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당해 마음이 괴롭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까요?

밀교신문   
입력 :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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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중에 가장 견디기 힘든 괴로운 지옥이 뭔지 아십니까? 정답은 바로 ‘천국이 내려다보이는 창문이 있는 지옥’이랍니다. 차라리 천국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모르면 나아요. 그런데 눈앞에 훤히 보이니까 나만 빼고 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단 말이지요. 이걸 ‘상대적 빈곤’이라고 합니다. 절대적 빈곤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바로 상대적 빈곤이에요. 돈 많은 사람조차 돈이 더 많은 사람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하잖습니까.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중생의 고약한 습성이 아닐 수 없지요.
 
 
개 한 마리가 입에 뼈다귀 하나를 물고 다리 위를 지나가다가 무심히 아래를 내려다봤어요. 그런데 다른 개 한 마리가 입에 뼈다귀 하나를 물고 개울가를 지나가거든요? ‘아, 저놈도 하나 물고 지나가는구나….’ 그러고는 그냥 갔으면 되는데, 자기가 물고 있던 뼈다귀는 놔두고 다른 개가 물고 가는 뼈다귀에 자꾸 욕심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캉!”하고 짖어버렸어요. 그 순간 물고 있던 뼈다귀가 물속으로 뚝 떨어집니다. 과욕을 부리면 이렇게 됩니다. 원래 있던 것도 잃고 마는 거예요.
 
불교에는 ‘무소유’라든가, 필요 이상의 욕심을 버리라든가, 내려놓으라든가 하는 그런 교리가 많습니다. ‘삼독심’ 중에 첫 번째가 탐심인 걸 보면, 탐욕은 우리가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부정적인 마음이 아닌가 해요. 그러나 우리가 탐욕을 무조건 부정만 할 수 있는가 하면, 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탐욕이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살아가니까요.
 
보통 성공한 사람에 대해서 “출세했다”는 말을 잘 쓰는데, 원래 이 출세란 말은 불교 용어예요. 도를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날 출’자에 ‘인간 세’자를 써서 인간 세상을 뛰어넘었다는 뜻이에요. 스님들이 공부할 때 ‘도를 깨달았다’고 하잖아요? 이게 출세의 원래 뜻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출세라는 말이 세속적인 용어가 되어버렸어요. 누가 승진을 했다든가, 또 누가 돈을 많이 벌었다 하면 “출세했다” 이러잖아요? 자기가 추구하는 꿈을 이루고, 또는 자기가 목표로 삼았던 사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듯 나름대로 순수하던 욕망이 과욕으로 변질되는 순간만큼은 스스로가 경계해야 합니다. 과욕을 부리는 이들은 사물을 놓고 판단할 때 어떠한 약점이 있는가 하면, 자기에게 유리하고 이익이 되는 쪽을 항상 옳은 것으로 생각을 해요. 틀린 건데도 그게 자꾸 자기 눈에 옳게 보이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나한테 찾아와서 “돈 오백만 원 있으면 나한테 투자하십시오. 그러면 내일 돈 이천만 원 법니다” 이러는 거예요. 오백만 원 투자해서 하룻밤만 자고 네 배로 수익을 낸다면, 내가 그 사람한테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는데 왜 나한테 와서 그걸 권하겠어요? 이치에 안 맞잖아요? 그런데 자꾸 그럴싸하게 들리는 거예요. 그게 왜 그렇겠습니까? 적게 투자해서 크게 번다는 그 이익 때문에 탐심이 생겨서 그렇게 판단하는 거예요.
 
사람은 탐욕의 눈에 콩깍지가 씌면 모든 사리 판단을 정확히 할 수가 없어요. 당체법문을 마주할 때도 우리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탐욕에 좌우되어 법문을 보기 때문에 진실법을 놓치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요? 지인이나 모르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여 마음이 몹시 괴롭다면, 그 인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찰해야 할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속이는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속는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자기 마음에 욕심이 있기 때문에 탐심으로 인해서 속는다. 속아서 죄짓고 원망하여 죄를 더해 간다.”(실행론 4-1-13 (가))
 
길상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