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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6호-태풍이 보여준 천재지변과 인재

밀교신문   
입력 : 202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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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힌남노’ 피해의 안타까운 소식 중에서 포항 지하 주차장 희생자의 사연을 잊을 수 없다. 새벽에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빼러 가는 어머니가 걱정돼 따라나섰던 중학생 이야기다. 

 

침수 상황에서 어머니는 “너만이라도 살아야 한다”며 아들을 먼저 내보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식만은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다른 주민들과 탈출에 나섰다. 14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어머니는 가장 먼저 아들의 생사를 물었지만, 아들은 엄마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들 생각에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버텨온 어머니는 망연자실했다.매뉴얼에 따라 ‘침수 예상 시’ 차량 이동 안내방송을 했다는 관리사무소의 변명은 설득력이 있을까? 이미 물이 차고 있는데 뒤늦은 안내방송이 화를 키웠다. 지하 주차장과 지하상가에서 12명이 숨졌던 2003년 태풍 ‘매미’의 기억은 어디로 갔는가? 뉴스에서는 2002년 ‘루사’, 2016년 ‘차바’의 큰 피해를 소환하며 연일 태풍 대비 보도를 이어갔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무방비였다. 숨어있던 ‘대충주의’가 천재지변 상황으로 드러난 것이다. 기상예보도 차수 관련 기술도 발전하는데, 구체적인 실천 매뉴얼은 왜 없었을까? 배수 시설 사전 점검은 했을까? 경찰은 인명 피해 조사를 위해서 전문가 자문단을 꾸려 침수 원인을 밝히겠다고 한다. 하지만 처벌은 근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태풍 ‘힌남노’ 한 달 전에도 서울 서초구 빌딩 지하 주차장에서 사망 사고가 있었지만, 같은 피해는 반복되었다. 알면서도 못 고치는 ‘병폐’라 할 수 있다. ‘예산 탓’, ‘인력 탓’만 하는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위험에 팔을 걷어붙인 국민 영웅도 많다. 빗물받이의 쓰레기를 맨손으로 청소해 침수를 막은 ‘강남역 슈퍼맨’, ‘의정부 아저씨’ 같은 분들이다.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에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린 사람도, 자신을 희생하며 배수구를 뚫는 사람도, 이 시대를 같이 사는 국민이다. 체계적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일이 공무원의 몫이라면, ‘공중도덕’을 지키기는 일은 국민의 몫이다. 국민 각자가 기본에 충실할 때, ‘안전’은 견고해지고, 자연재해가 와도 피해가 더 커지는 일은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