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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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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내 안의 내가 꾹꾹 눌러 놓았던 두려움과 설렘의 감정들이 폭발한 것이다. 이 양가적 감정을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걷잡을 수가 없었다. 분명 이것은 기쁨과 서글픔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룬 그러나 기쁨의 눈물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2월 마지막 주 토요일 선재어린이집에서 졸업식이 있던 날이다. 처음 교화를 막 시작하던 23년 전 양산 불일유치원이 순식간에 겹쳐졌다. 그러면서 그간의 선재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쉼 없은 노력과 노고가 있었음을 알기에 18회 졸업식이 가능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3년마다 치러지는 평가심위를 받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애썼던 나날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황남동 시절을 거쳐 임시 어린이집 생활까지 수없이 많은 어려움과 시련 을 묵묵히 잘 견뎌내 준 고마운 선생님들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았다. 평가심위에서 그 받기 어렵다는 A등급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던 그날 밤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울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병든 사람일지도 모른다. 많이 아픈 사람이다. 제대로 울지 못해서 병이 들고 아프다. 마음 편히 울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울음이란 견딜 수 없는 슬픔이나 고통을 녹여서 가볍게 하기 위한 몸의 장치라고, 격한 감정이나 고통이 몸 안으로 들어왔을 때 몸은 제가 살기 위한 자구책으로 울음을 울어 그 무거운 것을 배출한다고 했다. 계속 쌓아만 두고 배출하지 못할 때 우리의 삶도 병이 든다. 인생의 성패는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고, 내 삶의 고통을 진정으로 직면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길 때 우리의 삶은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졸업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리라. 새봄, 새 학기, 새 친구, 새 책 등 새롭다는 낱말은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설레게 한다, 나는 학창시절 신학기가 너무 싫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성격 탓에 3월 신학기는 늘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새로운 담임선생님에게 정들기까지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고 만나지 않고는 살 수 없을까.”하는 생각에 이르자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최근 35년을 훌쩍 뛰어넘어 요 며칠 사이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오랜 기억들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소환됐다. 비가 추적거리는 어느 날 교도분 집에 가정방문을 갔었다. 방문불사를 마치고 교도분께서 조심스럽게 큰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속에서 꺼낸 것은 대학합격증이었다. “이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려니 많이 어렵습니다.” 2년 전부터 담배도 술도 다 끊었다고 전해 들었다. 오직 하나 공부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 간절함이 가슴 깊이 느껴져 왔다. 순간 아찔했다.

 

사뮤엘 울만의 시 나이를 먹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어서 늙어간다네/ 세월의 흐름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나 정열의 상실은 영혼의 주름살을 늘리고/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영원의 세계에서 오는 힘/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한/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인 것이다.” <청춘>이 떠올랐다

 

새로운 배움의 길에서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 그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게도 큰 자극이 되어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생각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어디서 그렇게 큰 용기가 났을까. 졸업할 때까지 부처님 전에 불공한다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하면 세상에 이뤄내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부처님께서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變正覺)이라 했다.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내 내면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빛과 그림자를 함께 내 안에서 끌어안을 수 있을 때까지 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되어 자기 자신으로 살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어쩌면 모르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도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다. 사뮤엘 울만의 시처럼 나이를 먹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정열의 상실은 영혼의 주름살을 늘리고 이상을 잃어서 늙어 간다는 시적 표현이 아직도 나를 늘 긴장하게 만든다. 모를 때는 무턱대고 해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책 속에서 이 대목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대로 살다간 죽기 전에 후회하게 될 백 가지 일떠오르는 대로 무조건 적기그것이 진리 공부든 현실공부든 간에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공부하는 사람과 공부하지 않는 사람.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