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68

허일범 교수   
입력 : 2004-08-31  | 수정 : 200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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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금강계 오불과 육자진언) 이원일체의 교리 반영 오불에 연화인 존형의 불격 더해져 육자진언과 여섯 부처님으로 표현 실담·란챠자 두 종류 문체 드러나 티베트전승 마니칸붐 영향 받은 듯 1) 오불과 육자진언 대흥사는 전남 해남군 삼산면 두륜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이다. 이 사찰은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건물은 18세기 말에 건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가 승병들을 지휘하던 곳이며, 현재에도 항일 승병활동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승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항일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흥사는 신행적인 측면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는 내용들이 발견된다. 그 중의 하나가 대웅보전과 천불전의 단청장엄이다. 현재의 모습을 한 단청장엄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은 조선시대 말기로 여겨지며, 여러 차례에 걸쳐서 보수가 이루어 졌다고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여섯 부처님의 존형(尊形)에 육자진언을 배대하고 있는 것과 그것을 대웅보전과 천불전의 단청장엄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한반도의 서남해안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대원사나 미황사, 그리고 흥국사 등에서 흔히 발견되는 준제진언이 이 사찰에서는 발견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천불전에 육자진언을 새기고 여섯 종류의 수인을 한 부처님의 존형을 도화한 것은 매우 흥미 깊은 내용이다. 이와 같은 양상은 흔히 발견할 수 없는 형식이지만 그 연원을 찾아서 거슬러 올라가면 티베트 전승의 마니칸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티베트에 전해지고 있는 마니칸붐에 의하면 '대자대비하신 천불의 역사'라는 항목에 부처님의 활동상을 나타내고 있는 서른여섯가지 내용들이 열거되어 있다. 거기에는 천 분의 부처님과 보살의 출생을 나타내고 있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부처님이 중생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몸으로 나타나셨는지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육도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중생의 세계에 나타나시는 불의 모습에 관한 내용 등이 있다. 즉 육자진언과 관련된 내용의 집대성인 마니칸붐에는 육자진언과 천불의 관련성뿐만이 아니라 오불과의 관련성을 담은 내용이 담겨 있다. 대흥사의 천불전은 1811년 중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건축물의 공포사이 사이에는 부처님의 존형이 도화되어 있다. 천불전이라고 쓰인 현판을 중심으로 해서 그 좌우에 여섯 종류의 존형이 도화되어 있다. 그 존격들의 수인을 중심으로 존형의 존명을 살펴보면 지권인의 비로자나부처님을 중심으로 해서 그 좌우에 항마촉지인의 아축불, 정인(定印)의 아미타불, 여원인(與願印)의 보생불, 설법인의 불공성취불이 도화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연화인의 존형이 도화되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육자진언의 법수(法數)에 맞추어 불격(佛格)을 배대하기 위한 존형의 구성방식으로 고래로 전승되어 온 오불, 금강보살의 배대방식과는 전혀 다른 불격의 배대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2) 오불수인과 진언문체 우리나라의 전통사찰에서 금강계 오불과 관련이 있는 내용은 이미 미황사에서 오불의 진언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거기에서는 문자로된 오불과 천불의 관련성을 천불의 도상과 오불의 종자자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대흥사에서는 오불의 존형과 육자진언의 관련성을 도상과 문자의 상호배대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오불을 중심으로 해서 천불과 육자진언이 서로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앙적인 측면에서 오불과 천불, 그리고 육자진언은 서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대흥사 천불전의 존형 중에서 오불과 다른 일존(一尊)의 불(佛), 그리고 육자진언과의 배대방식은 매우 독특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전승되고 있는 육자진언과 오불 및 금강보살의 배대방식과 다른 모습이다. 즉 천불전 배대방식의 특징은 육자진언의 종자자(種子字) 한 자 한 자에 오불과 금강보살을 배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육자진언 여섯 자의 진언에 한 존 한 존의 불격(佛格)만을 배대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육자진언 배대방식이 아닌 새로운 양상의 존격 배대방식을 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오불과는 별개로 연화인을 한 또 한 존의 존형이 부가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오불의 수인과 연화인의 불격을 가지고 나타낸 존형의 의미와 육자진언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먼저 오불이 결한 수인의 연원은 석존의 활동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석존이 모든 마군을 제어한 모습을 촉지인을 통해서 나타내고, 그와 같은 강력은 힘을 가지고 중생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겠다는 뜻을 여원인을 통해서 표현했다. 또한 선정(禪定)에 들어 있는 석존의 근엄한 모습은 정인을 통해서 나타내고, 그와 같은 선정의 평정심으로부터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이 법을 전하겠다는 의지를 설법인을 통해서 나타냈다. 이와 같이 수인은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와 같은 활동력의 근원인 지권인은 지혜력의 결정체인 비로자나불의 수인이다. 그런데 천불전에는 이 오불과 더불어 팔엽인의 존형이 또 하나 부가되어 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오불과 금강보살의 배대방식에서 오불과 팔엽인을 한 존으로 그 배대형식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팔엽인(八葉印)의 존형은 팔엽연화의 세계를 존격화한 존형으로 여겨지며, 우리나라에서 육자진언과 존격을 배대하는 방식의 또 다른 형태로 이해된다. 다음으로 천불전에서 여섯 부처님 각 존의 주위에 나타낸 육자진언은 실담과 란챠의 두 가지 문체로 표현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이와 같은 표현방식은 이원일체(二元一體)의 교리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표현방식에는 화순의 운주사나 대원사의 합체불에서 나타나 있듯이 대일여래와 석가모니, 즉 대석일체(大釋一體)의 존형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있다. 그리고 현상의 세계와 절대의 세계를 문자로써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 쓰이는 방식이 실담과 란챠에 의한 표현이다. 따라서 천불전의 단청장엄에 나타난 두 종류의 문체는 이와 같은 이원일체의 교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