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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와 사회적 연대하기

밀교신문   
입력 :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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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번호 31번 확진자가 나오면서 우리나라는 순식간에 코로나19의 공포에 휩싸였다. 집단 감염의 우려 속에 학교가 문을 닫고 가게가 휴업에 들어가면서 그야말로 사회적 항상성이 멈춰버렸다. 코로나19는 연일 뉴스의 중심이 되었고 누적 확진자가 늘어날수록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커져갔다.

 

위기의 순간을 대하는 지혜와 전문성이 없으면 혐오와 차별, 가짜 정보 등이 쉽게 판을 흔든다. 백신도 집단 면역도 없는 상태에서 자칫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같은 괴물이 등장해 한 도시와 국가가 붕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불안의 극단인 공포가 커지는 순간일수록 우리나라의 개방적 방역시스템은 빛을 발했다. 발병 초기부터 진단 키트의 신속한 개발과 승인 절차가 있었고, 교과서를 펼치듯 광범위하고도 신속한 검사방식으로 대응했다. 더구나 뛰어난 IT 기술로 확진자의 위치와 동선을 추적해 예상 전염 경로를 빠르게 차단해 나갔다. 드라이브 스루나 워킹 스루 같은 기발한 검사 시스템도 국제적인 눈길을 끌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두 달 만에 확진자의 숫자가 50명 이하로 떨어졌는데, 광범위한 역학조사를 회피하던 이웃 나라는 올림픽을 1년이나 연기해야 했다. 또한 아시아의 작은 소용돌이쯤으로 방관하던 유럽과 미국으로 코로나19는 순식간에 번졌다. 불과 몇 달 만에 카뮈의 페스트에 나오는 오랑시와 같은 혼돈이 세계를 뒤덮은 셈이다. 우리와 같은 날에 첫 확진자가 나왔던 미국은 얼마나 어둠에 익숙해져야 그 어둠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자 뒤늦게 우리나라 방역시스템에 대한 외국의 찬사와 도움을 요청하는 국가가 줄을 이었다. 늘 앞서는 남을 따라 하기에 급급했던 우리에게 소위 민주적 통제가 더 강력한 차단 효과를 가져왔다는 경험과 자부심이 생겼다. 코로나19로 일상이 흔들리고 경제가 어려워지는 순간에 잊고 있었던 국가의 존재나 위상을 실감했다. 그야말로 한국식 방역이 세계적 모델로 우뚝 선 것인데 여기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또 하나의 자발적 캠페인이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도 우리 안을 잇는 사회적 연대하기의 고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원도의 산불을 끄기 위해 전국의 소방차가 한 방향으로 달려갔듯 전국의 의료진과 봉사단이 대구를 찾았고 함께 응원했다. 공적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한 고단한 행렬 속에서도 누군가는 양보와 위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어야 했지만, 역설적으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러므로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개인의 자유 속에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약속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의 국가에 영감과 희망을 주는 원천이 되었다.

 

한편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람 간 감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수칙이었지만 자율적 통제와 함께 사회적 이동과 흐름을 유지해 경제적 동력을 살리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어려울 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만들어진 균형 상태를 유지하려고 온 국민이 함께한 셈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감염력으로 볼 때 무증상, 경증 감염자들이 집단이나 지역감염으로 폭발할 수도 있으니 앞으로도 사회적 거리 두기와 연대하기의 겸손한 예방수칙을 소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학과 기술, 문화와 예술이 디자인한 4차 혁명의 시대에 원인도 규명하지 못한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것도 벚꽃 없이 자발적 격리로 이 계절을 다 보내고 난 뒤에 얻은 교훈이라면 교훈이 될 것 같다.

 

한상권/심인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