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57-설거지하다

밀교신문   
입력 :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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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그릇을 설거지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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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필라밧투의 왕자 싯다르타가 성을 나설 때 그에게는 소유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왕자의 신분으로 입고 있던 옷도 사냥꾼의 옷과 바꿔 입었지요. 그 후에 보리수 아래에 앉기까지 싯다르타 태자, 아니 보살이 무엇인가를 지녔다는 기록은 경전에 없습니다.
 
깨달음을 이룬 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을 보호하고 가려야 하니 옷은 당연히 입어야 할 테고, 입은 옷 한 벌 말고 지닌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무소유자인 부처님이 깨달은 직후 지닌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밥그릇이지요. 부처님이 되어서 처음으로 가진 물건이 밥그릇이라고 하니, 역시나 먹는 일은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모양입니다.
 
수행자의 밥그릇을 ‘발우’라고 합니다. 그릇 발(鉢), 그릇 우(盂)의 발우는 산스크리트어로 빠뜨라(pātra) 빨리어로 빳따(patta)인데 아마 ‘발우’라는 한자어는 인도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낱말로 보입니다.
 
출가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사실 부엌이 없는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세속 사람들에게는 집이 있어야 하고, 집에는 밥을 지어 먹는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거실이 없는 집은 상상할 수 있지만 부엌이 없다면? 굳이 부엌이 아니라 해도 밥을 지어먹을 공간이 없다면 그곳은 ‘집’ ‘가정’이라 부르기가 뭣합니다. 그만큼 밥을 지어서 먹는 일은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밥을 담아 먹을 그릇을 갖는 일 역시 살아가는 데에 꼭 챙겨야 할 살림살이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하루에 세 끼를 먹어야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릇을 꺼내 음식을 담고, 다 먹은 뒤에 씻어야 하는 설거지라는 숙제가 따릅니다. 이 설거지도 매번 하려니 몹시 귀찮은 일이라 미루다 보면 싱크대에 쌓이게 됩니다. 그걸 보면 더 하기 싫어지는 게 설거지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들은 먹은 즉시 그릇 씻는 걸 원칙으로 하지요. 스님들도 발우공양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아냅니다. 여느 가정집의 설거지보다는 한결 수월하게 설거지를 마치지요. 남긴 음식 없이 깨끗하게 먹으니 설거지도 간편합니다. 그릇은 이렇게 청결한 설거지가 생명입니다. 그릇을 씻는 일은 먹는 일이 끝났다는 신호요, 다음 끼니를 담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음식을 담을 수 없고, 음식을 담더라도 먹기 싫어집니다.
 
하루에 세 번씩 설거지를 해야 하는 일은 사실 여간 성가시지 않습니다만, 내가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경전을 보면 이렇게 설거지를 해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하루 세 번, 그릇을 꺼내 무엇인가를 담고 비우고 씻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그렇게 늘 잘 비우고 잘 씻으라는 것이지요.
 
그릇에는 음식이 담기는데 마음에는 무엇이 담길까요? 마음공부를 잘 한 사람이라면 좋은 것, 향기로운 것, 청결한 것만 담겨서 설거지가 쉽겠지만 보통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초기 경전인 ‘맛지마 니까야’에 들어 있는 <옷감 비유의 경>을 음미하자면 마음그릇을 설거지해야 하는 이유를 만날 수 있는데 그 경의 내용을 말씀드려보지요.
 
우리 보통 사람에게는 이번 생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해탈하지 못한 이상 윤회하게 마련인데 그렇다면 이왕이면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 게 또 사람 마음입니다. 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더러운 것에 물들면 나쁜 길이 그대를 기다리고, 마음이 깨끗하면 행복하고 좋은 길이 그대를 기다린다.”
 
나쁜 길이란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를 말하고, 좋은 길이란 천상과 인간을 말합니다. 그러니 다음 생에 어느 곳으로 가느냐는 지금 내 마음이 더러움에 물들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더러움에 물들어 있다는 것은 마음에 더러운 것이 담겼다는 것을 말합니다. 경전에서는 마음에 담긴 더러움을 16가지로 보여주는데, 탐욕, 악의, 성냄, 원한, 저주, 격분, 질투, 인색, 속임, 기만, 고집, 선입견, 자만, 오만, 교만, 게으름을 들고 있습니다(이상은 전재성 번역본에 의거한 것임을 밝힙니다). 마음 그릇에 이 열여섯 가지 더러운 것이 담겨 있으면 곤란합니다. 서둘러 비워버리려고 노력해야 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맛지마 니까야’ <더러움 없음의 경>에는 더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즉, 세상에는 자기 마음에 이런 더러운 것이 담겨 있음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전자를 더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비우려고 노력하니까요.
 
