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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밀교신문   
입력 : 20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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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길에 차창 너머로 보이는 철쭉, 영산홍, 벚꽃을 보면서 봄이 왔구나하던 때가 지난 밤의 꿈처럼 스쳐 간다.

 

며칠간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꽃비가 내리고 나더니 이제 파릇파릇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봄이 유난히 짧은 지역이라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없었지만 올봄엔 쉬이 저버린 꽃에 대한 안타까움이 유달리 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엔 학창 시절 이후로 잊고 살았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구가 자주 입가에 맴돈다. 들판에 가득 핀 꽃을 보아도 인적 없는 휑한 거리를 지날 때도 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아주머니의 졸리운 눈꺼풀을 마주할 때도 이 시구가 내 가슴을 적신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시인은 얼마나 조국의 땅을 자유롭게 밟아보고 싶었을까? 땅을 밟고 땀을 흘리는 일상이 이렇듯 가슴 절절한 애환과 인고가 되어야 했던 우리 민족의 고통을 이 시점에 함께 느낄 수 있음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주는 아픔이기도 하고 교훈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떠나가는 상실감을 쉬이 저버린 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나마 달래고 싶음인지도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학생들이 돌아오지 못한 캠퍼스에도 꽃은 피고 지고, 새들은 지저귀고, 나는 매일 매일 텅 빈 복도와 강의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맘때쯤이면 새내기 신입생들의 부끄러운 미소로 가득 찼을 복도가, 나이팅게일의 후예들이 밝히는 촛불의 온기가 가득 찼을 강당이, 따뜻한 커피 한잔의 여유가 베여 있을 벤치가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너무나 당연했던 일상의 행복과 우리의 권리들이 하나하나 날개를 접어가고 또한 조금씩 이런 상황에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닌지. 저항과 울분의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이기에 자칫 스스로 위축되고 좌절하면서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끈들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지는 않으냐는 생각이 든다.

 

예년 같으면 교수님, 우리 이런 동아리 하고 싶어요’, ‘이런 봉사활동 한번 해보고 싶어요하면서 열심히 연구실을 찾아왔을 학생들이 이제는 코로나인데 그걸 할 수 있을까요?’라고 종종 되묻곤 한다.

 

이제는 매주 온라인 수업을 촬영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연구실에서 혼자 영상 강의 자료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애초부터 강의실에서 하는 촬영을 고수하였다. 이는 적어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상실될 수 있는 수업에 대한 열정, 강단에 서는 매 순간 학생들과의 나눔 속에서 피어나는 기쁨, 교수자로서의 존재감 등을 지키고 싶은 나의 바람이었다. 강의 촬영이 있는 날에는 신경 써서 옷을 차려입고 마스크를 벗고 화장을 하고 설레는 가슴으로 강단에 선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우리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자고 했던 내 마음에 스스로 물을 주면서 환한 미소를 지어본다.

 

잃어버린 이 땅에, 시인의 가슴에 봄 신령이 지폈듯이 텅 빈 강의실에도 머지않아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미소가 가득 채워질 것이다.

 

우리들의 들판은 빼앗기지 않았으며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 이웃과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하여 지금 서로가 인내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코로나바이러스는 가르쳐주었다.

 

박현주 교수/위덕대 간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