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54-먹다(1)

밀교신문   
입력 :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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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의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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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은 무엇일까요?
 
먹는 일입니다.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삼시세끼를 먹는다는 것이 곧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밥 수저를 내려놓는 행위는 이승의 삶을 다한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지요.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고 합니다. 이따금 불교 강좌 시간에 우스갯소리삼아 이렇게 바꿔서 말하기도 합니다. “금강경도 식후경(食後經)”이라고요.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가 담긴 금강경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일단 밥부터 먹어 허기를 지운 뒤에 금강경을 읽어나가는 것이 우리들 보통 사람들에게는 순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소중한 밥에 치우치다보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 늘 문제입니다. 균형 잡힌 식단으로 규칙적으로 밥을 먹으면 문제가 없지만, 사람들은 늘 혀끝의 달콤함에 사로잡혀 편식을 하고, 과식을 합니다.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먹은 밥이 오히려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고 그로 인해 병에 걸려 괴로움에 시달리고 맙니다.
 
부처님 재세시절, 코살라국의 왕 파세나디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파세나디왕은 평소 엄청난 분량의 밥을 먹는 대식가였습니다. 그러니 과체중이었을 테고, 일상 행동을 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비만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왕이 밥을 먹은 직후 부처님을 뵈러 왔습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해서는 간신히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왕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양껏 먹어서 미처 소화시키지 못하여 속은 부대낄 테고, 더운 인도 땅에서 부처님을 뵈러 오느라 몸을 움직였으니 땀은 물 흐르듯 흐를 테고, 절을 올리고 자리를 찾아 앉는 단순한 동작에도 힘이 들어서 괴로워할 테지요.
 
이른 아침 탁발식으로 하루 한끼 식사를 마치고 충분히 소화를 시켜 활기차고도 가뿐한 몸으로 지내는 부처님이 보기에 왕의 모습은 너무나 힘겨웠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신 부처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마음으로 자신을 잘 살피고 음식의 양을 잘 아는 사람은 괴로움이 줄어들고 수명이 늘어나 천천히 늙어갈 것입니다.”
 
심오한 교리보다 지금 이 왕에게 가장 절실한 말씀이 아닐까요? 과연, 왕의 귀에 이 말씀이 쏙 들어왔지요. 왕은 뒤에 서 있던 젊은 사제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세존께서 하신 이 말씀을 잘 배워서 외우도록 하라. 그리고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이 말씀을 내게 들려주어야 한다.”
 
그 날 이후 젊은 사제는 왕이 밥을 먹을 때면 곁에서 지켜보다가 음식을 거의 다 먹어갈 때면 언제나 부처님의 이 말씀을 읊었습니다. 음식을 앞에 두면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 바쁘던 왕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대하고 있는지를 살피게 되었지요. 음식을 보는 순간 탐욕이 일어나 아귀처럼 달려드는 자신의 모습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부처님께서 ‘언제나 마음으로 자신을 잘 살피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밥상을 대할 때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자신의 모습을 잘 살피고 알아차리면 밥을 먹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예전에는 그릇에 수북하게 담긴 음식을 흡입하듯 입에 쓸어 담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밥 먹는 모습을 관찰하며 먹으니 속도가 느려지고, 천천히 먹다보면 어느 사이 포만감도 느끼게 됩니다. 포만감을 느껴 ‘이만큼 먹었으면 됐다’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상을 물리니 자신에게 적당한 양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소화는 어떨까요? 천천히 씹어 먹는 동안에도 소화가 무난하게 이루어졌고, 다 먹고 난 뒤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완벽하게 소화를 시켰을 것입니다. 소화하는 데에 힘이 들지 않아서 몸이 괴롭지 않았고, 음식의 맛을 음미하면서 먹으니 마음의 즐거움이 커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열흘, 그 이상의 날들이 지났을 때 왕은 더 이상 한 됫박의 음식을 들이켜는 대식가가 아니었습니다. 한 접시의 음식을 즐겁고 맛있게 꼭꼭 씹어 먹는 미식가가 되었고, 그의 몸매도 날씬해졌습니다.
 
