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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 걷기에서 얻은 깨달음”

밀교신문   
입력 :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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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집 안에 갇혀 산다. 강의도 연구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한다. 퇴근시간 이후에도 화상회의를 한다. 시장에서 직접 장을 보던 습관은 온라인 주문으로 바뀌었다. 생일을 맞은 지인에게 축하 케이크 쿠폰을 보낸다. 극장에 가지 않고 넷플릭스에 주말을 반납한다. 최근 우리의 일상이다. 바깥 공기가 그립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싶다. 여름으로 질주하는 나무와 꽃들의 수채화도 보고 싶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하루에 만보를 채운다. 사실 걷는 게 아니라 채운다는 것이 맞다. 이미 나에게 하루 만보 걷기는 과제이며, 달성해야 할 목표다. 스스로 출제한 문제에 답을 찾는 심정으로 시작한 하루 만보 걷기는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만보 채우기를 하다보면 모르지만 익숙한 사람들이 생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나처럼 그들도 걷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마다의 인생 이야기와 가족, 친구, 하고 있는 일들, 고통과 기쁨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만보 걷기에서 시작되는 사유다. 걷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의 모습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렇게 만보 걷기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왜 필요하고, 자연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속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걷는 것이 깨닫는 것이다.

 

꾸준하게 하루 만보 걷기를 반복하면, 그 속에서 나 자신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된다. 본질적으로 대화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의견을 상호 교류하는 행위다. 사실 대화는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이다. 타인과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바로 이 대화 연습을 하루 만보 걷기를 통해 실험해보는 것이다. 스스로 나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해본다. 이 과정이 원활해야 타인과의 대화도 원활해진다. 사실 이 과정은 나 스스로의 역할 놀이인 셈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을 내 안에서 시도해보는 과정이다. 공감(empathy)은 원래 그리스어 ‘empatheria'에 어원을 두고 있다. ‘안으로(in)'라는 의미의 ‘em-'느낌(feeling)'‘pathos’가 결합한 것으로, 상대의 느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공감이다. 문제는 나의 느낌과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의 느낌으로 들어간다는 것으로, 그것은 고통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는 인고의 수련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화의 수련과정은 경청을 통해 이루어진다. 경청은 공감의 출발이다. 경청은 혼신(渾身)을 다하여 듣는 것을 말한다. 혼신은 말 그대로 온 몸 전체를 말한다. 혼신을 다해 듣는다는 것은 나의 모든 감각을 상대에게 집중시키고, 나의 생각으로 상대를 어떻게 하려 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듣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공감하고 경청하기보다, 조언하려 하고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한다는 것은 들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답을 원하기보다는 자신의 아픔을 나누기를 원하는 것이다. 대화에서 공감은 모든 관심을 상대방이 말하는 그 곳에 두는 것이다. 타인의 의견, 생각,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모든 신경을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려면 혼신을 다하여 상대를 관찰하고, 들어주며, 나의 즉각적인 판단과 해석을 보류해야 한다. 상대의 물음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세상과 자연을 관찰하고, 대화하는 연습을 하는 것은 분명 삶을 간결하고 겸손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은 하루 만보 걷기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김인영 교수/ 위덕대 융합기초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