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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한 관계

밀교신문   
입력 : 202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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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넓은 집이 부러웠는데, 커서는 남매간 우애가 좋은 집이 부럽다. 사회생활에서 어색한 침묵을 깨는 기본 질문 중 하나인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동생 있어요? 첫째예요?”라는 평이한 질문에 동생과 사이가 좋다고 대답하면 그때부턴 대단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순식간에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우애를 중시하는 가족 분위기 때문 일수도 있고, 어릴 때 유달리 함께했던 추억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그런 관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다.

 

남동생과 유난히 사이가 좋은 신입사원은 게임을 하는 게 취미다. 최고의 게임파트너는 남동생이라며 남자친구랑 할 때 보다 오히려 훨씬 더 과격하고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비단 남매, 형제뿐 아니라 또래 사촌들과 유난히 사이가 좋은 집안에도 눈길이 간다. 영화 포스터 한 장면처럼 잔뜩 멋을 부린 여섯 명의 사촌이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컨셉으로 찍은 사진에는 그들만의 청춘과 젊음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닮은 듯 안 닮은 듯 서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짙어진다.

 

모든 관계는 복잡하고 어렵지만, 친구 사이에서 지켜야 할 인간관계, 사회생활에 필요한 대인관계, 사랑하는 사람과 맺는 연인관계에 대한 조언은 쉽게 구할 수 있다. 반면에 가족을 이해하고 가족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은 주변에서 찾기도 어렵고 연습할 기회도 적다. ‘동생에게 양보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와 같은 기본 교육만 가지고 실습 없이 실전에 내몰린다. 그래서 의도와는 달리 어느 순간 어색해지고 조금씩 멀어진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에서 우애가 깃든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바로 유치함이다. 밖에서 경직된 생활을 하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누구나 편안해지길 원한다. 내 가족 앞에선 가면 없이 서로를 마주하고 조건 없는 환영을 바란다.

 

회사에서 하듯이 가족을 대하면 관계는 딱딱하게 굳어지고 이내 부식된다. 밖에서는 약점이 될 수 있는 빈틈을 스스럼없이 보이고 숨겨왔던 유치함을 드러내는 게 돈독한 우애의 비결이다. 함께 하는 취미가 많을수록 좋다. 어릴 때 남동생과 어울리기 위해 로봇 놀이와 레고 놀이를 했고, 동생도 나와 함께 인형 놀이와 보드게임을 했다.

 

유치한 경쟁심에 불타오르기도 하고, 엉성한 모습을 놓칠세라 서로 약 올리며 깔깔거리곤 했다. 삼국지와 포카혼타스 얘기를 넘나들며 서로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면서 지속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호기심을 확장했다.

 

밖에서는 예의에 맞춰 감정표현을 절제하지만, 집에선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 훈장처럼 달린 나이를 떼고 세상 하나뿐인 동생 앞에서만이라도 말랑말랑한 채로 남고 싶다. 인생에도 장르가 있다면, 스릴러에서 코미디로 바꿀 수 있는 최고의 개그 파트너가 형제, 자매, 남매니까.

 

요즘 스쿼시에 빠져있다. 동생이 돌아오면 함께 스쿼시를 치러 가기로 약속했다. 좀 더 잘 쳐서 실력을 뽐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헛스윙하며 유치하게 놀고 싶다.

 

양유진/네이버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