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61-집을 짓다(1)

밀교신문   
입력 :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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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저택을 짓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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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코살라국 사위성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사위성에 80대 노인이 한 사람 살고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아주 큰 부자였지요. 그런데 인색하고 욕심이 많았습니다. 재물을 쌓고 모으는 일에 열중할 뿐 그 밖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고집불통이어서 누가 좋은 말을 해도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고 저 혼자만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노인의 취미는 집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 많은 재물로 집을 증축하고 인테리어에 공을 들였지요.
 
부처님이 그 노인을 만나러 가던 날도 노인은 한창 집을 짓던 중이었습니다. 앞에는 사랑채를, 뒤에는 별도의 건물을 지었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높게 다락을 만들었고, 방은 한기를 잘 막아서 따뜻함이 오래 유지되게 했습니다. 동서로 수십 칸의 행랑을 지어서 누가 보더라도 으리으리한 규모였습니다. 이제 집 공사도 마지막에 이르러 뒤채 별당에 차양을 내는 일만 남았습니다. 노인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공사 현장에 뛰어들어 감독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노인을 가만 살펴보시다 애석하게도 그날 노인은 숨을 마치게 되었음을 알았지요. 그런데도 그 노인은 자신의 운명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노구를 이끌고 공사를 지휘감독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살이 쏙 빠지고 기운이 달려 혼미해지는 데도 노인은 현장에서 인부들을 닦달하며 어서 일을 하라고 호령하였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구나. 자기의 일은 전혀 모르고 이 노인은 바깥 일에만 정신을 쏟고 있으니….’
 
부처님은 아난과 함께 노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걸었지요.
 
“어르신, 참으로 힘드시지요? 누구를 들여서 살게 하려고 이렇게 집을 크게 짓고 계십니까?”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앞 사랑채에는 손님이 오시면 묵고 가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뒤쪽 별채에는 내가 살려고 합니다. 동서 양쪽의 행랑에는 자식들이 하인들을 거느리고 살게 할 것이고, 또 재물도 보관하려고 합니다. 여름이면 저 시원한 다락에 올라 바람을 쐬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따뜻한 방에 들어가려고 이렇게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지요.”
 
부처님이 말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르신의 존함을 오래 전부터 듣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 이야기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내가 인생에 대해, 사람의 나고 죽음에 관해서 들려드리고 싶은 게송이 있는데 잠깐만 일을 멈추고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노인은 성가셨습니다. 오늘 중으로 공사를 마치려면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제가 바빠서 이야기할 겨를이 없습니다. 나중에 오시면 그때 천천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요. 아, 제게 들려줄 게송이 있다고 하셨으니 그 게송이나 한 자락 들려주십시오.”
 
이 말을 하면서도 노인의 두 눈은 인부들을 지켜보느라 바빴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노인에게 이렇게 게송을 들려주었습니다.
 
“자식이 있고 재물이 있다고 하여/어리석은 사람 하릴없이 분주하구나/이 내 몸도 내 것이 아닌데/자식과 재물을 무엇 하러 걱정하는가/더울 때는 여기 머물고/추울 때는 저기 머물겠다며/어리석은 사람 미리 걱정하지만/당장 닥칠 변고를 알지 못하네/참으로 어리석구나, 사람이여!/자신은 부유하고 현명하다 여기지만/제 앞날을 모르니/이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으랴.”
 
부처님이 게송을 읊자 노인이 말했습니다.
 
“아, 네, 네. 잘 들었습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너무 바쁘서요. 그때 이야기를 나눕시다.”
 
게송에 담긴 뜻을 음미해볼 마음을 전혀 품지 못한 채 노인은 공사를 마칠 생각뿐이었습니다. 오늘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살피지도 못하면서 자식과 하인을 위해 집을 증축하고 다가올 계절을 지낼 생각에 마음이 붕 떠 있는 사람을 지켜봐야 하는 부처님 마음도 참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더 머물며 자꾸 말을 건네다가는 노인이 역정만 낼 터이니 하는 수 없이 아난을 데리고 조용히 그 집을 나왔습니다.
 
이후 노인은 손수 서까래를 올리다가 그만 서까래가 떨어져 그의 머리를 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대저택을 완공하여 크게 잔치를 열려던 그 집에는 한순간에 통곡이 터져 나왔고 그 울음소리가 멀리까지 퍼졌습니다. 부처님께서 채 그 마을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사람의 나고 죽는 일을 부처님이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악업 짓는 일을 말리고 선업을 짓도록 권하며, 마음공부 하도록 일러주고 수행의 세세한 지침을 알려줄 수는 있습니다. 그 사람이 부처님 안내를 받아서 선업을 짓고 마음을 잘 닦고 지혜를 키워 자신의 삶을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을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태어나는 일을 부처님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태어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일을 부처님이 좌지우지 하는 건 아닙니다. 죽기 전에라도 그 사람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지혜를 키우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뿐입니다.
 
부처님은 등 뒤로 울려 퍼지는 통곡소리를 들으며 마을을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가시는 도중에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다가와서 부처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노인의 집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지금 저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리지요? 바로 그 집입니다. 노인에게 변고가 생길 것을 알고서 진리 한 자락 들려주려고 그 집에 갔지만 그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집을 짓느라 바빠서 도저히 짬을 내지 못했지요.
 
부처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모든 것이 덧없음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한순간에 이승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마을 최고 부자가 방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가 가진 재산으로 대대손손 풍요롭고 안락하게 인생을 즐기며 누구보다 오래 살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란 것이 그런 건가 봅니다. 1초 앞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덧없다, 덧없다 말로는 수없이 되뇌지만 바로 이것이 덧없음입니다. 노인은 다가올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생각을 했지요. 내년 여름에는 시원하게 다락에서 보내려 했지요. 자식들과 하인들에게 방을 내주고 일가친척을 모두 불러서 편안히 묶고 가게 하려 했지요. 자신에게는 재물이 차고도 넘치니 충분히 할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지켜보며 한없이 부러워 테지요. 자신은 잘 살아왔음을 보란 듯이 입증할 것입니다. 하지만 ….
 
부처님이 굳이 인생의 덧없음과 가치 있는 삶을 설법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지금 자신이 어떤 일에 열중하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내일보다 내생이 먼저 올 수도 있다는 이치를 깨닫자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법을 청했고 부처님은 그들에게 마음공부의 길을 들려주었습니다. 서서히 마음이 열리고 그들은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거듭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지혜로운 이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다 해도 그에게서 바른 법을 듣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국자가 아무리 맛있는 국을 퍼 담아도 국자가 국 맛을 알 수는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그와 같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아주 잠깐 동안 시간을 보냈다 해도 그 짧은 시간에 바른 법을 듣고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은 혀로 음식 맛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을 현명한 이라 합니다.”(법구비유경)
 
사람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들 마음에 기쁨이 샘솟자 부처님에게 절을 올리고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하기로 다짐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말이 있습니다.
 
“모름지기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서 일생에 세 번 집을 지어야 한다.”
 
사나이 대장부가 아니니 힘들게 집을 지을 일은 없겠다 싶어 안도했지만 가정을 이루는 모든 책임과 명분을 남자에게 짊어지우던 시절, 집짓기는 한 남자의 일생을 말해주는 현장이었습니다. 늙어서까지 계속 집을 고쳐 지으며 직계가족은 물론이요 일가친척을 넉넉하게 품어주면 잘 산 인생이라고들 했지요. 요즘은 집을 손수 짓기 보다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것이 큰일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손수 짓든 빚까지 내어 돈 주고 사든 여전히 집은 아주 중요합니다. 부처님에게는 그 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었겠지만 말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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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