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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날 사랑하는 것만큼

밀교신문   
입력 :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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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한 강연을 봤다. 코로나 시대로 아이들이 잃어버린 것을 이야기하는 짧은 강연인데, 학생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늘 집에 있으니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정체성이 흔들리면서 급기야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직장인은 회사 가는데 학생은 학교 안 가고 집에서 쉬니까 좋겠네라고 나조차도 가볍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아이들에겐 그런 시선이 불편하고 억울했을 터이다.

 

그 영상 바로 옆에 비혼 관련 영상도 추천 알고리즘에 포함되어 있었다. 자녀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배우자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기혼 여성은 늘어난 집안일로 힘들어하지만, 미혼 여성은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인터뷰였다. 꼭두새벽에 나가 밤늦게 퇴근하느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 부족한 게 직장인의 비애였는데, 24시간 붙어있게 된 게 어째서 축복이 아닌 울상으로 바뀌었을까?

 

나만 하더라도 올해는 성인이 된 이후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한 해 이자 집안일에 가장 적극적인 한 해이기도 하다. 엄마와 많은 추억을 만들어서 행복하다고 하기엔 모퉁이를 잘라 떼어 버리고 싶은 어두운 기억도 있다. 작년 생일 땐, 출장 때문에 17시간 시차가 나는 나라에 있었는데 올해는 평일 낮에 엄마와 마주 보며 갓 지은 밥을 먹는 게 생소할 만큼 감동에 벅차 한참을 조잘거렸다. 퇴근하자마자 하루 동안 쌓인 찌든 때를 벗어 던지고 곧장 침대로 들어가던 예전과 달리 2월부터 지금까지 재택근무를 이어 오면서 그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집안 살림에 눈길이 가고, 급기야 엄마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루하루가 전쟁과 휴전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왜 수세미를 자주 바꾸지 않을까?’, ‘왜 금이 간 그릇을 계속 사용할까?’, ‘왜 냉장고를 비우기 전에 빈틈없이 채워 넣기 바쁠까?’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하지 못한 점을 확대해서 캐내고 조언을 핑계 삼은 잔소리를 쏟아냈다.

 

가시처럼 날카로운 말속에는 사실 왜 나한테는 그렇게 정성을 다하면서 엄마한테는 대충이야?’가 숨어 있다. 밤새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시끄럽다는 내 말 한마디에 엄마는 관리사무실에서 민원을 넣고 올 정도로 행동이 민첩하고 주저함이 없지만, 불이 나간 안방 전구는 계절이 바뀌어도 그대로다. 내가 일하면서 마실 수 있게 물이 떨어지면 반복해서 채워주지만, 막상 엄마가 누워서 유튜브를 볼 때는 움직이지도 않은 채 두 팔만 쭉 뻗는다. 손목에 무리가 가니 휴대폰 거치대를 사용하면 좋을 텐데, 자세를 바꾸면 편할 텐데, 이렇게 먹으면 더 건강할 텐데, 비어 있는 공간부터 수납정리를 하면 더 쾌적할 텐데나의 울퉁불퉁한 불만들은 고르지 못한 말로 튀어나와 결국 마찰을 만든다.

 

한 차례 전쟁을 마치고 엄마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이번 식단은 하필 가시 바를 게 많은 갈치다. 엄마는 내 앞에 그릇도 없이 젓가락만 들고 앉아 열심히 가시를 바른 후, 통통한 살 만 살포시 내 숟가락 위에 얹혀준다. 점심시간이 부족하니 나부터 챙겨주고 나중에 먹겠다고 하지만, 엄마랑 같이 먹고 싶은 마음에 좋은 건 다 자식한테 주면 누가 엄마가 되고 싶겠어?”라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생이랑 있을 때 날 더 챙겨주고 둘이 있을 땐 엄마를 챙겨 달라고 쏘아붙였다. 엄마의 인생에서 자식보다 엄마가 먼저였을 때가 얼마나 있었을까? 올 한 해 수없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상처가 엄마도 엄마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덮였으면 좋겠다.

 

양유진/네이버 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