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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박람회

밀교신문   
입력 :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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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소설가가 생전에 젊은 대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하다가 젊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이때 선생은 젊음이란 어떤 잘 된 것을 보면 잘 됐다고 말을 하고, 잘못된 것을 보면 잘못됐다고 말할 줄 아는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젊다는 것은 그만큼 앞과 옆을 재는 머뭇거림보다 실천적 열정이 앞서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의 젊은이들이 처한 환경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많은 분야에서 경쟁은 치열하고 패자부활의 기회는 많지 않다. 당연히 작은 불공정에도 분노를 표출하지만 동시에 작은 실패도 두려워한다. 그러다보니 선택에 신중하거나 주저하거나 급기야 이게 결정장애가 아닐까 싶을 만큼 선택의 주체성도 급격하게 떨어진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물론 실패에는 고통이 따른다. 만약에 우리가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극한의 전쟁터라도 달려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살아 돌아올 확률을 장담할 수 없을 때에는 모두가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출근길에 실패박람회를 안내하는 펼침막을 본 적이 있다. 실패에 대한 여러 경험 사례를 나누고 실패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행사라고 짐작하면 되겠다. 다시 말해 실패를 넘어 도전으로 나아가가기 위해서는 실패에 대한 인식이 자유로워야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흥미로운 발상이다.

 

흔히 뛰어난 성취 이전에 큰 생각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꿈을 향한 도전은커녕 작은 선택과 결정도 미루려 한다면, 결정장애이든 우유부단함이든 그것도 인간의 한 속성으로 인정하면 어떨까.

 

수십 번 따져봤지만 고가의 자동차나 주택도 현장 분위기에 휩쓸려 한 순간에 충동구매를 하고, 며칠 동안 계획을 잡았지만 춘천 가는 기차가 한 순간에 남해 가는 버스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어쩌랴, 우리 인간 자체가 근원적으로 복합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인 것을. 그렇다면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실패의 경험에서 오히려 성장의 과정을 찾아내는 시도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기본적으로 실패에 너그러워져야 성공이나 성취의 경험도 쌓여갈 것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만난 실패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업실패나 연애실패, 수능실패, 중간고사 실패, 인터넷쇼핑 실패 등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패의 모자이크로 찬란할 것이다.

 

우리 곁에 완벽한 100%의 선택지만 있었다면 햄릿증후군이란 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론을 인정하고 실패에서 성장판을 찾으려 한다면 오히려 50%, 70% 등의 목표치를 정하고 일단 도전해보는 것이 낫다. 초지일관도 좋겠지만 결정했다가 번복하고 새로고침을 거듭하더라도 일단 발을 떼고 무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교육은 기다림이라고도 한다. 올해에는 아이들과 같이 실패박람회를 열어보아야겠다. 그래서 친구 맺기 실패, 돈키호테 원전읽기 실패, 수학공부실패, 게임실패, 무임승차로 인한 공동과제 탐구하기 실패 등 또래나 선후배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자리를 만들고 거기서 같이 배우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안으로 문을 닫아걸거나 개인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본 경험의 부족으로 교육 지체가 일어나지 않고, 결핍은 나의 힘이라는 말도 실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조용필, 나훈아, 장사익, 주현미, 심수봉, 이선희, 최백호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불렀지만 또 누군가는 봄날은 온다고 노래 부를 것이기 때문에.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길이 있었다면 더욱 더.

 

한상권(심인고 교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