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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과 결과는 반연(攀緣)에 따른다.

밀교신문   
입력 :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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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당 앞 목련나무가 잎을 다 떨군 채 겨울 추위에 마냥 대책 없이 서 있는 듯 보입니다. 겉보기에 곧 말라죽어버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무는 그냥 그렇게 마냥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추위에 소용없는 잎들은 다 떨구어버린 채 땅속 깊은 곳에서는 곧 다가올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가열 찬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그러고는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열매를 맺으며, 가을이 되면 잘 익은 열매를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모든 존재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새해입니다. 따지고 보면 날마다 새로 오는 날이요, 어제의 연속일 뿐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묵은해니 새해니 하며 구별하여 먼 곳까지 가서 일출을 보며 자신이 뜻하는 일이 잘 되기를 원하지만, 마음이 새것이 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마음을 새것으로 바꾸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새해는 작년, 어제와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진각인들은 새해가 되면 혼탁해진 마음을 닦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기 위해 새해불공을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란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존재에게도 차별 없이 내려 비추는 햇살 같은 존재임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행복 찾기란 미명하에 새해가 되면 신수(身數·사람의 운수)를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마치 사주풀이의 결과가 곧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양 일희일비하곤 하지요. 희한한 것은 신수를 보는 사람들 중에 어떤 종교이든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는 점입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사람들에게는 더러 광대한 우주에서 스스로 티끌 같이 하찮은 존재로 여기어 지레 겁을 먹고 자신의 운명을 다른 곳에 맡겨버리려는 습성이 있거든요. 자신이 씨줄날줄이 되어 당당하게 그 광대한 우주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종종 어려운 일이 닥치면 모든 것을 사주팔자 탓으로 돌리고 체념하곤 합니다.

 

사주(四柱)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아주 오래된 학문(?)인 음양학에서 사람을 하나의 집으로 비유하고 생년·생월·생일·생시를 그 집의 네 기둥(四柱)’이라고 보아 붙여진 명칭이랍니다. 그리고 각각 간지 두 글자씩 모두 여덟 자로 나타내므로 팔자(八字)라고도 한다는군요. 그러니 사주와 팔자는 같은 말이 되지요. 아무튼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주팔자로 그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하니 개개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무시무시한 뜻이 됩니다. 노력해도 자신의 삶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숙명론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의 운명이 과연 태어난 날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요? 이러한 숙명론적인 논리는 부처님 말씀에 비추어보면 매우 황당하고 허망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있게 마련이며, 원인이 진행되어 결과가 있게 하는 반연(攀緣)의 과정이 있습니다. 반연은 인과의 원인이 결과로 진행되는 과정이고요. 그러나 원인이 좋아도 반연하는 과정이 잘못되어 결과가 나쁠 수도 있으며, 원인이 좋지 않더라도 반연하는 과정이 좋아서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는 반연에 따른다<아함경> 말씀이 있는 것이지요.

 

농사와 비유해볼까요? 원인은 씨앗이고 결과는 열매입니다. 또 반연은 농사꾼의 능력과 자연조건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참깨 씨앗을 뿌렸다고 가정해봅시다. 게으르고 능력 없는 농사꾼을 만나거나 때에 맞지 않는 가뭄과 장마가 계속된다면 과연 좋은 참깨를 수확할 수 있을까요? 그럴 리가 없겠죠. 반대로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농부를 만나고 때에 맞추어 비가 내리고 때에 따라 따뜻한 햇볕이 내리쬔다면 참깨 씨앗이 좀 부실하더라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주팔자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의 사주팔자가 어떻든 간에 반연에 따라 언제라도 그 운명이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즉, 새해에 우리는 사주팔자의 결과보다 마음 다스리기에 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혹 심심파적으로 신수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근본인 심인법(인과법)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불공하여 심인법을 세워야만 세간법(사주·관상·풍수)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먼저 몸이 아플 때 희사와 염송으로 불공한 다음에 병원에 가면 인연 있는 의사와 약을 만나게 됩니다. 좌청룡 우백호에 앞이 탁 트인 배산임수의 땅이라도 복을 지어야 명당이 됩니다. 악업을 지으면 아무리 좋은 땅일지라도 흉당이 됩니다.

 

새해 신년 운수를 본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참고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자기 마음이 나침반이다.”라는 말씀도 있듯이 현재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돌아보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새해에는 바로 그것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도 자신의 운명이 사주팔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회당대종사님의 법문을 되새겨 보세요.

 

육자진언을 외우고 실천하면 나쁜 사주팔자가 물러난다. 팔자 때문에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를 행하니 팔자가 그렇게 된 것이다. 팔자소관이 아니라 모두 자신의 업()과 행() 때문이다. () 지어서 과() 받는 것이 곧 팔자이다.(실행론 1,4,1)

 

이행정 전수/무애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