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왜 인연을 잘 맺어야 한다고 얘기하나요?

밀교신문   
입력 : 202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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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있어 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목욕할 때나 그릇 씻을 때, 밥 지을 때, 세탁이나 세차할 때 등등, 물이 없다면 인류는 엄청난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야 할 거예요. 불도 마찬가집니다. 만약에 불이 없다면 음식을 익혀 먹을 수도 없고, 겨울에 온수도 없이 냉방에 지내며 살아야 할 거예요. 그런데 평소에 이렇게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인 불과 물도 때에 따라서는, 또 인연에 따라서는 뭇 생명을 앗아가는 큰 앙화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올여름은 유난히 전국적으로 비 피해가 커서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다가 하루아침에 집을 잃게 된 그들의 심정이 어떨까요? 이렇게 홍수나 쓰나미와 같은 수재도 문제지만, 화재나 폭발로 인한 사고 역시도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레바논에서 다량의 질산암모늄을 잘못 관리한 탓에 폭발 사고가 크게 나서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고 말았지요. 자연이 인간에게 경고하는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지만, 적어도 순간의 부주의로 인해 고통받는 인재는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행복하고 기쁜 일도 많지만, 이처럼 불행과 악재가 겹치는 순간순간도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는 공덕천 같은 존재입니까, 아니면 흑암천과 같은 재앙을 가져다주는 존재입니까? 어때요? 물이나 불 자체만 가지고는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겠지요? 맞습니다.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이것이 우리에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어요. 상극이냐, 상생이냐, 어차피 역사는 인연 맺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재앙을 피하고 행복을 가져오려면 이 인연을 잘 맺어야 해요.

 

비유하면 여기 칼이 있다고 했을 때, 칼 자체로는 좋다’, 또는 나쁘다라고 할 수 없겠지요? 그 칼이 어떤 주인과 인연 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강도의 손에 쥐어지면 생명을 해치는 악한 칼이 되겠지만, 요리사의 손에 쥐어진다면 많은 생명을 살리는 상생의 칼이 될 거예요. 이처럼 같은 대상이라도 어떠한 상황과 인연을 만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불과 물은 원래 상극이에요. 불은 뜨겁고 물은 차갑습니다. 불은 위로 올라가려 하지만, 물은 거꾸로 밑으로 떨어지려 하지요. 또 불의 영혼은 재가 되어 땅속에 묻히지만, 물의 영혼은 반대로 김이 되어 하늘로 승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립하고 반목하던 물불이 부엌에 들어오면 어떻게 됩니까? 놀라운 조화의 힘으로 밥을 짓고 국과 찌개를 끓일 수 있게 되지요. 불과 물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면 상극은 상생으로 변해서 날것도 아니고, 탄 것도 아닌 맛있는 문명의 밥상이 차려지게 되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란 것은 대립과 고통, 권태로움을 그 바탕으로 해야만 더 빛이 나는 걸지도 몰라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주위가 온통 어두컴컴하기 때문이듯 말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과 불화는 그 과정을 통해 결국에는 행복으로 연결되는 인연으로 탈바꿈하지 않을까요? 다만 그렇게 되려면 인연 맺음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하겠지요.

 

때때로 과학과 종교가 반목하여 우리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상생할 수 있을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종교로 정신문화를 발전시키지 않고 과학으로만 물질을 발전시킨 결과는 악한 데로 돌아가기 쉽다. 과학은 다 가르치고 배워도 종교에 대한 믿음과 깨침이 없어서 불평과 불만과 불행한 고통 가운데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는 곧 과학이 본래 악이 아니어서 종교로 선하게 되고 종교가 본래 행복이 아니라 과학으로 행복하게 되는 이치이다.”<실행론5-4-5 ()>

 

길상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