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술마시다(2)

밀교신문   
입력 :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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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셔도 될까,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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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입문하면 오계를 받습니다. 다섯 가지 계를 지킨다고 맹세함으로써 불자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 오계 속에 불음주계가 들어 있습니다. 살생과 도둑질, 거짓말, 사음과 나란히 거론되는 ‘악행(?)’이 바로 음주입니다. 다섯 가지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불자인데, 사실 수많은 불자들은 술 한 잔의 즐거움을 떨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점들이 좀 헷갈립니다.
 
술! 마셔도 되는 걸까? 절대로 마시면 안 되는 걸까?
 
“불자들은 술을 마시면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 경전에서 술의 폐해를 들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서른 가지가 넘는 폐해가 따르므로 절대로 마시지 말고, 팔지도 말라고 하는 경전구절을 자주 만납니다. 그런데 현실생활에서 술을 완전히 끊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술이 무슨 죄인가요? 술 마신 뒤의 행동이 문제인 것이지요.
 
경전에서 술 관련 이야기들 몇 가지를 들려드리지요. 첫째는 <대지도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떤 술 취한 남자가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출가하고 싶습니다. 제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며 출가하기를 권하는 이 남자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술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밖으로 데려가서 찬 물 한 대접 마시게 하고 집으로 보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부처님은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아난아, 이 사람의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혀라.”
 
술 취한 남자가 한순간에 스님의 행색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 시간이 흐르자 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모습이 달라진 걸 알아차렸지요. 세상에나…. 스님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누워 있던 곳은 부처님 계신 절이었습니다. 대체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남자는 황망하게 일어나 가사를 벗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행여 스님들에게 붙잡힐 새라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스님들은 의아했습니다.
 
‘대체 부처님은 저 남자가 술김에 출가하겠다고 한 걸 진담으로 받아들이셨단 말인가? 무슨 뜻에서 저 남자의 출가를 허락하신 것일까?’
 
제자들의 궁금증을 알아차린 부처님이 말씀하셨지요.
 
“저 남자는 길고 긴 윤회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출가하여 수도하겠다는 마음을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아주 짧게나마 출가하려는 마음을 낸 것이니, 이런 인연 때문에 나중에 언젠가는 출가하여 깨달음을 이룰 것이다.”
 
이 이야기는 ‘술’보다는 ‘출가 인연의 지중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술을 마신 사람이 취중에 뱉은 말과 행동을 부처님이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취중진담이라고 해야 할까요? 무의식중에 툭 튀어나온 그 행동이 언젠가는 실제로 진지하게 행해질 것이라는 뜻과, 술에 취해 부처님 앞에서 출가 운운한 남자의 경거망동을 비난하지 않은 점도 ‘술’에 임하는 불교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감히 술을 마시고 부처님 앞에서!’가 아니라, ‘술에 취해서 드러난 본마음’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지요.
 
술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코살라국 파세나디왕에게 여러 왕자가 있었을 텐데, 그 중에 첫 번째 왕자로 보이는 기타태자 이야기입니다. 급고독장자와 함께 기원정사를 지어서 승가에 올린 그 주인공입니다. 기타태자가 어느 날 부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예전에 오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불음주계를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계를 받고는 지키지 못하니 이 자체가 죄가 아닐까요? 그래서 오계를 포기하고 그 대신 열 가지 선업에 대한 법(십선업)을 받고 싶습니다.”
 
오계 속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맹세가 들어 있지만 열 가지 선업 속에는 술과 관련한 항목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태자는 지키지도 못할 계를 맹세하기보다는 소박하게 선업을 지으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친 것이지요. 부처님은 그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대는 술을 마실 때 무슨 나쁜 짓을 하였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귀족들과 자주 어울려서 술과 맛난 음식을 먹고 이런저런 유흥을 즐기고 있습니다만 늘 제 스스로를 단속합니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설령 술을 마시고 있더라도 계를 생각해서 악업을 짓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답을 들은 부처님은 한 마디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평생 술을 마신들 그게 무슨 허물이겠습니까?”<미증유경>
 
이 이야기 끝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달렸습니다.
 
“방편으로 술을 마시면 계를 범하는 것이 아니고/말에 이로움이 담겨 있으면 거짓이라도 해롭지 않다.”
 
우정을 위해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것과 술을 마시면서도 자신이 잘못을 저지를까 스스로를 단속한다는데, 그런데도 음주 행위 자체를 놓고서 계를 범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뜻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타태자의 부왕인 파세나디왕에게도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나갔는데 사냥감은 보이지 않고 이리저리 말을 달리느라 굶주리고 목이 마르기까지 했습니다. 왕은 크게 성을 냈지요. 그는 왕의 음식을 대령해야 할 주방의 관리 수가라를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어떻게 왕을 배고프고 목마르게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파세나디왕의 부인인 말리카왕비는 이 명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수가라는 궁중의 대신들 가운데 왕의 뜻을 가장 잘 헤아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유일무이한 충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기에 ‘저 자의 목을 당장 베어버려라’는 추상같은 어명이 떨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말리카왕비는 서둘러 술과 안주를 마련해서 왕의 처소를 찾았습니다. 사냥에서 돌아와 피곤한 데다 배고프고 목이 마른 왕에게 달콤한 술과 기름진 안주를 올리며 듣기 좋은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왕비와 함께 즐거운 자리를 갖게 되자 왕의 분노는 서서히 가라앉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왕비는 살그머니 밖으로 나와서 신하에게 명했지요.
 
“폐하께서 수가라를 처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대들은 이 명을 따르라.”
 
그렇게 하룻밤이 지난 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왕은 어제 일을 떠올리다가 그만 안색이 파래지고 말았습니다. 충신 수가라의 목을 베라고 명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사색이 되고 만 왕을 살피던 말리카 왕비가 물었습니다.
 
“폐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왕은 왕비에게 자신의 실수를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이오. 이 손으로 충신을 죽이다니 ….”
 
후회와 근심에 사로잡힌 왕에게 왕비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수가라는 살아 있습니다.”
 
왕은 왕비의 꾀에 넘어간 것이 못내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은근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지요. 며칠이 지나 부처님을 찾아간 왕이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말리카 왕비는 부처님에게 오계를 받아서 지녔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술을 마셨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계 가운데 두 가지나 범했는데 어찌됩니까?”
 
부처님은 말했습니다.
 
“계를 어긴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더 큰 복을 지었으니 계를 어겼다는 죄는 없습니다.”
 
<대장일람집>이라는 불교 문헌에서 찾아본 술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 할까요? 술을 ‘절대로’ 마셔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야 할까요? 술의 폐해가 아주 크지만 술을 마셔서 취하여 그릇된 행동을 저지르지 않고 오히려 선한 일을 하게 되었다면 괜찮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자신의 행동과 말에 책임을 지는 성인입니다. 오계 가운데 불음주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각자에게 달려 있는 것 아닐까요? 모쪼록 이 이야기들이 “그것 봐! 부처님도 술 마셔도 된다고 했잖아.”라는 결론으로 맺어지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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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