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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밀교신문   
입력 :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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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 현상인지 올겨울은 큰 추위 없이 지냈습니다. 오늘도 맑은 하늘과 햇살이 참 좋은 날입니다. 염송을 마치고 해바라기나 할까 하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니 금방 몸과 마음이 맑고 넉넉해집니다. 마당에는 이미 참새 몇 마리가 부지런히 부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참새들을 위해 말라빠진 식빵 한 조각을 마당 구석에 놓아두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참새들이 모여들어 열심히 빵을 쪼아 먹더니 참새들은 반쯤 남은 식빵을 그대로 두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먹을 만큼 먹었다는 몸짓으로 말입니다. 문득 우리가 사는 사회를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참새였다면 남은 빵을 그대로 두었을까요? 배고픈 다른 사람을 위해 남겨두지 않고 다 챙겨 갔을지도 모릅니다. 자연의 모든 동식물이 사람처럼 탐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동식물들뿐일까요? 자연의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강물은 흘러오는 물을 필요한 만큼 취하고 내려보냅니다. 강물이 깨끗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제 것이라 하여 강이 흐르는 물을 가두어버린다면 다 썩어버리고 말 겁니다.

 

한 보살님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해도 남들이 알아주질 않아요. 심지어 가족들까지 그래요.”

 

아마 탐심 때문일 겁니다.”

 

저는 그렇게 탐심을 부린 적이 없는데요?”

 

무언가를 바라고 일을 하는 것도 탐심에서 비롯된 겁니다. 바라는 바가 다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보살님 마음은 어떨까요? 실망과 괴로움만 남게 되겠지요. 그렇게 실망하고 괴로워하는데 사는 것이 행복할까요? 행복해지려면 마음을 비워두세요. 행복은 빈 곳에만 찾아들어 오니까요.”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 재경이라는 목수가 있었습니다. 나무를 다루는 솜씨가 걸출했는데, 그가 거문고를 하나 만들어내자 사람들이 모두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거문고의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지요. 이 소문은 노나라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임금은 재경을 불러 도대체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좋은 악기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재경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저는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무언가를 만들 때 그 전에 꼭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다음에는 제가 만들 물건의 용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그 물건을 잘 사용할 수 있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사흘 동안 고민합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만든 물건으로 상을 받는다는 생각을 잊어버립니다. 닷새 후에는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을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이레째가 되면 제 마음을 어지럽힐 것이 없게 되어서 저는 오로지 물건 만들 일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물건을 만들 나무를 구하기 위해 산에 올라갑니다. 이런 것 외에 저에게 다른 기술이란 없습니다.”

 

목수 재경은 자기가 만든 물건이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이유가 마음을 비운 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그 어떤 잔재주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세상살이하면서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속상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하여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공로의 대가로 상을 받기 위해 나쁜 수단을 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불만과 억울함, 탐심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일을 하는데 과연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면 두려움과 걱정이 없다반야심경말씀이 생각납니다.

 

심무괘애(心無罣碍) 무괘애고(無罣碍故) 무유공포(無有恐怖)’에서 ()’는 그물입니다. ‘()’는 장애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언제나 그물과 장애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마음을 가져야만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재물이라는 그물, 명예라는 그물, 권력이라는 그물과 칭찬이라는 장애물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 손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졸작으로 남을 뿐입니다. 탐심이란 그물과 장애물을 벗어나 깨끗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최고의 성과를 맛볼 수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 괴로워하는 보살님에 제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모든 사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아가기를 서원합니다.

 

회당 대종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름다운 식물의 세계를 관찰해 보니 정말 만물 중에 가장 고귀하다고 하는 인간들보다 순수하고 거짓이 없다. ()도 없고 탐욕도 없고 그 어떤 대가(代價)도 바라지 않고 무언(無言)의 실천을 되풀이하는 진실한 삼밀작용을 하고 있다. 희생적이고 아름다운 보시와 자비로 꽉 차 있다. 이것이 진실한 삼밀이 아니겠는가?”(실행론 3,2,2)

 

이행정 전수/무애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