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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밀교신문   
입력 :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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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래에 대해 말을 걸어볼까 한다. 첫 번째 이야기. 필자의 큰 누인 어느 지방의 무형문화재로 우리 정가를 부른다. 다소 생소할 수 있겠는데 정가란 우리의 전통 성악으로 가곡이나 가사, 시조를 묶어 일컫는 말이다. 느린 가락에 매우 정적인 느낌이 있어서 옛 선비들이 즐겼던 장르이다. 정제된 형식의 가곡은 물론이지만 세줄 분량의 짧은 시조도 매우 긴 호흡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영화 <해어화>에 나오는 사랑이 거즛말이를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정가는 흥보다는 멋의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반들의 풍류음악으로 인식돼 지금은 어느 정도 저변이 넓어졌으나 여전히 대중성은 낮다. 필자 또한 누이의 정기공연장을 몇 차례 찾긴 했지만 국어 시간 시조를 가르치면서도 시조창 한 곡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어쩌다 정가 영상을 보며 읊조리듯 따라 불러보기는 하지만 취향은 잘 변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이야기다. 대중가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유행하던 시절에 가수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가사와 트로트풍 탱고 같은 멜로디가 친밀감이 생기지 않아 자주 흥얼거리진 않았다. 그러나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라는 노랫말에 어울리는 나이가 되고 보니 지금은 감정이입이 잘 된다. 이렇게 사람이 변한다.

 

세 번째 이야기다. 요즘 트로트가 대세라고 한다. 무명의 가수들이 트롯대전을 통해 스타덤에 오르고 기존의 가수들도 트로트 시장에 뛰어들기 바쁘다. 방송가에도 트로트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기획하느라 분주하다. 편한 자리에서는 임영웅이나 이찬원을 모르면 안 된다. 화장품을 사면 트로트 가수의 친필 사인을 함께 주는 마케팅도 선보인다. 그래서일까. 필자도 뒤늦게 동영상 몇 편을 찾아보거나 새롭게 해석한 요즘의 트로트가 갖는 매력을 느껴보기도 한다. ‘불후의 명곡식 편곡과 유연성이 가미된 일부 트로트 무대에선 특별한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취향의 문제이다. 이렇게 사람은 환경과 경험의 지배를 받아 잘 변하지 않는 구석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최백호의 이야기다. 얼마 전에 우연히 들은 이 가수의 마크 트웨인이라는 제목과 노래가 귀에 쏙 들어왔다. 5인조 밴드인 '신나는 섬'이 만들어 이 노래에 어울릴 법한 대선배에게 부탁한 것이라고 하는데, 한 소년이 집을 떠나 방황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성장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필자도 서정적인 가사에 느린 가락이 최백호라는 가수의 음성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마크 트웨인은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지은 작가의 필명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부랑자 소년 허클베리와 도망자인 흑인 노예 짐이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따라 만들어내는 특별한 모험담을 다루고 있다. 사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흑인 노예를 소유물처럼 인식하던 강고한 사회적 인습을 뿌리치고 인간애와 우정을 향한 허클베리의 심적 동요와 변화가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릴 적 미시시피강 수로인을 지낸 작가의 경험담이 한몫 했겠으나 마크 트웨인이란 배가 지나가기에 안전한 수심이라는 의미도 있다.

 

어떤 실패와 공포 속에서도 누군가의 곁에서 마크 트웨인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반복해 들어보았다. 스토리가 있는 노래가 기억에 남기 마련이지만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감상에 젖고 위로를 받는다. 정가도 트로트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지점이 있다. 삶도 교육도 그랬으면 좋겠다.

 

한상권(심인고 교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