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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싶다면 먼저 용서하라

밀교신문   
입력 :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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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을 받은 시간은 자정이 다 가까워 오는 시간이었다.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포항 형부 2345분에 운명하셨습니다.” 작은 언니의 짧은 문자 메시지었다. 요 며칠 사이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잠을 청하는 날이 부쩍 많았다. 갱년기 증상쯤으로 치부하기에는 미심쩍은 데다 솔직히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남아있는 생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받고 싶은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뱉어내는 말보다 주워 삼키는 말들이 많아졌다/ 삶이 낡았다는 생각이 들자 내 몸에 새겨진 흉터가/ 몇 개인지 세어보는 일이 잦아졌다/ 반성할 기억의 목록이었다/ 뼈에 든 바람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두려웠고/ 계절이 몇 차례 지나도록 아직 이겨내지 못했다/ 사소한 서러움 같은 것이 자꾸 눈에 밟히지만/ 아무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했다/ 바싹 여윈/ 등뼈가 아름다웠던 사랑이 떠난/ 여름 이후” 11월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이종형의 시 <여름 이후>.

 

내게 또다시 참회의 시간, 반성할 기억의 목록들을 소환해 왔다. 11192345, 그렇게 형부는 우리 곁을 말없이 떠났다.

 

아무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고떠났을 형부, 부족한 막내 처제를 생각하며 밭에다 배추, 열무, , , 등등 김장에 쓰려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물주고 가꾸며 형부는 무슨 생각들을 애써 했을까. 용서받고 싶은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을까. 아니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열정을 쏟으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어했을까.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가 되어 잘못된 지난날 들을 바꿀 수만 있다면 다시 바꾸어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면서도 매번 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무한 반복하며 살아간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타인의 고통을 돌보는 사람과 돌보지 않는 사람, 용서하는 사람과 용서하지 않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과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각각 어울려 존재할 뿐이다. 세상 고통의 한 가운데에 절반가량은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용서의 뜻 속에는 남을 나 자신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어떻게 하면 자신부터 용서를 통해 마음의 근력을 키울 수 있을까. 용서하지 못해 오는 마음의 고통과 무게는 결국은 자신까지 황폐화시키기 때문이다. 용서는 어떻게 잊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억하는가가 문제다. 용서는 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기억함으로써 과거의 상황이 나의 현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빼앗긴 삶의 통제권을 되찾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용서의 기술>에서 심리학자 딕 티비츠가 한 말이다. 용서하지 못하면 결국 내가 죽는다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내가 잘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위해 용서하라는 것이리라.

 

종조께서도 은혜는 평생으로 잊지 말고, 수원은 일시라도 두지 말라고 하셨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용서도 어렵지 않다. 용서하지 못해 자신을 고통속에 헤매게 한다면 다음과 같은 속담을 떠올려 보라.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 혹여 우리는 모든 일상을 거꾸로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슴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잊지 말아야 할 은혜는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잊어야 할 원망과 원수는 돌에 새기어 두고두고 간직한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문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데서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용서의 다른 이름이 사랑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전남 보성에 위치한 대원사 연지문 현판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세계일화(世界一花) 만생일가(萬生一家)” 이 세상은 한 송이 꽃이며 모든 생명은 나의 한 가족이다. 우정, 환대, 생태문명,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돌보는 마음, 사랑의 다른 이름 용서, 나를 살리기 위해 용서하라.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꽃봉오리이고 사랑이고 영원히 한 가족이다. 형부를 배웅하며 돌아오는 길은 천연하도록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제 남아있는 가족 모두 보내드리는 시간이 그저 애통하고, 안타깝고,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고 최규동 각자님 그동안 삶의 여정에서 겪었던 불안과 고통과 현실의 집착 다 여의시고 부처님 영접 받아 부디 왕생극락하옵소서, 부디 왕생성불하옵소서.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