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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 사랑

밀교신문   
입력 :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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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가는 아파트의 조그만 화단에는 자줏빛의 맨드라미가 아직도 피어있다. 처음에는 요즘 보기 드문 꽃이 피었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이 다가도록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맨드라미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 모양이 수탉의 벼슬처럼 생겼다고 하여 계관화(鷄冠花)라고 부르는 맨드라미를 나는 어릴 적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꽃이 예쁘지도 않은데다 흉측하게 생겨 바라보기조차 무서웠던 닭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에 얽힌 전설과 그 꽃말이 감동적이라 한 번씩 피어있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었다.

 

맨드라미 꽃에 얽힌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다하는 신하 또는 닭의 이야기로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 무예가 뛰어나고 성품이 곧은 무룡이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무룡 장군을 간신 모리배들이 시기 질투하여 모함을 하였다. 무룡 장군이 역모를 꾀한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왕은 무룡 장군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무룡 장군이 쓰러지는 순간 간신들은 왕도 죽이려고 하였으나 무룡 장군은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왕을 위해 싸우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이후 무룡 장군의 무덤에서 꽃이 피었는데 두툼하고 튼튼하게 생긴 꽃은 마치 왕을 보호하려는 장군의 방패를 닮은 것이라고 하며 이 꽃이 바로 맨드라미이다.

 

꽃으로 불리우면서도 꽃병에 꽂혀보지도, 사람의 손 안에서 한 번도 귀여움을 받아보지도 못한 채 언제나 흙 속에 강인한 뿌리를 묻고 꿋꿋하게 세월을 버티어 온 맨드라미가 오늘따라 무척이나 애닯게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자식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그 일생이 평범한 시간 속으로 묻혀버린 어머니의 삶이 서러워서일까?

 

요즘 하루가 다르게 몸도 마음도 쇠약해지고 있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힘겹게 짊어지고 온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 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저만치 던져진 테니스 공을 몇 번씩이나 달려가서 주워다 주신 어머니가 이제는 스스로 일어서고 걷기조차 힘겨워 엉덩이를 밀고 일어나 내 손을 잡고 걸으신다. 그날의 운동장에는 주홍색의 칸나가 활짝 피어있었고 어머니는 칸나 빛깔의 내 샌들을 들고 한없이 다정한 웃음으로 나를 지켜보았다. 늦여름의 시원한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가에는 분홍색, 하얀색의 코스모스들이 살랑거렸고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사이사이로 맨드라미가 힘차게 머리를 들고 있었다.

 

오늘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다. 집 앞의 맨드라미가 추위에 시들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았다. 이전 같으면 그냥 눈으로만 스치던 것을 이제는 손으로 꽃잎을 만져보았다. 맨드라미는 여전히 자줏빛의 꽃줄기를 꼿꼿하게 세우고 초록색의 잎은 늦가을 바람에 떨림조차 없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나는 맨드라미를 사랑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중 으뜸되는 것이 효도, 충성일진대 맨드라미는 그런 뜻을 간직하고 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수많은 꽃줄기마다 감싸 안고 묵묵히 피어있는 모습에서 어머니의 깊고 깊은 인고(忍苦)의 아픔이 느껴졌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제가 어머니의 방패가 되어 드릴께요.” 맨드라미의 꽃말인 건강과 방패를 온 마음을 다해 염원했다

 

박현주 교수/위덕대 간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