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59-병들다(2)

밀교신문   
입력 :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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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괴로움을 담은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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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도, 스님들에게도, 재가신자들에게도…. 경전에는 극심한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병문안을 가면 이렇게 묻습니다.
 
“참을 만합니까?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괴로움이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아픔이 많이 줄어들고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병상에 누운 이들은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고통은 나날이 더 심해지기만 합니다. 얼마나 아픈가 하면, 마치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머리를 쪼개는 것처럼 거센 바람이 머리를 휘젓습니다. 그 아픔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힘센 사람이 단단한 허리띠로 머리를 조이는 것처럼 극도의 통증으로 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도축장에서 날카로운 칼로 가축의 배를 가르는 것처럼 거센 바람이 나의 배를 엄습합니다. 힘센 사람 둘에게 붙잡혀 뜨겁게 달아오른 숯불 구덩이에 지져지는 것처럼 지금 제 몸에는 열이 올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아픔을 참아내기가 힘듭니다.”(‘맛지마 니까야 다난자니경’)
 
이런 비유는 대체로 더 이상 병에서 회복되기 힘든 위중한 병자들의 고통을 담고 있는데 그 아픔이 어느 정도일지 건강한 사람은 결코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이 괴로움 끝에 죽음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대반열반경’에서는 “왕 중의 왕 전륜성왕이 행차할 때 신하들이 그 뒤를 따르듯 죽음이라는 전륜성왕에게는 병이라는 신하가 반드시 그 뒤를 따라 온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하를 거느리지 않은 왕의 행차는 상상할 수 없듯이 병고를 동반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이런 비유도 들고 있습니다.
 
“병으로 인해 마음이 괴롭고 시끄러워지고 근심과 슬픔이 일어나 몸과 마음이 불안하다. 병은 원수와 도둑들에게 시달리는 것과 같다. 병이란 구명부대가 찢어지고 다리가 무너진 것과 같다. 병이란 바르게 생각하는 근본을 빼앗기는 것이요, 병이 들면 장성한 기색과 기운과 편안함이 부서지고 부끄러움조차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병은 몸과 마음을 뜨겁고 번민하게 한다.”(대반열반경)
 
무심코 읽어 버렸던 비유들이었는데 목숨을 가지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고스란히 제 몸과 마음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요, 이런 병고를 피해갈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여덟 가지 괴로움 가운데 원증회고(怨憎會苦) 즉 미워하는 것과 만나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미운 것은 사람이나 물건이 아니라 바로 이 생노병사의 괴로움이라는 설명도 경에서 만났습니다. 밉고 싫고 사랑스럽지 않으면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만나게 되니….
 
어느 날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조용한 곳에 앉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미워할 만한 것이고, 둘째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이고, 셋째는 도저히 끝까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첫째로 미워할 만한 것은 늙음이고, 둘째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병듦이고, 셋째로 끝까지 따라가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죽음이다’라는 생각입니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말씀과 같습니다. 세상에 늙음과 병, 죽음 이 세 가지가 없었다면 여래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요, 법을 펼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있기 때문에 여래가 세상에 나와서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것입니다.”(‘잡아함경’)
 
아무리 멋지게 늙어간다고 해도 늙음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현상입니다. 물론 마음공부를 잘 했다면 늙음도 삶의 한 부분이기에 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늙어가는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이는 걸 꺼려합니다.
 
그리고 병듦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도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사랑스러운 병은 없지요. 이따금 백발의 어르신들이 곱고 단정한 모습으로 우아하게 움직이시면 젊은이들은 탄성을 지릅니다. 연륜이 담긴 노인의 나직한 한 마디는 젊은이의 함성을 압도합니다. 그런 면에서 늙음은 때로 존경과 사모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병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몸에 찾아오는 병은 사실 어느 한 구석 예뻐 보이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습니다. 내 몸을 심하게 망가뜨리고 허물어뜨리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리 끝까지 쫓아가서 관찰하고 생각해보고자 해도 범부로서는 불가능합니다. 누가 말했던가요? 세상에 자기 두 눈으로 끝까지 볼 수 없는 것이 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죽음과 태양이라고 말이지요. 숱한 철학자와 종교인들이 죽음을 직시하고 죽음을 논하고 있지만 다른 이의 죽음은 볼 수 있어도 정작 가장 중요한 자기의 죽음은 자기 눈으로 볼 수 없고, 맑고 이성적인 정신상태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몸에 찾아오는 병고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은 파세나디왕의 생각은 부처님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부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중생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질병의 비참함을 겪어왔다.”(‘상윳타 니까야’)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병고를 겪었고, 이런 병고 끝에 목숨이 부서지는 괴로움을 겪었고 다시 태어나고 장성하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괴로움을 무한 반복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입장에서는 늙고 병들고 죽는 일 앞에서 중생이 괴로워하고 두려워 떠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은데 마치 처음 겪는 일처럼 힘들어 하니 그런 모습이 더 안타깝다는 것이겠지요.
 
‘법구비유경’ 속 이야기를 전해드리지요.
 
깊은 산 속, 고요한 숲에서 수행하는 현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숲 속 동물들이 언제나 다가와서 벗해주고 있었지요. 어느 날 밤, 이 동물들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게 뭘까?”
 
까마귀가 말했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른 것이 가장 괴로워.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면 이 몸을 어찌하지 못해. 정신까지 혼미해지는 바람에 새그물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우리에게 날아오는 작살이나 칼날도 보지 못하거든.”
 
비둘기가 말했습니다.
 
“성욕이 가장 괴롭지 않을까? 성욕이 불꽃처럼 일어날 때에는 진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잖아. 성욕에 휩싸여버리면 몸도 위태로워지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하더라고. 이런 비극은 오직 불길처럼 솟는 성욕이니 그걸 절제하는 게 가장 괴로워.”
독사가 말했습니다.
 
“나는 화가 나는 게 가장 괴로워. 상대에게 화가 나서 독한 마음이 한 번 일어나면 남을 죽이고 그러다 내 자신도 죽거든.”
 
사슴이 말했습니다.
 
“나는 숲속에서 놀면서도 언제나 사냥꾼이나 늑대들에게 습격당하지 않을까 늘 걱정하고 겁에 질려 있어. 그게 가장 괴로워. 바스락 거리는 작은 소리라도 들리면 나는 겁이 나서 내달리는데 그러다가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언덕에서 떨어지기도 해서 크게 다치거든. 심지어 우리 사슴 중에는 놀라 달아나다가 새끼를 잃어 애태우는 어미사슴도 많지. 난 놀라움과 두려움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워.”
 
그러자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 있던 현자가 동물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말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괴로움은 지엽적인 것이야. 생명체들에게는 몸보다 더한 괴로움이 없지. 이 몸은 괴로움을 담고 있는 그릇이어서 끝없이 근심과 두려움이 찾아오지. 내가 세속을 버리고 이 숲 속 나무 아래에서 수행하는 이유도 바로 이 몸에 애착을 하지 않고 괴로움의 근본 원인을 찾아 끊어버리고 힘들고 괴롭고 두렵지 않은 열반을 얻으려는 뜻을 세웠기 때문이란다.”
 
굶주림이 괴로운 것도, 성욕이나 분노가 괴로운 것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라는 일이 괴로운 것도 결국은 괴로움을 담은 그릇인 이 몸에 해가 가해질까 하는 걱정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내 몸이 이렇게 허약하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병들어 괴로울 게 빤하다며 이 몸을 함부로 하거나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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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