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죽비소리

뼈아픈 후회, 기꺼이 견뎌내라

밀교신문   
입력 : 2022-10-05 
+ -


thumb-20220530092426_e13f0f631182c73e39b5829ca84d90cf_jti0_220x.jpg

 

은연중 내 무의식에 사람이 얼마나 변변찮으면, 자기관리도 제대로 못 하고 코로나에 걸리나.”라는 부정적 생각이 자리했었나 보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야 말았다. 아슬아슬 피할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고 싶었다. 코로나에 걸리면 변변찮은 사람이 되고, 자기관리 못하는 사람이라는 신념이 있었으니, 철통방어는 기본이었을 것이다. 잘못된 신념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온전히 코로나에 뚫려버렸다. 불행한 일일수록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그것도 나에게 닥쳐오리라는 예상을 했겠는가. 한 달 가까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후유증은 상상외로 오래갔다. 그사이 슈퍼항체가 생기기는 했을까. 의심스러웠다.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2, 3차 감염됐다는 보도를 연일 접할 때마다 심기가 불편했다.

 

코로나19 이상반응 때문에 1차 백신 접종밖에 못 한 터, 철통방어니 뭐니 운운하기에는 방역을 충실히 따르지 못한 대가가 이 정도에 그쳤으니, 얼마나 감사해야 될 일인지. 코로나에 걸리기 한 달 전부터 내심 며칠만이라도 푹 쉬어봤으면 좋겠다.”라고 인연을 지었더니, 며칠이 아니라 한 달 가까이 심신이 고생하고 있다. 한순간 마음에 품었던 생각이 현실이 되어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다. 그래서 찰나에도 우리는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인연을 지어야 할 이유가 된다.

 

9월 월초불공 7일을 꼬박 자가 격리되어 사택에서 불사를 지켰다. 처음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심적 부담이 가슴을 짓눌렀다. 하필 월초불공을 앞두고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뭘 참회해야 되나. 평소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썼어야 했나 라는 뒤늦은 후회가 막심했다. 월초불공 삼일은 아무런 느낌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사오일째가 되니 나도 모르게 은근히 화가 났다. “도대체 이 감정은 뭐지!” 생각해 보니 외로움과 슬픔이었다. 일주일 내내 전화 한 통 걸려 오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존재감이 없었나!” 그 외로움의 정체는 소외감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제대로 된 자존감을 인정받고 싶었던 외로움이었다. 부정적 정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체험으로 몸소 느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겪으며 수용해라.’ 등등을 계속 되뇌었다. 그 감정이 일어나도록 허용하고, 그 감정을 더 좋은 감정으로 바꾸거나 어떻게 하려는 바람없이, 감정이 스스로 제 갈 길을 가도록 놓아두라는 데이비드 호킨스의 <놓아버림>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진정으로 타인과 사랑을 나누고 베풀 때, 자신과 타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외로움과 괴로움은 사라지고 마음의 평화와 고요함이 깃들 것이다. 스스로 감정이 제 갈 길을 가니, 부처님과 보살님께 송구함과 참회가 주체할 수 없이 밀려왔다. 갑자기 한꺼번에 닥쳐온 부처님 법문을 감사히 기꺼이 받아들이니 한결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졌다. 부처님은 한 번도 중생을 저버린 적이 없다. 다만 중생이 부처님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없이 저버렸을 뿐.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황지우 뼈아픈 후회중에서)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라는 문장만큼 불행하고 건조한 삶은 없을 테니까. 사랑은 모든 것보다 더 앞선다는 것을. 다시 뼈아픈 후회는 하지 않으려 한다. 사랑하는 보살님들께 걱정을 끼쳐 죄송할 따름.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