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66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7-29  | 수정 : 2004-07-29
+ -
(천불과 진언법계) 1. 진언문화 형성의 배경 우리나라의 불교는 주변지역에서 흔히 발견할 수 없는 진언독송 신앙과 진언장엄 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소리가락과 글을 즐길 줄 아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진언을 독송하는 신앙이나 도량의 진언장엄으로 승화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것은 근세까지도 밀교계가 아닌 선가에서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이나 '아비라훔캄' 대일진언 같은 다양한 진언이 널리 독송되고, 도량의 장엄에 진언을 활용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진언을 독송하고, 그것을 가지고 장엄하는 문화가 널리 유포된 것은 아마도 진언자체에 신비성과 포괄성, 함축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화엄신앙과 정토신앙, 선수행이 활발했던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 속에서 진언은 신비성과 함축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독창적 진언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화엄과 밀교의 만남은 신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지극히 한국적인 진언문화를 창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반도의 서남해안 지방에 위치한 사찰들에서는 그와 같은 특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여기서 우리들은 화엄의 연화장세계관과 밀교의 진언법계관이 어우러진 우리나라 특유의 진언법계도를 미황사의 대웅보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전각은 16세기 말 중건불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 중반에 재차 대대적인 중건불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후 18세기 중반에 중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체적으로 이 시기는 당시의 국제정세로 보아 청나라가 주변국가들에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 때에 해당한다. 티베트, 동남아시아, 몽골, 한반도 등지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청나라는 불교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주변지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우리들은 한반도와 청나라간의 관련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적으로 조선시대의 도량장엄은 오늘날 몽골지역에 산재해 있는 사찰들의 모습과 유사한 점들이 많은데, 이것은 대부분 청나라 때 몽골지역에 건립된 사찰들이다. 다만 이들 사찰들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천정을 진언이나 연화문 일색으로 장엄한 도량은 발견하기 힘들고, 만다라나 연화문중 육자진언으로 장엄된 도량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한반도의 사찰에서 주변 지역과는 다른 형태의 진언장엄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화엄과 밀교의 전통이 두루 어우러져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2. 다즉일 세계관의 형성 불교경전의 성립사에서 화엄과 밀교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수많은 밀교경전 중에서도 대일경과 금강정경은 화엄의 교리적 완성도를 높여준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일경에서 설하는 태장만다라 세계관은 화엄경의 연화장세계관이 연원이 되어 대비행을 근간으로 한 만다라세계의 구현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금강정경의 금강계만다라 세계관은 연화장세계관의 자비를 근간으로 해서 오부오불의 지혜를 전개시켜 나아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은 밀교적 세계관의 형성은 "모든 부처님의 비밀스런 곳은 신밀과 구밀과 의밀이다"라고 설하는 화엄경 십지품의 삼밀사상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삼밀사상과 연화장세계관은 범망경에 이르러 구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범망경의 연화장세계관에서 거대한 연화의 중심에는 비로자나불이 계시고, 바깥쪽으로 펼쳐진 천엽연화의 꽃잎 하나 하나에는 비로자나불의 화현인 일천 존의 석가불이 머물고 계신다고 묘사하고 있다. 나아가서 인도의 밀교승 파드마바즈라는 비로자나불과 모든 여래들의 관계는 다즉일의 관계이기 때문에 양자를 하나로 정리한 것을 법신 대일여래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우리들은 해남 미황사에서 연화장세계관과 다즉일의 교리를 진언과 천불의 세계로 묘사한 장엄을 발견하게 된다. 2. 천불과 진언법계도 우리들은 한반도의 서남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들에서 진언과 천불이 서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흔히 발견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대둔산 대흥사의 경우는 천불전을 가람 내에 배치하고, 그 전각의 외벽을 존형과 진언으로 장엄하고 있다. 그리고 미황사 대웅보전의 경우는 일반사찰의 천불전과 대웅전을 조합해 놓은 것과 같이 천불과 진언으로 도량을 장엄한 형태이다. 여기서 미황사의 대웅보전에는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존으로 해서 그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천정에는 서른자의 실담으로 된 진언장엄과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의 대들보에는 천불이 도화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본존과 천불도와 진언장엄이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창건 이후 중건과 중수과정을 거치면서 도량장엄 당시 발원자의 서원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들은 여기서 진언장엄과 천불장엄의 신앙적 관계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천불과 진언장엄은 화엄과 밀교의 만남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화엄경에 설해져 있는 법신 여래의 비밀스런 신구의밀의 세계는 진언문자의 상징성으로 표현되었으며, 그것이 구상화된 화현의 세계는 천불을 통해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미황사의 진언장엄과 천불도는 화엄적 사고를 근간으로 해서 진언과 형상으로 표현된 밀교적 진언법계도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