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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년의 일기 ‘귀명과 안락사이에서’

밀교신문   
입력 :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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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일 삼릉 가는 길, 산은 어느새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고 온천지가 꽃으로 만발했다. 그날따라 놀랍기도 해라 가는 곳마다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내뿜는 빛과 향기로 머리가 날아갈 듯 가볍고 맑아졌다. 한 달 가까이 뒤 목이 뻐근하고 머리가 무겁고 개운치 못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눈부신 봉축 플래카드 앞에서 내 시선이 멈췄다. “희망과 치유의 연등을 밝힙니다.”라고 적힌 아담한 절 입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올해도 부처님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어김없이 오실 테고, 저마다 얄팍한 안락과 이익을 위해 언제나 부처님을 저버리고 잊고 산 쪽은 항상 중생들이었다.

 

400일 최근 백신 예방접종이 시작되면서 행락철 상권이 되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사는 경주는 관광산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지역의 특성상 상권의 완전한 회복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어쩌면 코로나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계절 독감과 유사한 형태로 인식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집단면역이 이루어지면 거리 두기와 모임 제한 등이 없이 감기처럼 독감백신을 맞으며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리라는 전망을 내놓고는 있지만, 아직까진 미심쩍다. 어쨌든 우리는 이제 코로나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계속되는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은 어쩌면 이웃처럼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인류의 대재앙인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류가 속수무책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이면에는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교란 및 파괴와 무관하지 않다. 그 속에는 현생의 안락에만 집착하는 작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400일 새벽 정송(기도)을 마치고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이 있다. 대문 가장자리의 작은 연못, 그 새벽에 어떻게 알았는지 어미와 어린 금붕어들이 물살을 가르며 경쾌한 몸놀림으로 매번 우리를 마중 나온다. 그 광경이 너무 신기해 보살님들께 물었더니 먹이 주러 오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는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옛말이 실감 나게 와 닿았다. 하물며 미물인 금붕어들도 일정한 때에 정해진 만큼의 먹이만 먹고 탐심을 내려놓고 주어진 삶에 최선의 노력으로 살아간다. 유달리 우리 인간만이 생사윤회의 수레바퀴인 탐, , 치 삼독의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고 맞이해야 할까를 더 고민해야 한다.

 

400일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작은 연못에 나무로 만든 물레방아를 설치했다. 물레방아를 힘차게 돌리는 밀짚모자를 쓴 목각소년, ‘희망이라 이름지어 주었다. 태극기와 종단기가 나란히 서 있는 화단에 세 그루의 무궁화나무를 심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몸과 마음이 투명해지고 밝아진다. 경주에 온 지 만3, 황성동은 경주에서도 신도시라 신도시답게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밀집해 있다. 심인당과 선재어린이집이 부처님 법을 제대로 실천하는 비로자나 궁전의 역할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종조님과 부처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는 길이리라.

 

400일 요즘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면서 종종 죽음을 떠올려 본다. 우리가 흔히 불자라고 하면 어떤 사람을 떠올릴까. ‘불자의 집이란 문패가 달려있는 사람들이 불자일까, 아니면 팔정도와 오계를 실천하는 사람, 그것만으로 불자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교수자는 목소리를 드높인다. 불자란 삼보에 귀의한 사람을 말하고, 티베트불교 경전인 보리도차제약론에서는 깨달음의 수행 단계로 가는 길을 작은 사람, 중간 사람, 큰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리심, 지혜, , 윤회로 설명한다. 사람을 세 사람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특히 현생의 안락에만 집착하는 작은 사람은 현생의 안락을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업을 짓고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으며 정진을 게을리한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을 기꺼이 맞이해야 한다. 그래서 늘 상 죽음을 떠올리고 있어야만 악업을 짓지 않게 되고 현생의 안락에만 집착하지 않게 되어 선업을 쌓게 된다. 죽을 때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죽을 때는 부처님 법(가르침) 이외에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하므로 내생에는 훌륭한 몸을 받아 부처님 법을 실천해야 한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작은 사람인가, 중간 사람인가 아니면 큰 사람인가를 수시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현세의 안락에만 집착하지 않으려면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 어떤 힘보다도 강력한 불(), (), () 삼보에 귀명하는 것, 안락과 귀명사이에서 이보다 더 큰 힘의 작용과 공덕은 없다.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