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56-먹다(3)

밀교신문   
입력 : 2020-07-28  | 수정 : 20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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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복을 타고난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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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라바스티에는 아주 훌륭한 분이 머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스승으로 모시고 존경할 만한 분인가요?”
 
슈라바스티(사위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아기닷타 바라문이 수닷타 장자에게 물었습니다. 아기닷타 바라문은 지혜로운데다 어마어마한 부자였습니다. 지혜도 갖추었고 재력도 갖추었으니 훌륭한 분에게 나아가 자주 법을 청해 듣고 그분에게 공양을 올리며 복을 짓는 일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마침 아기닷타 바라문에게 훌륭한 분이 근처에 와 계시다는 소문이 들렸고, 호기심이 일어난 그는 부처님의 신자로 유명한 수닷타(급고독) 장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수닷타 장자는 아기닷타 바라문에게 이렇게 부처님을 소개했습니다.
 
“이런, 아직 그 분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보군요. 석가족의 왕자였다가 집을 떠나 수행해서 깨달음을 이뤄 부처님이 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일단 겉모습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맑고 깨끗하며 행동거지가 부드럽고도 점잖습니다. 그분이 깨달아서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진리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인간들은 물론이요, 하늘의 신이며 용이나 귀신들까지도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공손히 귀를 기울이지요. 그 말씀을 한 번 들어보신다면, 당신은 지금 내 말이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아아, 내가 아직 공부가 너무나도 얕으니 부처님에 대해서 이보다 어떻게 더 설명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태양이요, 나는 반딧불인 것을요.”
 
아기닷타 바라문은 수닷타 장자의 이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가까운 기원정사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다음 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부처님을 친견하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고, 가르침을 듣자 그의 기쁨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는 부처님에게 이렇게 청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 승가와 함께 이번 안거 석 달 동안은 제 집에서 공양을 올리겠습니다.”부처님이 침묵으로써 그에 응하시자 아기닷타 바라문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석 달 동안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 올릴 훌륭하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부처님과 비구 승가는 바라문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아기닷타 바라문이 순식간에 돌변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경전을 보자면, 하늘 악마에게 꾐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가르침을 향해 활짝 열린 그의 신심이 온갖 욕망과 탐욕과 음란한 생각에 휘말려서 흐려지고 말았다는 것이지요.그는 문지기에게 명했습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대문을 닫아걸고 누가 오더라도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말라. 제 아무리 신분이 높고 고결한 사람이라 해도 내 허락 없이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 알겠느냐?”
 
문지기는 주인의 명을 따라 그날 아침 첫 번째 방문객인 부처님과 스님들을 향해서 말했지요.
 
“돌아가십시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입니다.”
 
빈 발우를 들고서 밥을 빌러 오신 부처님은 매몰차게 소리를 지르는 문지기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시다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마을은 극심한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으니 그대들이 탁발하기가 어렵게 됐다. 이제 각자 흩어져서 인연을 따라 걸식을 하도록 하라.”
 
부처님과 스님들이 매일 아침 빈 발우를 들고 마을로 탁발하러 들어오지만 아무도 음식을 얻지 못하고 빈 발우 그대로 안고 마을 밖 거처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상상해보시지요.
 
아무리 힘들고 서글퍼도 밥은 먹어야 하는데, 석 달 동안 음식을 제공하겠노라고 약속한 부잣집 바라문은 대문을 닫아걸었고, 마을에서는 음식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았지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인 사리불 존자는 천상(도리천)으로 올라가 그곳 천인들이 올리는 맛난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을 모시고 함께 천상으로 올라가는 것이 제자의 도리 아닐까 생각하겠지만, 경전을 보면 이런 행동 속에는 이전에 지은 업의 과보가 무르익어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니 사리불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부처님 시자인 아난존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부처님이 쌀 한 톨도 드시지 못하고 굶은 채로 빈 발우만 들고 마을과 정사 사이를 날마다 오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드실 만한 음식을 찾아봐야겠다는 아난존자의 간절함은 뜨거웠습니다. 그런 그에게 수많은 말을 몰고 온 타지역 상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상인들에게는 말 먹이용으로 비축해 둔 보리가 있었지요.
 
