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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쉼표’ 하나...

밀교신문   
입력 :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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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옮기는 발걸음에 뒹구는 낙엽소리, 옷깃을 세워도 틈새로 느껴지는 찬바람에 잠시 시인이 된 듯 자연스럽게 계절의 흐름에 시선을 멈춰봅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시작되는 겨울은 저무는 계절의 끝이 아니라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붉은 동백꽃처럼, 잠시 멈춘 듯 쉬면서 다가올 봄을 키우고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2020년 코로나19와 함께한 올 한해는 멈춘 듯, 잃어버린 듯 새로운 변화가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반영되어 우리 삶의 모습을 많이 바꾸어놓았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편한 손님은 사계절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까지 곁에서 긴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포스트코로나가 아니라 동행하는 일상으로 삶의 패턴을, 생활 방식을 바꾸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과 여건이 펼쳐지듯 서로 배려하고 절제하고 선을 지키며 코로나 사태에 맞추어 변화해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국어문법에는 다양한 기호표가 사용됩니다. 느낌표, 물음표, 마침표, 쉼표 등등.

 

문장을 쓸 때 쉼표는 쉬어가라는 의미, 마침표는 문장을 마쳤다는 표현이지만 글을 쓰다보면 어디에다 쉼표를 찍고 어디에다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쉼표와 마침표를 잘 사용하면 매끄럽게 문장을 만들어 좋은 글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다 마칠 때나 문장의 끝엔 마침표를 찍고, 호흡을 고르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거나 연결될 때는, 전환하는 기호 쉼표를 사용합니다.

 

쉼표와 마침표의 연결법칙이 문법적으로만, 학문적으로 글쓰기에만 적용될까요?

 

글쓰기에서의 쉼표의 역할은 글을 읽을 때 문맥상 흐름상 논리적인 의미전달을 제대로 하기 위함이요, 음악에서 쉼표는 음을 내지 않는 부분의 길이를 나타내어 알려주고 리듬과 하모니를 이어가는 역할을 하고, 우리 삶 속에도 쉼표를 찍고 잠시 쉬어야 할 때가 생깁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바짝 긴장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민해져 코로나블루현상에 건강한 삶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는 이럴 때일수록, 몸과 마음이 쉴 수 있게, 한 템포 쉬어가는 삶의 쉼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코로나 핑계로 쉬고 있는 것 같지만 무의미하게 잃어버린 시간이 되지 않으려면, 필요한 때에 필요한 자리에 스스로가 쉼표를 찍어야 합니다. 쉼표는 잠시 쉬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충전의 과정입니다. 잠시 쉬고 있을 뿐, 마침표를 찍고 끝낸 것이 아닙니다. 시작을 위해서 마침표가 아닌 쉼표가 필요하기 때문에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는 것입니다.

 

쉼표가 있어야 음악이 되고, 쉼표 없는 음악은 상상하지 못한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에서의 쉼표는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합니다.

 

4분 쉼표, 2분 쉼표, 온쉼표. 음표와 마찬가지로 박자를 지닌 길이가 있는 쉼표.

 

음악에서의 쉼표는 다음 음을 연주하기 위한 준비 단계이기도 하며 한 프레이즈를 마무리 짓기도 하고, 온쉼표가 한마디 안에 하나만 있을 때는 그 한마디 전체를 쉬는 것임을 볼 때, 음악에서의 쉼표는 음표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기도합니다.

 

필요한 만큼의 음이 나지 않는 쉼표의 역할. 음악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참된 의미가 단절되거나 멈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곡의 진행이 부드러워지고 침묵으로 더 많은 의미를 표현하게 합니다.

 

무용에서 정중동(靜中動)으로 가만히 들어 올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의 미세한 동작 하나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것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긴 침묵의 순간에 숨죽이는, 더 큰 감정의 떨림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내어 듣는 사람에게 여운을 즐기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기까지 하는 음악에서의 쉼표.

 

나날이 새로운데 새것이 들어온다.

 

마음이 항상 새로우면 어떠한 것이라도 항상 새로운 것을 맛볼 수 있다.” 실행론 말씀입니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관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게 되고, 어느 곳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많이 다르게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차이는 작아 보여도 그 작은 차이가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기에, 새롭게 준비하여 다른 것을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는 지혜를 밝혀야 합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닌, 지금 펼쳐진 일상에서 가능성을 열고 새롭게 일상의 가치가 달라지는 변화를 충분히 만들어 갈 수 있게끔, 잠시 멈추어 쉬면서 방향을 재점검하고 다음으로 계속 이어갈 수 있게 준비하는 시간이 되는 쉼표의 역할.

 

현재 내 삶의 모습에, 작은 쉼표하나 찍어 보심은 어떨까요.

 

심정도 전수/승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