자기 마음에 더러운 것이 담겨 있는데 그런 줄 아는 사람은 시장에서 사가지고 온 청동 그릇이 비록 먼지가 가득하고 녹이 슬어 있더라도 자꾸 닦고 사용하면서 먼지 구덩이에 내버려 두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릇이란 이렇게 늘 깨끗한지 더러운지 살펴서 수시로 닦고 자주 써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그릇은 더 윤이 나고 더 쓰임새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기 마음에 더러운 것이 담겨 있어도 그런 줄 모르는 사람은 마치 시장에서 사가지고 온 청동 그릇이 먼지가 가득하고 녹이 슬어 있는데 그걸 없애려고 하지 않고 그냥 먼지구덩이에 던져버리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즉, 자기 마음에 열여섯 가지 더러운 것이 담겨 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이고, 딱히 수행이든 마음공부든 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절에 다니고 기도하고 공부하는 것도 마음에 더러움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부지런히 정진해서 더러움을 없앴더라도 경전에는 여기에도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 마음에 더러움이 없다고 아는 경우와 그런 줄 모르는 경우입니다. 부처님은 역시 전자인 ‘아는 경우’가 더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더러운 것이 없는 줄 모르는 경우는 자칫 바깥 세상에 마음을 빼앗길 우려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행여 마음에 들고 보기 좋은 대상을 만나면 그걸 자꾸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가는 탐욕이 그만 마음을 덮친다는 것이지요. 동의하시는지요? 마음을 단단히 단속하고 자기 마음을 잘 살피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바깥 대상에 흔들리고 휩쓸리는 것이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탐욕이 마음을 덮치면 그는 탐욕에 휘말린 채 살아가게 될 것이요, 어쩌면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그렇게 마음이 탐욕이란 더러움에 물들어버린 채로 살다 가게 될 것이란 것이 경전의 말씀입니다. 마치 시장에서 아주 깨끗한 청동 그릇을 사가지고 와서는 그 그릇을 잘 닦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그냥 먼지 구덩이 같은 곳에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결국 처음에는 보기 좋았던 정갈한 청동 그릇은 음식을 담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마니, 그릇의 쓰임새는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부처님이 찬탄하신, 마음에 더러움이 없어도 더러움이 없는 줄 제대로 아는 경우는 어떨까요? 자기 마음에 더러움이 없는 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설령 바깥 대상이 아무리 매혹적이라고 해도 거기에 정신이 팔리지 않습니다. 정신이 팔리지 않으니 탐욕이 생겨날 까닭이 없겠지요. 탐욕이 일어나지 않으니 행여 소유하지 못했을 때 생겨날 분노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요, 지혜롭게 대처하니 어리석음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깥 대상에 이끌리지 않으니 그는 세상을 슬기롭게 살다갈 것입니다. 마치 시장에서 깨끗한 청동 그릇을 사가지고 온 사람이 수시로 꺼내서 닦고 사용하고 늘 문질러서 윤을 낸다면 그 청동 그릇은 더욱 보기 좋아지고 잘 길들여져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를 훌륭하게 해내는 것과 같습니다.
 
부엌살림을 하다 보면 자주 쓰는 그릇만 쓰게 됩니다. 그런 그릇은 손에 익어서 음식을 담아도 기분이 좋고 어떤 사람에게라도 음식을 담아 내놓게 됩니다. 수시로 쓸 그릇이니 늘 깨끗하게 닦아 두는 건 기본이고 반들반들 윤이 나서 보고 있으면 즐거워집니다.
마음이라는 그릇도 그와 같다는 것이 초기경전 속 부처님 생각입니다. 마음이 내 주인이 아니라, 내가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주인이 자기 소유인 마음을 수시로 살펴서 닦고 윤을 내어야 필요할 때 잘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 세 번 끼니 챙기는 일이 끝나면 부엌 개수대에는 설거짓감이 수북하게 쌓입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오염이 씻겨나가는 그릇을 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그 그릇으로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챙기게 되니까요. 이제부터는 부엌에 있는 그릇뿐만 아니라 마음그릇 설거지도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그릇도 쓰지 않고 내버려 두면 결국 제 쓰임새를 발휘하지도 못한 채 버려지고 말 듯, 내 소중한 마음 그릇도 자주 챙기고 닦고 윤을 내야 합니다. 번뇌라는 오염물질을 설거지해서 마음이 언제나 선하고 바른 것을 담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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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