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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지만 전하고 싶은 말

밀교신문   
입력 :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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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와 덕질은 숨길 수 없다는데 네이버웹툰에서 일하기 전부터 웹툰을 워낙 많이 읽는 거로 유명해서 웹툰을 추천해달라는 권유를 자주 받았다. 호기심으로 지나치듯 한 질문에도 외국인에게 인사동을 소개하는 마음으로 선호하는 장르, 연령대, 그림 취향까지 고려해서 추천해준다. 심지어 추천 이유까지 꼼꼼하게 적은 표를 만들어 줄 정도로 웹툰을 소개하는데 열정적이다. 웹툰을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사람일수록 추천 작품 선정이 까다로운데, 인생 첫 작품이 웹툰 서비스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기에 인기 순위가 높은 대중적인 웹툰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에 꽂힐 만한 웹툰을 우선으로 여긴다.
 
최근에 어느 정사님과 차를 마시면서 종교와 관련 있는 웹툰이 있다면 읽어 보고 싶다는 의지를 비치셨다. 웹툰에 관한 관심이 감사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웹툰을 당장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정성스럽게 웹툰 추천 표를 만들어서 드리고 싶은 마음에 신나는 마음을 억누르고 조금 더 생각해보고 답장을 드리겠다고만 점잖게 말씀드렸다. 지금껏 다양한 사람들에게 웹툰을 추천해왔지만, 종교적인 요소를 고려한 건 처음이라 훨씬 더 신중히 고려할 부분을 따졌다. 종이 책자가 익숙한 세대에게 세로 스크롤 형태가 낯설 수 있으니 말풍선 크기도 고려할 부분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효과음은 작품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웹툰 속 주인공의 나이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웹툰은 열린 플랫폼으로 회차마다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기 때문에 쉽사리 편 가르기 싸움으로 번질 수 있고 종교의 선택은 개인의 자유인만큼 민감한 이슈이기에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가급적 종교 색깔을 강하게 담지 않으려는 편이다. 예술성과 도덕성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게 그 이유다. 이야기의 극적 효과를 위해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다룬 상위권 웹툰이 있다. 올해 완결된 네이버웹툰의 <헬프탑>과 드라마 <구해줘>로 제작된 다음웹툰의 <세상 밖으로>는 종교와 무관한 주인공의 시선으로 스릴 넘치는 긴장감을 끌어내 큰 흥행을 이뤘다. 현재 연재 중인 작품으로는 외계인을 믿는 사이비종교 심층 취재기를 다룬 <아도나이>가 있다.
 
지구가 멸망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서는 흔히 신, 절대자, 메시아, 구원자와 같은 캐릭터를 사용해서 주인공과 흥미진진한 대치 구도를 만든다. 노화 방지약을 복용하는 시대에 뒤늦게 부작용이 터진 이야기를 다룬 <하르모니아>, 세상의 파멸과 구원을 고민하는 차원이 다른 좀비물 <데드라이프>, 인간이 손톱만큼 작아지는 <3cm헌터>는 모두 종교와 무관한 주제를 가졌지만, 절망적인 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종교를 필요로하고 의지하는지를 다룬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이야기의 극적 요소를 살리기 위해 작품에서 비치는 ‘종교’는 맹목적인 신앙, 잘못된 선택으로 흘러가곤 한다.
 
신앙을 소재로 직접적으로 다루거나 믿음을 설파하는 캐릭터가 등장하진 않더라도 종교와 같은 결을 가진 작품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천만영화로도 익숙한 <신과 함께>, 단편으로 이뤄진 <죽음에 관하여>는 종교적인 이야기는 없지만, 삶 이후의 죽음이라는 또다른 삶을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자극적인 내용은 덜하지만 네팔의 ‘쿠마리 전설’을 모티브로한 <시타를 위하여>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재해석한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은 15화 내외로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라 추천한다. 딱딱한 가르침보다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리가 종교를 찾듯이, 내면의 울림이 필요할 때 추천하는 네이버웹툰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한 편의 글에 수많은 웹툰 제목이 쓰였는데 딱 한 가지만 기억해서 읽어야 한다면 <당신의 과녁>을 강력 추천한다. 억울한 누명을 쓴 주인공, 엽이가 세상을 향한 분노로 복수극을 꾸미는 내용이다. 한때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신을 믿으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원망함과 망설임 사이에서 자신의 가족이 파괴된 만큼 결국 타인을 파멸시킬 준비를 한다. 다른 복수극과 이 작품이 다른 이유는, 잔혹함 대신 따뜻함을 택하기 때문이다. 누명이 밝혀지고 나서야 사과하러 온 이웃 주민들을 보고 엽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사코 돌려보내려고 한다. 그런 자신과 달리 집안으로 들여보내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버지에게 괘씸하지 않냐고 질문하자 이렇게 답한다.
 
“잔인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아. 오히려 우리가 살기 위해선 사과를 받지도 못함에도 역으로 세상을 용서해야지. 그런 불합리한 세상에서 우리에게 사과하며 눈물 흘리는 저들은 얼마나 고마우냐.”
 
매일 밤하늘을 보며 감사함을 표하던 엽이가 출소 후 하늘을 경멸하게 되듯이 종교는 누구에게나 다른 속도로 다른 시기에 찾아온다.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군가를 용서하며 분노로 가득 찬 마음을 갈고 닦고 비워 내는 게 종교수행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타인과 과거의 자신을 비난하는 일을 멈추고 원망마저 삼켜버린 용서의 힘을 한 편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양유진/네이버 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