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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하는 당신이 애국자입니다.

밀교신문   
입력 :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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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니 이제는 바깥 활동을 줄이는 대신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어집니다.

 

창밖에 비치는 겨울나무는 진한 갈색을 띠면서 그 생명력이 더욱 강해지고 가지 끝에 매달린 빛바랜 이파리의 안간힘이 안스러워도 겨울은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책꽂이의 책들을 둘러보다가 문득 <걸리버 여행기>라는 소설이 눈에 띠었습니다. 1726년에 조너선 스위프트라는 영국소설가가 쓴 풍자 소설이지요. 어느 초등학교에서나 필독서였습니다만, 워낙 내용이 방대하여 대부분 줄거리만 알 수 있게 만든 축약본입니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두 번째 읽는 내용이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주인공 걸리버가 항해를 하다가 배가 난파당하여 릴리퍼트라는 소인국(小人國)에 도착하여 보고 들은 내용입니다. 걸리버가 그 섬에 도착해보니 그곳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달걀을 먹을 때 뾰족한 끝 작은 모서리부터 깨서 먹는 것이 좋다는 사람들과 중간 큰 모서리부터 깨서 먹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서로 편을 갈라 격렬하게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그마한 문제 하나로 각각 작은 모서리파큰 모서리파로 갈라져 소모적 다툼을 계속하고 있으니 그 소인국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수많은 사람이 죽고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광화문은 서울의 명물이자 시민들의 중요한 휴식공간입니다. 가까운 곳에 경복궁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걷기 참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외국인들도 무리지어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광화문광장이 정치 시위 단골장소로 변하여 많은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진보지지 세력과 보수지지 세력이 서로 맞불을 놓듯 연일 대규모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시의적절(?)하게도 어떤 보살님이 난감한 질문을 해 옵니다.

전수님, 왜 불교는 집회에 동참하지 않나요? 불공만 한다고 해서 나라가 안정되고 발전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렇게 추운 날씨에 시위대에 앞장서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다른 종교 지도자가 저는 참 존경스럽네요.”

 

여기에서 나에게는 보살님이 정치적으로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 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민주사회에서는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시민들 또한 자유롭게 진보와 보수의 편에 서서 상대편을 견제하고 자기편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서로 애국하는 방법이 다를 뿐인 것입니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 발표했습니다. 공명지조는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그러다간 모두 죽고 만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명지조는 불교경전에 나오는 머리가 둘 달린 새로서, 어디를 가든지 모든 것을 함께 합니다. 어느 날 한 머리가 졸고 있던 중, 다른 한 머리가 눈앞의 맛있는 열매를 혼자 먹으면서 내가 배부르면 다른 머리의 배도 부르겠지.’ 하며 혼자 열매를 먹고 잠이든 사이 열매를 못 먹은 머리가 열매 먹고 잠든 머리를 질투하여 독이든 열매를 먹어버립니다. 결국 몸이 하나인 두 머리는 죽게 되는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흰 종이에 검은 먹 한 가지 톤으로 그린 그림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곳곳에 묽은 먹으로 그린 회색빛이 적절하게 첨가 되어야만 진실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그림이 됩니다. 그런데도 검은 먹과 흰 종이처럼 양 극단으로 갈라져서 서로 자기 주장만하고 상대를 비방한다면 세상이 어찌되겠습니까? 자기편을 들지 않는다고 하여 회색빛으로 중도를 지키고 진리를 수호하는 사람들을 나무라서야 되겠습니까? 그나마 중도세력과 진리를 따르는 자가 있으니 세상이 바르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당대종사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법문하셨습니다.

표면에는 자유경제(정치) 혼탁한 것 같지만 이면(裏面)에는 자유종교 정화기관 되어 있다.” <실행론 5,8,4>

 

우리 불교가 나라가 처한 어려움에 아무 관심도 없이 불공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로 국가가 위기를 맞이했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나 악과 싸웠던 전통을 우리 불교가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국가의 위기가 아닙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인정하고 양보와 배려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걸리버여행기>의 소인국 사람들이 벌였던 대결구도 같은 것일 뿐입니다. 우리 진각인들은 진호국가불공으로 그들이 서로 화합하기를 서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리로 나아가기보다 서로 화합하기를 서원하고 진호국가불공하는 당신이 애국자입니다.

 

회당대종사님의 진호국가불사에 대한 말씀 중에 경애법(敬愛法)이 바로 그에 대한 진리입니다.

 

경애법은 국민이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여 이 나라를 화목하게 하고 융화시켜 나가는 법이므로 만사(萬事)의 으뜸이 된다. 자성일 진호국가로 불공하면 자손과 재물이 뜻대로 잘된다. 심인불교에서는 모든 사악(邪惡)한 일이 진압되니 곧 국가문제도 진압되어 해결된다.<실행론 3,5,4>

 

이행정 전수/무애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