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밀교신문   
입력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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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 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 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결핵으로 쓰러져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습니다.

 

낙태 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상황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이가 바로 베토벤이었답니다. 아버지는 매독에 걸려 있었고, 4남매 가운데 한 명은 이미 죽었고 셋은 결핵에 걸려 살 희망이 없는데, 폐결핵 중증인 어머니는 임신까지 했던 거였지요. 지금 시대의 의료적 판단으로는 낙태를 최선책으로 선택할 수 있을 법한 그 아이가 장차 성인이 되어 고전 음악계의 거장 베토벤이 되었던 겁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자신의 지식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종종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선후와 본말이 전도되어 취사선택을 잘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실상같이 자기 마음을 깨달아 당체법문을 체득할 수 있는 지혜만 있다면 주어진 삶을 여법하게 살아낼 수 있으련만, 이따금 씩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탐심과 미혹한 업장으로 인해 중생은 늘 고달픈 윤회의 쳇바퀴를 돌고 또 돌지요. 부처님이 금덩이를 가리키시면 그 금덩이를 쳐다보면 되는데, 중생들은 자꾸 엉뚱한 그림자 금덩이에만 눈이 가기 마련입니다. 부처님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데, 달은 보지 않고 부처님 손가락 끝만 멍하니 쳐다보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진리를 보라고 하시는 건데, 방편에만 머물러 있는 겁니다.

 

미용사가 머리카락을 자를 때 머리카락을 보고 잘라야지, 가위만 보고 자르면 머리카락이 엉뚱하게 잘리게 되잖아요? 자칫하면 황당하게도 귀 끝이 잘리는 수가 있어요. 게으르고 어리석은 미용사한테 인연이 되면 가위질 소리부터 다릅니다. 잘 안 드는 가위는 이미 첫 가위질 때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거든요. 깎는 사람은 몰라요. 맨날 그 가위로 깎으니까 습관이 되어서 뭐가 잘못된 건지 감조차 못 잡는 겁니다. 그러니 무릇 실수나 잘못을 알아차리려면 그걸 지적해주는 타인이 꼭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인연이 유의미한 것이 되려면 내 허물을 지적해 준 상대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일으킬 줄도 알아야 합니다. 또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더 없는지 주위의 선지식에게서 항상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넓은 아량과 마음 그릇을 가지면 더없이 좋겠지요.

 

[] 내 허물을 어떻게 하여야 쉽게 알 수 있습니까?

[] 남이 내 허물을 말하거든 즐겁게 듣고 스승과 친구와 부모와 형제에게 묻는 것이 속히 알게 됩니다.(실행론 3-2-6)

 

그런데 막상 상대가 내 허물을 지적할 때 우리 마음은 어떻습니까? 부모 형제든, 친구든, 이웃이든, 누군가 나한테 잘못을 지적하면 받아들이는 마음이 되던가요? 아니지요? 도리어 화를 내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그러는 너는 잘못한 게 없느냐?!”하고 말이죠. 지적을 되로 받으면 말로 퍼다 줍니다. 이게 다 무엇 때문에 그럴까요? 바로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 때문에 그렇습니다. 소아가 아닌 대아로 살려면 자꾸 하심하고 나를 낮추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살을 내리찍는 도끼를 원망하지 않고 향기를 뿜어내는 향나무처럼,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내가 좀 피해 보고, 내가 좀 참고, 내가 좀 숙이고…… 인생을 평화롭게 사는 지혜가 그 안에 있음을 돌아보고 또 살피시기 서원합니다.

 

길상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