 이유는 나를 진심으로 키워준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고 있을 때만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가 업무를 하다가 쩔쩔매는 기색이 보이면 그때그때 필요한 스킬을 알려주었다. 마치 게임을 하다가 적절한 순간에 필요한 아이템을 주듯.

 

파워포인트, 엑셀 각종 프로그램 치트키 사용법부터, 홍수처럼 넘치는 자료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파일을 쉽게 분류하는 법,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법, 목적도 모르고 업무만 주어질 때 용기 내서 질문하는 법, 내 의견을 효과적이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법, 상대방을 설득하는 법, 그리고 핸드폰 용량 늘리는 방법까지도, 심지어 모니터를 오래 본 후 충혈된 내 눈을 보곤 안구 보호를 위해 청 광 렌즈까지 추천해 주는 센스까지! 주방용품 추천이나 살림 정리하는 각종 생활 팁까지 거의 뭐 위키 백과 수준이다. 쉽사리 질문도 못 했던 신입 때, 관심 갖고 지켜봐 주시며 아낌없이 정보를 공유해 주셨다. 내 성장이 궁금해서 더 많이 알려주게 된다는 보스의 말에 감동의 눈물이 핑 돌았다.

 

평일 하루 8시간 이상씩 매일 같이 시간을 보내며 능력 있는 팀 리더, 사랑스러운 아들, 가정적인 남편, 다양한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결국 흠을 발견하지 못해 지금까지 내 마음속 슈퍼스타이자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같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알았다면 더 많이 야근해서라도 가까이에서 배우고 익힐걸상대방의 저 허물이 내 허물의 그림자라는 데 지금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인턴에게 나는 어떤 어른으로 비쳐질까?

 

양유진/네이버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