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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못한 길

밀교신문   
입력 :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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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 숨 지으며 얘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중학교 시절 나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와 삶의 고개마다 인생을 생각하게 한 시이다. 적막한 시골 마을에서 접할 수 있었던 문화로는 교과서나 신문, 책 속에 실린 글귀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한 편의 좋은 시는 두고두고 읽으며 때로는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 살아가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한다기보다는 꿈을 꾸었었다. 삼등 열차를 타고 차창으로 스쳐가는 낮과 밤을 느끼며 책을 읽는 꿈을 자주 꾸었다. 누군가가 장래에 무엇이 될래? 라고 물으면 여류 소설가라고 말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로워 차마 소리 내어 드러내기조차 조심스러웠던, 그러나 현실과의 타협 속에 아쉬움을 담아 떠나보냈던 꿈이 있었다.

 

신입생들의 진로 설계를 위한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의 꿈보다는 성적에 맞추어서 또는 취업을 위하여 전공학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음을 보게 된다. 이런 학생들은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전공 학습에 적응해가면서 서서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표만큼은 뚜렷하게 세워나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면 과연 우리에게 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상을 접어두고 현실을 선택했기에 그 길을 걸으면서 수없이 다른 길을 돌아보며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에 한숨지었다. 그러나 사무친 그리움이 있었기에 더욱 열심히 꿈을 꾸었고 더욱더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충만하게 그 길을 걸어온 것 같다. 이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걸어온 이 길을 되돌아보면 내가 존재하는 것은 선택과 적응, 노력, 인내 등의 많은 요인과 시간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군다나 간호사로서의 시간 속에서는 얼마나 많은 환자의 삶의 애환이 나를 성장시켰던가. 간호사는 시를 읽으며 여유를 즐기기보다는 피를 보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단순한 고정관념은 삶의 극진한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환자들과 함께 하는 길 위에서 허물어져 갔다.

 

꿈을 이야기하다 보면 대학원 시절 은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희망의 개념에 대한 수업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의 희망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나는 순간 그런 환자에게도 희망이 있겠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희망이나 꿈이란 것이 비단 건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자녀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생을 마감하고픈 희망을 비롯하여 임종 전의 환자에게도 꿈이 있다고 말씀하실 때 이제껏 내가 허구와 관념의 틀 속에서 살아왔구나 라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음으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경험했기에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기에 삶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나는 진정으로 무언가를 말 할 수 있고 쓸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어야한다는 것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무엇을 지향하고 경험하면서 사는가이다.

 

꿈이란 치열한 삶의 길 위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아닐까!  

 

박현주 교수/위덕대 간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