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움을 당연함으로 치부할 때가 있어요. 마음을 고치고 싶습니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1-25 
+ -

 

thumb-20201229093424_9b7061854922065b3898fef3cc7cf9f3_yvwx_220x.jpg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란 소설 아시죠? 현대판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한 남자가 숲길을 걷다가 도적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훔쳐 온 보석을 수레에 가득 태우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걸 목격했습니다. 커다란 바위 뒤로 급히 몸을 숨긴 남자는 그들이 뭘 하는지 지켜봤어요. 그런데 이 도적 떼의 두목으로 보이는 한 험상궂은 남자가 토굴 앞에 딱 서더니 열려라, 참깨!”하고 외치는 거였습니다. 순간 굳게 닫혀 있던 토굴 문이 스르르 하고 열렸지요.

 

믿기지 않는 풍경을 목격한 이 남자는 혹시라도 들킬세라 한참을 바위 뒤에 있다가 해 질 무렵이 되어 도적들이 토굴 밖으로 나오는 걸 본 뒤에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어요. 욕심이 생긴 그는 조심스레 걸어와 토굴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기억해뒀던 주문을 외웠어요. 그런데 열려라, ??” 아뿔싸, 마지막 음절이 뭐였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열려라, 참치!”, “열려라, 참숯!”, “열려라, 참기름!” 생각나는 건 다 외쳐봤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내 이렇게 외쳤어요.

 

택배 왔습니다!”

 

그러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쿠르르릉!”하면서 급하고도 재빠르게 활짝 열리는 토굴 문. 남자는 택배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하더군요.

 

기다림 끝에 받게 되는 택배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오죽하면 마누라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보다 더 반기는 사람이 바로 택배 배달원이라면서요?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또 늦으면 늦는 대로 기다리던 물건을 턱 하고 안겨주니 얼마나 반갑고 기쁘겠어요? 남편은 결혼하고 40년이 넘도록 반지 하나 선물해준 게 고작인데, 거기에 비하면 배달원은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맘에 드는 물건들을 쏙쏙 내려놓고 가잖습니까. 그러고 보면 남편보다 택배를 더 기다리는 그 마음을 이해 못 할 것도 없지요.

 

몇 해 전인가 심인당 1층 현관 앞에 신발 자국이 나 있어서 혹시 도둑인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택배 기사님이셨더라고요. 마침 신교도 방문 때문에 부재 중이었는데, 그 사이에 도착한 기사님이 심인당 입구의 신발장 위에 택배를 올려놓고 가셨던 거였어요. 잠깐 신발을 벗고 들어와 짐을 내려놓아도 될 텐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신발을 신은 채로 들락날락 하셨나 싶어 내심 불쾌한 마음도 들었지만, 곰곰이 마음을 돌려 생각해보니 얼마나 마음이 조급했으면 그리했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군요.

 

따져 보면 우리 주변에 내가 할 수고를 대신하여 발품을 파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운전 중에 오는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없고, 바쁘게 배송지에 도착해서 급히 짐을 내려놓고는 다시 다른 곳으로 부리나케 차를 몰아야 하는 택배 기사님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런가 하면 한여름의 높은 기온 탓에 에어컨 구입과 수리 요청이 급작스럽게 폭주하면서 그 심한 무더위 속에서도 옥상이며 난간이며 가리지 않고 찾아가 땀을 뻘뻘 흘리시는 에어컨 수리 기사님들의 고생 역시 말이 아닙니다. 겨울철 혹독한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추위에 얼어붙은 시뻘건 얼굴로 달려와 손수 고쳐주시는 보일러 수리 기사님의 노고는 또 어떻고요?

 

우리는 모두가 이처럼 중생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고, 또 살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극도로 자본주의가 성장한 탓인지, 고마운 이들 덕분에 은혜로움을 한껏 누리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어차피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뭘!’하는 냉소와 갑질의 업을 짓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볼 일입니다. 진각성존 회당대종사께서 언급하신 은혜에 대한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부모의 잘못은 작고 나를 생육해 준 은혜는 크다. 중생의 은혜도 크다. 자기는 칭찬 받기를 좋아하면서 남의 허물은 잘한다. 이것은 자기가 자기를 해치는 것이다. 국가의 은혜도 크다. 정부의 잘못은 작고 나라의 은혜는 크다. 은혜와 법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실행론 4-2-4)

 

길상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