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허물이 보일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밀교신문   
입력 :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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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강남에 있는 한 분식점 사장이 손님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뉴스에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사연을 들어 보니, 진심이 억겁의 선을 태운다고 했듯이, 한순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어요. 평소에 형, 동생하고 지내던 손님이 사장과 술 동무 사이로 지냈는데, 이 손님이 술만 마시면 항상 하는 얘기가 분식점 음식 맛이 별로라는 둥, 또 분식집 사장님 부인의 흉을 보기도 하고, 아무튼 술만 마시면 자존심 긁는 얘기를 해 왔던 모양이예요.

 

 

사건이 있던 당일에도 무슨 얘기를 하다가 사장한테 대뜸 주제도 모르고 욕심부린다면서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않고 다 했던 거지요. 그리고는 가게 한쪽에 있는 방 안에 들어가 자려는데, 그동안 참았던 사장이 순간적으로 폭발해서 이성을 잃고 사고를 쳤던 거예요. 정말이지 사람의 인연은 알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잘 지내던 사람이 한순간에 원수가 되기도 하고, 평소에 먹이 잘 주던 사육사를 사자가 물어 죽이기도 합니다. 사망한 그 두 사람이 사건 당일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한테 그런 일이 생길 거란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요?

요즘 돌직구란 말을 자주 하던데, 솔직한 게 능사는 아니에요. 물론 상대와 의견 대립이 있을 때 저 친구는 왜 그러니, 글쎄?!”라면서 뒤통수를 치고 양설의 업을 짓기보다는 정정당당하게 이 부분은 네 잘못 아니냐!”고 돌직구로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겠지요. 하지만 상대 생각은 전혀 안 하고 내 입장에서 솔직하게 털어놔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허물없이 뱉은 말 한마디가 거꾸로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달려드는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윷놀이할 때 잘 쓰는 말 중에 모 아니면 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인생을 사는 우리도 이처럼 모 아니면 도라는 태도로 임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뭐든지 확실히 해 두는 게 좋다는 생각에 모는 모’, ‘도는 도이렇게 단정 짓고 결론 내리려 하는 습관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직진 아니면 들이받는 것 외에는 몰라요. 때론 둘러가고, 때론 쉬어가는 여유가 없는 거지요. 이렇게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일을 해도 빨리빨리 서두르게 되고, 또 말 한마디를 해도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직설적인 말들, 소위 가시 돋친 돌직구를 날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대할 때는 냉엄하게 자기비판과 참회를 할 줄 알아야겠지만,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허물을 보거나 비난을 일삼아서는 안 돼요. 마음이 안 가더라도 자꾸 칭찬해주는 이타심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중생이 아닌 보살의 삶을 성취할 수 있어요. 주와 객이 없는 대자유의 세계에는 밖에 따로 이 없습니다. ‘라는 대립 관계가 끊어진 거지요. 이걸 절대(絶對)’라고 해요. 이와 같은 절대 세계에서는 나와 남이 대립하지 않기 때문에 자비심이 솟아나게 됩니다. 자비심이란 모든 중생이 나와 한 몸인 동체대비의 사랑이에요. 우주 생명에 대한 총체적이고 전인격적인 사랑인 겁니다. 상대의 삶에 머물지 말고, 절대의 삶을 사는 자라야 법신을 볼 수 있어요. 아상을 허물고 마음을 비우는 하심의 삶을 사는 진언행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나와 남의 허물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아는 것이란 남의 효순과 불효를 아는 것이고 깨닫는 것이란 자식의 효순을 보고 뉘우치는 것이다. 깨닫는 데 좋은 결과가 온다. 내 허물이 드러나고 남의 좋은 점이 드러난다. 티끌을 쓸고 때가 끼지 않도록 마음을 제어해야 한다. 탐진치로 변하기 쉬운 마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곳에 참회가 있다. 어제 잘못한 것을 오늘 뉘우치고 뉘우쳐서 참회를 하게 되면 곧 발전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온화한 가운데 모든 것이 순조롭게 번영해 나가고 성취할 수 있다. 온화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하기 때문에 악을 짓는 습관이 고질되어 알면서도 고치기 어렵다.”<실행론 4-8-7 ()>

 

길상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