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술마시다(1)

밀교신문   
입력 : 2020-03-06  | 수정 :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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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해 달아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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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독실한 불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품이 어질고 현명하며 오계를 받아서 계를 깨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지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이 남자는 지독한 목마름에 시달리다 문득 맑은 물이 담겨 있는 그릇을 보고는 홀랑 마셔버렸습니다. 마시고 난 뒤에 물이 아니라 술인 줄 알아차렸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요.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술을 한 대접 들이켜고 나니 취해버렸고, 취한 남자는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이웃집 닭이 이 남자 집으로 들어왔는데 남자는 대뜸 닭을 잡아서 먹어 치웠습니다. 이웃집 여인이 닭을 찾으러 왔다가 술 취한 남자에게 강제로 성추행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웃은 즉시 관청에 이 일을 알렸고 남자는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아직 술이 깨지 않아서 자기가 한 일을 횡설수설 얼버무리고 심지어는 성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술 한 대접을 마셔버린 이 남자가 저지른 일은 기가 막힙니다. 이웃집 닭을 허락 없이 잡았으니 도둑질과 살생을 저지른 것이고, 닭을 찾으러 온 여인을 강제추행했으니 사음을 저지른 것이며, 자기가 저질러 놓고는 그러지 않았다고 잡아떼니 거짓말을 저질렀습니다. 술을 마신 까닭에 살생, 도둑질, 사음, 망어(거짓말)의 오계를 모두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대장일람집>.
 
술 한 잔이 사람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소 열심히 오계를 지키던 사람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이 참 어이없고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대장일람집>에서는 이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들려줍니다.
 
“그대들이 만약 부처님을 스승이라 부른다면 지금부터 지푸라기 끝에 적셔진 술 한 방울이라도 마셔서는 안 된다.”
 
‘부처님을 스승이라 부른다면’-이란 말은 ‘불제자라면’, ‘불자라면’이란 뜻이겠지요. 불자라면 제 손으로 술잔을 들고 술을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술 한 방울도 마시지 말라고 하니, 웬만한 재가신자들은 거부감이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전에서 술을 다루는 내용 가운데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옛날 어느 때인가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는데 술 취한 사람 셋과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행동이 서로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가 마주친 이가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숲속으로 도망쳐 들어갔습니다. 또 한 사람은 반듯하게 앉은 뒤에 제 뺨을 때리면서 말했지요.
 
“아, 부처님. 제가 술을 마셨습니다. 불음주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사람은 이렇게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 내가 부처님 술을 먹은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두려울 게 뭐가 있어!”
 
남자는 이렇게 큰소리치더니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까지 춰댔지요.
 
이 세 사람의 행동을 본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했습니다.
 
“숲속으로 도망친 사람은 미래에 미륵이 부처님 될 때 아라한이 되어 해탈할 것이다. 그리고 반듯하게 앉아서 자기 뺨을 때리며 참회한 사람은 천 분의 부처님이 지나 최후의 부처님이 나오실 때 아라한이 되어 해탈할 것이다. 그런데 큰소리치며 일어나 춤을 춘 저 사람은 끝내 구제받지 못할 것이다.”<구잡비유경>
 
도망치기 보다는 황급히 자신의 음주를 후회하고 참회하는 두 번째 사람이 더 나을 것 같지만 부처님을 뵙자마자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사람을 오히려 더 인정하고 있는 경전 내용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술에 취한 자기 모습이 부끄러운 줄 아는 것을 더 무게 있게 여기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차마 부끄러워 부처님과 같은 성현들 앞에 나
 
서지 못하는 사람의 성품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다음에라도 술자리에 나아가게 되면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살펴보지 않고 오히려 ‘배째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이에 대해서는 절망적인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합니다.
 
이번에는 술에 취한 스님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부처님이 코삼비국 근처 고시타 숲에 머물러 계실 때 사가타(善來) 장로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근처에는 외도들의 근거지가 있었는데 그곳에 그들을 지키는 아주 무서운 용이 한 마리 살고 있었지요. 용은 맹독과 거센 불길을 뿜어내서 누구든 다 죽여 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그곳에 가지 마시라고 말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곁에서 이 말을 들었던 사가타 장로가 직접 용을 찾아갔습니다. 비범한 신통력을 지닌 사가타 장로에게 용은 맹독과 뜨거운 불길을 퍼부어댔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용은 장로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지요.
 
이 소문은 세상에 퍼져나갔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용을 무찌르고 교화시킨 사가타 장로를 향한 칭송도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탁발에 나선 사가타 장로에게 앞 다투어 나아가서 말했습니다.
 
“스님, 구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저희가 다 구해서 드리겠습니다.”
 
사가타 장로는 묵묵히 탁발을 해나갈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늘 말썽을 부리는 여섯 무리의 비구 스님(육군비구)들이 재가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비둘기 깃털 빛을 지닌 술(鳩色酒)은 우리들 출가자가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술을 꼭 마셔보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저 장로님을 위해 이 술을 구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그 맑은 술을 구해왔고, 다음 날 사가타 장로는 신자들의 공양청을 받고 마을로 들어갔다가 이 술을 너무나 많이 마시고 말았습니다. 장로는 그만 크게 술에 취해 버린 채 마을을 나서다가 성문 문지방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넘어지고서도 횡설수설 중얼중얼 거리고 있었지요.
 
때마침 탁발을 마치고 마을을 나오던 부처님이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구들이여, 사가타를 데리고 가자.”
 
스님들은 사가타 장로를 부축해서 마을 밖 절로 데리고 왔습니다. 여전히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그의 머리가 부처님 발쪽으로 향하도록 조심스레 눕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술기운데 몸을 뒤척이다 자신의 발이 부처님 머리 쪽을 향하게 하고 말았지요. 존경하는 스승에 대해서는 꿈에서라도 취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비구들이여, 사가타 장로가 이전에 나에게 보여주었던 공경을 갖춘 모습이 지금 어디로 가버렸는가? 외도의 용을 교화한 자는 누구였는가?”
 
비구들이 답했습니다.
 
“사가타 장로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물에 사는 작은 뱀 한 마리도 교화할 수 없겠구나. 제자들이여, 마셔서 정신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마셔서는 안 된다. 앞으로 독한 술을 마시면 반드시 참회해야 할 죄를 짓는 행위인 줄 알아야 한다.”<쟈타카(본생경)> 81번째 이야기입니다.
 
경전에서는 술의 폐해를 여러 가지 들고 있는데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술에 취하면 부처님도 알아보지 못하고 부모와 웃어른도 알아보지 못함은 물론이요, 성자들에게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함부로 행동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 사가타 장로의 경우에서 비롯된 폐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술 자체가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술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술은 추위를 이겨내고 병든 사람의 고통을 잊게 해주며, 종교의례에 신과 만나게 해주는 명약으로 인류 곁에서 함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긍정적인 차원에서만 술을 마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평소에는 도덕적이고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던 사람이 술 한 잔을 마시면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거듭 그릇된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술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됐습니다.
 
오계 가운데 살생이나 도둑질, 사음과 거짓말은 그 행위 자체가 옳지 않기 때문에 성계(性戒)로 규정하고, 음주는 술 자체와 술 마시는 행위 자체가 문제이기보다는 술을 마신 뒤 저지르는 행위가 옳지 않기 때문에 차계(遮戒)로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불자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술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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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