그는 서둘러 상인들에게 나아가 사정을 말하고 말먹이용 보리를 얻었습니다. 보리를 발우에 담고서 부처님 계신 절로 바삐 돌아가려다 그는 걸음을 멈추었지요.
 
“아아! 부처님 덕은 높고도 높아서 한 나라의 제왕이 바치는 산해진미도 그 덕에 미치지 못했다. 천상의 맛난 음식도 부처님 덕에 비하면 조촐하기 이를 데 없는 거친 음식이었는데 이제 말먹이용 거친 보리를 부처님에게 올리게 됐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드시기 좋도록 밥을 지어서 가져다 드려야겠다.”
 
아난존자는 가까운 곳에 있는 늙은 여인에게 가서 말먹이용 보리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부처님께 이것으로 공양을 올리려 합니다. 할머니, 밥을 지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공덕이 한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늙은 여인은 말합니다.
 
“보시다시피 내가 좀 바빠서 밥을 지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밥을 지어달라는 요청마저 거절당하자 아난존자의 마음은 더욱 서글퍼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어떤 중년 여성이 다가와서 말했지요.
 
“제가 밥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이리 주십시오.”
 
그녀는 아난존자가 조금 전 할머니에게 한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토록 덕이 높은 분이라는 찬탄을 듣고 마음을 낸 것이지요. 그리하여 보리밥을 지어서 아난존자는 부처님에게 나아갔습니다.
 
부처님은 제자가 올린 보리밥을 받아서 드셨습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난존자는 또다시 가슴이 미어져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 보리는 말이 먹을 사료인데,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그 보리로 지은 밥을 며칠 굶으신 끝에 드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비통에 잠긴 제자의 얼굴을 보시다 당신께서 먹던 그 밥을 내밀었습니다. 아난 존자는 부처님이 나눠주신 보리밥을 공손히 받아서 천천히 한 입 집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리밥을 입에 넣는 순간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맛없고 거칠기 짝이 없으려니 짐작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 향기롭고 달콤한 맛이었고, 이 세상의 맛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불설중본기경’에서는 “여래의 미묘한 덕이야말로 불가사의하구나”라는 아난존자의 감탄만이 실려 있지만 대승경전인 ‘불설대승십법경’에는 조금 더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비통해 하는 아난존자에게 보리 한 알을 주면서 물으셨지요.
 
“아난아, 어떤 맛이냐?”
 
그러자 아난존자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왕가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렇게 훌륭한 맛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난존자는 그 보리쌀 한 톨의 맛에 이끌려 이레 동안 맑고 깨끗한 즐거움을 누렸다고 합니다. 거칠기 짝이 없는 보리쌀이지만 부처님의 양식이 될 때는 최고의 맛으로 변한다는 것이 불교 입장입니다. 이 경에서는 부처님에게 다음과 같은 능력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래가 흙이나 나무나 기왓장이나 돌멩이 등을 먹어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안에는 여래가 먹은 그 흙과 나무와 기왓장과 돌멩이 등의 맛과 같은 훌륭한 맛은 없다. 왜냐 하면 여래는 최상의 묘한 맛 중의 맛인 대인(大人)의 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래의 일체 모든 음식은 다 최상의 묘한 맛인 줄 알아야 한다.”
 
먹을 복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말먹이용 보리쌀과 관련한 부처님 일을 짚어보자니, 어딜 가나 음식을 대접받는 것이 먹을 복이 아니라, 어떤 음식을 먹든 그 음식에서 달콤한 맛을 느끼고 그 음식으로 몸이 기력을 회복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진짜 먹을 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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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