어느 날 파세나디왕은 자신의 날씬해진 몸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흥얼거렸습니다.
 
“세존께서는 나를 연민하셔서 두 가지 이로움을 안겨주셨구나. 현세의 이로움과 미래의 이로움이다.”(‘쌍윳따 니까야’ 제3)
 
파세나디왕의 이 이야기는 법구경주석서에도 실려 있는데 그곳에는 조금 더 신랄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세존이시여, 과식을 해서 너무나 괴롭습니다.”
 
이렇게 괴로움을 토로하는 왕에게 부처님이 다음의 게송을 노래합니다.
 
“게으르고, 많이 먹고, 졸고,/곡식으로 사육한 큰 돼지처럼/누워서 뒹굴 때,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반복해서 모태에 든다.”(‘법구경’ 325번째 게송, 일아 스님 역)
 
파세나디왕의 이 일화는 불교식 다이어트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이어트는 대체로 여성들을 상대로 더 자주 나오는 주제여서 강대국의 왕에게 ‘날씬해진 몸 운운’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날씬한 몸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불교 입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음식에 대해서 부처님은 딱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음식을 대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기.
둘째, 음식의 양을 알기.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서 밥을 먹는다면 밥 먹는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 될 것입니다. 훨씬 적은 양으로도 맛있게 식사해서 날씬한 몸매를 가지니 현재에 이롭고, 무병장수하게 되니 마래에 이로운 건 기정사실입니다. 부처님에게서 심오한 가르침을 듣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일상에 딱 적용되는 가르침을 듣고 실제로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절실합니다.
 
밥 먹는 일은 무엇보다 본능에 가장 충실한 일입니다. 그런 일에서조차 자신을 살피며 적당한 양을 알아서 조절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스스로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앞서 왕이 행복에 젖어 ‘세존께서는 나의 현세와 미래에 이로움을 주셨다’라는 그 말은 또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몸이 건강해서 무병장수하니 이것이 현세의 이로움이요, 음식 먹는 일을 수행으로 삼아 꾸준히 해나가면 장차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이 미래의 이로움이라고 말이지요.
 
앞서 음식을 대할 때 부처님이 일러주신 두 가지 가운데 ‘음식의 양을 안다’는 것에는 조금 더 설명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음식을 앞에 두고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나는 음식을 놀이로 먹지 않는다. 사치스럽게 먹거나 내 몸을 치장하고 자랑하기 위해서 먹지 않는다. 내 몸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 먹는다. 내 몸이 다치지 않고 수행을 잘 하기 위해 먹는다. 예전에 겪은 괴로움을 없애고 또 다른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먹는다. 이 음식으로 나는 번뇌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앙굿따라 니까야’ 제3권).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이와 같다면 음식 투정을 하거나 편식이나 과식을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서 꼭꼭 씹으면서 그 맛을 음미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맛없는 음식이 있을까요? 모든 음식에서 훌륭한 맛을 찾아낼 것이며, 그 음식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면서 조금 더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할 것입니다. 부처님처럼 말입니다.
 
부처님이 지닌 32상 가운데는 뛰어난 미각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음식이라도 혀끝에 닿는 순간 그 맛이 목에서 느껴지며 나아가 온몸에 두루 맛이 퍼져나가는 섬세한 미각을 지녔다고 하지요. ‘디가 니까야’ 「32상경」에 따르면 이런 훌륭한 미각은 부처님이 전생에 선업을 꾸준하게 쌓아온 결과라고 합니다. 그 선업이란,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았고 상처를 입히지 않은 선한 행위를 말합니다. 그 결과 금생에 아주 건강한 몸을 얻었고, 소화기능이 탁월해서 음식을 먹는 것이 어렵지 않고 음식 때문에 수행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합니다.
 
밥을 먹는 일은 참으로 사소한 일상의 일인데, 그 하나의 행위로 우리는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내 앞에 놓인 조촐한 밥상에 고마워하고, 정성스레 수저를 들어서 지나치지 않게 음식을 퍼서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먹으며 그 음식이 잘게 부서지는 모양을 느껴보기, 이 음식으로 내가 건강을 유지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기-밥의 수행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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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