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67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8-06  | 수정 : 200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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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밀교의 진언과 신행체계) 1. 현밀공통의 도량장엄 전라남도 해남의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에는 밀교적 교리를 기반으로 대승이 조화를 이루는 현밀(顯密)공통의 진언이 쓰여 있다. 전각의 규모에 비해서 굵직한 크기의 진언문자는 전각의 분위기를 압도하며, 행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거기에는 천장의 우측으로부터 오불종자 진언인 밤(대일) 트라하(보생) 아하(불공성취) 흐리(아미타) 훔(아축), 출실지진언(出悉地眞言)인 아라파차나, 비밀(秘密)실지진언인 암람밤함캄, 입(入)실지진언인 아바라하카와 관음계 진언이 쓰여 있다.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진언장엄 가운데 이와 같은 구성을 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유가부(瑜伽部)밀교 금강계 오불의 종자나 밀교와 대승의 공통인 삼종(三種)실지진언, 그리고 대승의 관음계 진언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오불종자는 금강계 만다라의 오불을 문자로 상징화한 것이다. 즉 오불의 진언 중에서 대일여래의 진언인 옴바즈라 다투 밤의 밤자(字), 아축여래의 진언인 옴 악쇼브야 훔의 훔자, 보생여래의 진언인 옴 라트나 삼바바 트라하의 트라하자, 아미타불의 진언인 옴 아미타바 흐리히의 흐리히자, 불공성취여래의 진언인 옴 아모가싣데 아하의 아하자를 취하여 오불의 종자(種字)로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불의 진언은 하나의 문자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종자자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밀교계에서는 이와 같은 오불종자의 의미를 활용하여 존형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가 하면 문자로 된 종자를 본당의 장엄에 활용함으로써 도량장엄의 신행적 의미를 배가시켰던 것이다. 즉 본존을 중심으로 한 본당의 신행적 초점을 흩트리지 않고 형상과 문자로 된 존격을 본당에 안치했던 것이다. 따라서 미황사의 대웅보전은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그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의 존상을 안치한 전각이면서도 금강계 만다라 오불이 문자로 안치된 현밀공통의 도량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서 삼종실지진언은 이미 대승의 반야경, 화엄경 등에서 교리를 함축적으로 응축시키기 위해서 시도된 자문관(字門觀)에서 파생된 것으로 금강계 만다라의 오불종자와 교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즉 조선시대 밀교에서는 전통적인 종자의 해석법에 의거하여 삼종실지진언 중에서 비밀실지진언인 암밤람함캄을 금강계 만다라의 오부에 배당하여 암자는 금강부, 밤자는 연화부, 람자는 보생부, 함자는 갈마부, 캄자는 불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고 아축여래, 아미타여래, 보생여래, 불공성취여래, 대일여래의 오불과 대원경지, 묘관찰지, 평등성지, 성소작지, 법계체성지의 오지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것은 조선시대에도 밀교적 사고에 의한 교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이 도량의 장엄에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조선시대 밀교의 수준을 읽을 수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무형의 밀교 수행문화가 전승되고 있었음을 엿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입실지진언인 아바라하카 허공과 같이 한량없는 부처님의 비밀실지에 들어가게 하는 진언이라는 뜻이고, 출실지진언인 아라파차나는 부처님의 지혜를 문수의 진언을 통해서 발현시키게 하는 진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삼종실지진언은 불지의 본체를 의미하는 비밀실지진언과 그 본지의 세계에 들어가게 하는 입실지진언, 그리고 그것을 밖으로 발현시키게 하는 출실지진언의 세 단계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진언표현의 밀교적 교의 18세기를 전후한 조선시대 후기에는 다섯 자로 된 오불종자와 삼종실지진언 등에 청백적흑황의 오색개념을 도입하여 진언의 표현방식에서 밀교적인 색채를 더해갔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밀교의 경전들에서 활용하던 방식으로 진언의 성격과 의식의 성취목적에 따라서 채색의 종류를 달리한 것이다. 여기서는 신행의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서 청백적흑황색의 오현색(五顯色)이나 청백적록황의 오부색(五部色)이 활용되었다. 이와 같이 문자와 채색과 성취목적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밀교의 경궤들에서 항상 강조되고 있는 바이다. 근본오색으로 간주되는 오현색은 원래 하늘과 물과 불과 바람과 땅을 나타내는 것이었지만 훗날 만다라의 오불과 호마의 오종수법(五種修法) 등 밀교경전의 교리와 연관성을 가지면서 다양한 방면에 활용되었다. 그 중에서 진언의 표현방식에서 이들 오현색과 오부색은 각각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실재로 우리나라의 밀교적 도량장엄에 널리 활용되었다. 여기서 조선시대 후기 미황사와 선운사 전각들에 도화된 진언의 표현방식은 밀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저 미황사의 진언은 밀교와 대승적 교리가 반영된 현밀공통의 진언으로 그 진언채색의 표현방식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다. 즉 각각의 진언문자는 오대오색으로 된 원형문양의 바탕 위에 한 자 한 자 황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지수화풍공의 오대를 의미하는 오색은 전우주의 근본색을 의미하며, 그 위에 황색의 문자를 쓴 것은 흔히 다른 색을 부가하면 빛을 더하면서도 본래의 성질을 잃지 않는 견고성을 지닌 고귀한 색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 색은 고래로 증익의 색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선운사 영산전의 진언들은 백색과 홍색이 겹쳐진 연화문(紋) 바탕에 청색으로 채색된 꽃밥과 연엽(蓮葉)에 백색의 문자로 표현되어 있다. 이 백색의 문자는 자비를 상징하는 백색과 지혜를 상징하는 홍색이 겹쳐진 형태의 연엽 위에 나타낸 것으로써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난 청결함을 의미하며, 식재의 색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대웅보전의 진언은 백색 바탕에 흑색의 문자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식재를 의미하는 백색에 모든 색을 지워버리고 만물을 감출 수 있는 흑색을 써서 식재를 바탕으로 항복과 구소(鉤召)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따라서 진언의 표현방식에서 바탕의 문양과 거기에 대한 채색, 그리고 진언의 내용과 진언자체에 대한 채색은 도량의 실지성취목적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