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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보다는 지금

밀교신문   
입력 :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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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등학교 1, 2학년은 격주제로 등교 수업과 원격수업을 반복하고 있다. 고육지책이다. 그래서 단위 학교마다 고민이 많다. 금방 끝날 것이라는 전제로 순서를 바꾸거나 다음으로 미루는 방식으로는 그 시기에 일정 모양으로 완성해야 할 가치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학년제로 운영하는 일부 교과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은 물론이고, 같은 학반에서도 일부는 등교수업을 받고 일부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등교 중지 학생들이 다수 발생한 경우는 난감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는 다음보다는 지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학교 안과 학교 밖에 있는 학생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동시에 수업하기도 한다. 또한 오프라인으로 하던 교육활동 일부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온라인에 적합한 교육활동을 새로 찾기도 한다. 최근에는 여러 고민 끝에 1, 2학년 희망자 학생들과 1년에 다섯 권 인문학 책 읽기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1차 도서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함께 읽고 필자와 학생들이 화상 토론을 시작한 것이다.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책으로 만난 학생들의 표정은 발랄했다. 페스트에 나오는 헌신적 리유와 장 타루의 우정 어린 분투기에 감동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봉쇄된 오랑시를 탈출하려는 랑베르의 안간힘에 논쟁적 질문을 던지고, 영웅주의보다는 자원 보건대 역할로 어려움을 함께 견디는 그랑에 대해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행복한 도시에 페스트가 불쑥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도 공감을 했다. 여러 갈래로 이야기가 뻗어갔지만, 위기의 대처 방법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을 잘 정리해나갔다.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온라인 실험이 단기성 대응 이상의 효과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대면의 길을 찾아야 하나 지금 우리 사회는 비대면(언택트)의 담론을 진단하고 나아갈 길도 열어야 한다. 이미 발 빠르게 문화와 소비, 교육과 산업 등이 움직이고 세계가 반응하고 있다. 인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측성이 높은 집단일수록 안정성과 발전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뜬구름을 잡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지금 이 순간을 부단히 진단해야한다. 예측 못한 단 한 순간의 재난으로 방향이 틀어지는 경우가 있더라도 조직의 비전을 설계하고 실현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두고 지금 이 순간을 디자인해야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비대면의 길에서 잘 익은 과일을 얻기 위해 지금 누군가는 묵묵히 거름을 붓고 있는 것을. 1년 뒤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가늠하기 어렵고, 폭풍의 시간은 길어도 태양은 또 고스란히 우리를 에워쌀 것이기에.

 

코로나19로 전환점을 찾기 어려운 시기에 학생들과 페스트 함께 읽기를 통해 얻은 울림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몫으로 협력하며 나아가는 가치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안정성을 제공하기 전에 내부에서도 좌충우돌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아무것이라도 시도하는 과정에서 행복한 출구를 만날 수 있다. 어렴풋하지만 따뜻한, 지금 우리 학교는 온라인 멘토 멘티 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카뮈는 페스트에서 오늘 하루가 너무 숨 가쁘다 보면 무관심과 무성의로 대응하는 문제를 낳는다고 진단했다. 물론 니체는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어쩌면 코로나19의 혼돈은 우리를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길로 나가게 할지도 모르겠다.

 

한상권/심인고 교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