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하기도 바쁜데 왜 육자진언을 염송해야 하나요?

밀교신문   
입력 :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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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성존 회당대종사께서는 자성일과 수요일의 공식불사에 동참하면 항상 번뇌 없는 삼밀행을 지속하여 삼마지보리심(三摩地菩提心)을 얻어 모든 고()를 여의고 구경해탈되어 일체에 통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실행론3-4-3).

 

삼마지는 산스크리트어로는 ‘samadhi’, 한자어로는 삼매(三昧)’라고 번역합니다. 또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고도 하는데 마음이 대상과 하나가 되는 최고 집중의 경지를 말하지요. 보통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기억력은 그 순간순간에 얼마나 집중력을 갖고 있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마음이 깨어 있을 때라야만 대상에 대해 집중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멍때린다는 표현이 유행이더군요. 컨디션이 별로여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마냥 눕고만 싶을 때 있잖아요? 그럴 때는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제힘을 발휘할 수가 없겠지요. 이럴 때는 젊은 사람들도 깜박깜박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중학생이 친구 집에 전화를 했는데, 친구 어머님이 전화를 받으셨대요. 그런데 갑자기 친구 이름이 생각이 안 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궁리 끝에 한 말이 아들 있어요?” 그랬답니다. 어떤 분은 회갑 잔치란 말이 생각이 안 나서 육갑 잔치 잘 치르셨어요?”라고 했대요. 또 어떤 분은 산달이란 말이 생각이 안 나서 만기일이 언제예요?”하고 물었다가 민망해서 어쩔 줄 몰랐다고 하더군요.

 

마음의 작용을 정지시켜서 한곳에 제대로 모으기만 하면 몸과 마음이 일심동체가 됩니다. 염송을 지극하고 간절하게 해 보신 분이라면 아실 거예요. 짧은 순간이라도 마음이 제대로 집중만 하면 잡념이나 망상이 끊어져 매우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를 적정(寂靜)’이라고 하지요. 이러한 적정의 경지를 일상생활 중에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생활불교, 실천불교의 취지입니다.

 

적정을 얻기 위한 집중과 생활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집착은 엄연히 다릅니다. 마음이 평온하게 집중된 상태가 바로 염송이지요. 그런데 현실을 살다 보면 이 집중보다는 집착에 마음이 머무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마음이 특히 그래요.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조용히 해라”, “뛰는 거 아니다등등 온갖 잔소리를 다 하잖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때요? 별로 크게 신경을 안 쓰거든요. 그냥 지나가면 되는 거고, 자기 애도 아니니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는 거지요.

 

부모의 눈으로 보니 자기 자녀만 이상하고 유별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어린아이들 노는 게 다 고만고만합니다. 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요? 집착 때문이에요. 이렇게 자녀에 너무 집착하면 정작 주위 사람을 배려한다고 혼내게 되지만, 그로 인해 주위 사람이 오히려 더 불편해진다는 걸 아셔야 해요.

 

외모에 대한 병적인 집착도 마찬가집니다. 사람이 아무리 외형적 아름다움에 매료당하는 것 같아도, 행동과 말에 매력이 없으면 금세 싫증이 나기 마련이에요. 따라서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보다는 자신 있는 삶, 그리고 내적으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지요.

 

진언행자가 염송과 희사를 실천하여 삼매를 체득하고자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충실한 무위법으로 사는 길이요, 진리 세계에 사는 길입니다. 심지어 다투거나 사기당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그 사람을 위해 차별희사를 세워주는 법을 실천하게 되면 이것은 보는 이가 없더라도 밝게 사는 길이 되고, 또 체를 세우는 길이 됩니다. 지금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방역지침을 준수하되, 용맹을 더 세워서 진호국가불사에 동참하는 선연 공덕을 쌓으시기 서원합니다.

 

길상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